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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25일차:우리도 같이 걷자!

멜리데 ~ 산타 이레네 : 29.3km

by 까미노

엊그제 사리아에서부터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산티아고까지 100km 이상만 걸으면 순례길 완주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산티아고 120km 전인 사리아에서 시작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그 사람들 중 60대 이상의 노년층이 꽤 많았다. 한 걸음 한 걸음 떼는 게 너무나 힘겨워 보이는 분부터 젊은 내가 쫓아가기 힘들 정도로 날렵한 분까지 다양한 노인 순례자를 길 위에서 만났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우리나라 어르신들에 비하면 건강한 편으로 보이는데 아마도 우리나라 분들은 젊어서 고생을 많이 해 그런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리아에서 노년층보다 더 많이 보이는 연령층이 10대다.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고등학생까지 단체로 와서 길을 걷는다. 단체의 규모는 대략 우리나라의 1~2개 반 정도의 규모다. 오늘은 걷는 동안 3개 학교의 학생들을 만났는데 여고생, 남녀공학 중학생, 남자 중학생 세 그룹이었다.


산타 이레네를 향해 걷다가 만난 스페인 아이들. 배낭을 메고 걷는 아이들도 있고 가볍게 짐을 들고 걷는 아이들도 있는데 어찌 되었든 산티아고까지 100km 이상 걸어야 한다.


이중에서 ‘남녀공학 중학생’은 모두 자기 배낭을 우리 일반 순례자들처럼 메고 길을 걷고 있었다. 인솔교사가 대여섯당 한 명씩 붙어 다니며 힘들어 낙오하지 않도록 격려도 하고 잔소리도 했다. 마치 수학여행이나 현장체험학습에서 학생을 인솔하는 우리나라의 교사와 비슷해 보였다.


그러다 문득 큰아들과 제주도 일주일 여행 때 사려니숲길을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각자 배낭을 메고 10km 숲길을 걷는데, 습하고 더운 날 굳이 이 길을 걷는 이유가 뭐냐며 온갖 투정과 짜증 섞인 말들을 마구 뱉어내 속상하게 했었다. 그런 아들을 보며 “너도 나중에 네 아들이랑 같이 길을 걸어보면 지금 아빠의 마음을 알게 될 거야!”했더니 “우리나라의 모든 산이 불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받아쳤다.


가끔 모녀가 함께 걷는 모습을 본다. 그 중에는 우리나라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부자지간은 까미노에서 만난 적이 없다. 물론 외국인들 중에는 분명 있을 거 같은데 아직 만나 보지는 못했다. 왜 모녀지간은 오는데 부자지간은 이 길을 함께 걷지 않을까? 큰아들과 나만 봐도 그 이유가 빤히 보이나 자꾸만 십년 후에 큰아들이 군대 제대하고 “아빠, 저랑 산티아고 함께 걸으실래요?”라고 해줬으면 좋겠다는 꿈같은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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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외편5 : 에디타에게서 온 편지

Hi, i was thinking portomarin as well for tomorrow. According to my plan i will arrive to santiago on sept 30th i think. I will then continue to finisterre + muxia. Are you flying back home in september?


중학교 1학년인 큰아들과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 아들이 있다. 중학교 1학년 큰아들은 성격 자체가 워낙 까탈스러워 평소 말투가 툭툭거리는 편인데 학교에서는 그렇지 않는지 친구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런데 둘째 녀석은 막내의 기질인지 타고난 성정이 그런지 쉽게 운다. 아주 사소한 것에도 감정이 상해서 눈물이 먼저 보이고 그 서러운 감정은 그 다음에 올라오는 아이다. 그 아이가 며칠 전에 복도에서 친구가 밀어 넘어져 머리를 다쳐서 일찍 조퇴를 하고 왔다. 그 뒤로도 또 한 번 머리를 벽에 부딪힌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 때는 자기가 잘못해서 혼자서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고 했다.


나중에 둘만 있을 때 둘째 녀석이 "요즘 기억력이 나빠져서 자꾸 까먹는다"고 하길래 "왜?" 그랬더니 그 날의 일을 사실대로 털어놨다.

"그날 사실은 혼자서 벽에 부딪힌 게 아니라 친구가 밀어서 벽에 머리를 부딪혔는데 사실대로 말하면 엄마가 당장 학교로 찾아갈까봐 말을 못 했어."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아이의 얘기를 다 듣고도 바로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늘 둘째를 보며 걱정하던 바가 현실로 나타나 정말 마음이 아팠다. 둘째는 형이 쓸데없는 심부름을 시키고 큰소리로 뭐라고 해도 대들지 못하고 그냥 묵묵히 있어 이를 지켜보는 부모 입장에서 답답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여린 성정이 집밖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다른 아이들에게 치이는 것이 서글프다. 그렇다고 학교(담임)에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은 아이가 스스로 이겨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좀 더 자신있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고, 거친 장난에는 "싫다"고 강하게 거부감을 표현할 수 있어야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거친 장난을 담임선생님이 알게 된다면 그렇게 하지 않도록 아이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시켜야 하는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사리아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120여km를 걷는 스페인의 아이들을 보며 우리나라에도 이런 체험활동이 교육과정 속에 의무적으로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전에 근무했던 학교에서 2학년은 2박 3일간 야영장에서 체험활동을다. 그런데 1박을 보내고 나면 같은 모둠 안에서 갈등이 극도로 심해져 더이상 체험활동을 이어갈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끼니를 직접 해먹는 것도 처음 한 두끼는 재미 있을 지 모르나 초여름 더운 날씨에 삐질삐질 땀 흘려가며 불 앞에 서 있는 것을 좋아할 아이는 거의 없다. 그러니 서로 미루게 되고 음식 만드는 일이 귀찮은 일이 되어버리는데 배는 고프니 서로 짜증만 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어찌 해서 밥을 먹고 나면 이런저런 극기체험활동을 해야하니 더이상 참지 못하고 둘쨋날 밤에 폭발해서 급기야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얘기하는 아이도 발생했다.

결국 체험학습이 끝나면 학교는 온통 그때 생겼던 갈등 상황을 풀기 위해 며칠 간 여러 개의 회복적 대화모임을 열게 되고 쉽게 해결되지 않는 사안도 있어 교사들도 아이들도 체험학습 후유증에 오랜 시간 시달리게 되다보니 두 해를 그렇게 진행하고 나서는 그 다음해부터 아예 야영을 1박만 하는 체험학습으로 변경이 되었다.


이 과정을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갈등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2학년 담임교사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어찌 보면 이런 갈등 상황을 힘들게 이겨내고 나면 더 크게 성장하는 아이들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가다보면 내 마음대로 되는 일보다 안 되는 일이 더 많다. 그러니 학교 생활에서 내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는 것만 경험해서는 사회생활에서 더 큰 갈등 상황을 만났을 때 회피하거나 아예 포기해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물론 갈등상황이 생기지 않는 게 가장 바람직하나 세상 일이라는 게 내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갈등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것을 지혜롭게 해결하거나 극복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을 키워주는 것이 교사가 해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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