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분식집에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에 찾으러 갈 테니, 비조리 즉석떡볶이 4인분만 포장해 주세요.”
통화를 끊고 학교 근처 마트로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겼다. 냉장 코너에서 떡, 어묵, 비엔나소시지를 바구니에 담고, 묶음으로 할인 판매하는 음료수까지 챙겼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분식집에서 포장된 떡볶이를 찾아 **실(아이들은 언젠가부터 이곳을 내 이름을 넣어 불렀다)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수업이 끝나자 아이들이 **실로 다 같이 몰려왔다. 아이들에게 잠시 양해를 구하고 밀린 업무를 보던 중, 아동학대 사안이 신고되어 경찰까지 출동하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졌다. 정신없이 일을 처리하고 나니 벌써 오후 5시가 훌쩍 넘어 있었다.
내가 나타나기만을 학수고대하던 아이들은 배고프다며 아우성을 쳤다. 서둘러 냄비에 포장해 온 떡볶이와 마트에서 산 재료들을 몽땅 넣고 불을 올렸다. 떡이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국자로 저으며 국물이 진득해지기를 기다렸다. 그사이 아이들은 우유 빛깔 음료수를 각자의 잔에 따르더니, 마치 막걸리로 건배하듯 잔을 부딪쳤다. 어김없이 그 모습을 영상으로 담아 SNS에 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잘 익은 떡볶이를 아이들의 그릇에 가득 담아 건넸다.
“쌤, 진짜 맛있어요!”
뒤늦게 합류해 막내 '이파리'가 된 S가 기분 좋은 말들을 마구 쏟아냈다. 이 맛에 아이들과 부대끼며 시간을 보내는구나 싶다가도, 곧 이어질 다음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 한구석이 착잡해졌다.
떡볶이를 비우고 남은 국물에 라면 사리 3개를 넣어 알뜰히 나눠 먹은 뒤, **실 한쪽에서 뜨거운 김을 뿜으며 익어가는 호빵까지 해치웠다. 든든해진 배를 두드리며 뒷정리를 시작했다. 설거지는 내가 맡고, 아이들은 청소와 분리수거로 역할을 나누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정리를 마치고 불을 끈 뒤 한 곳에 모여 앉은 아이들이 다음 놀거리를 의논했다. 주제는 늘 그렇듯 ‘무서운 이야기’였다.
“쌤, 무서운 이야기 해주세요!”
“나부터 할까?”
“네!”
“좋아. 그럼 쌤이 정말 무서운 이야기 할 테니까 잘 들어봐.”
평소와 달리 곧장 이야기를 시작하겠다는 말에 아이들의 눈동자가 나를 향했다.
“선생님이 정말 고민 많이 했는데… 오늘은 꼭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쌤, 진짜 무서운 얘기 맞아요?”
“응, 맞아. 나 내년에 다른 학교로 가.”
순간 정적이 흘렀다.
“에이, 장난치지 마세요. 진짜 무서운 얘기 해달라니까요?”
“진짜야. @@에 새로 생기는 학교가 있어서 거기 가기로 이미 결정됐어.”
“혹시 쌤 프로필 사진에 있던 그 학교예요?”
“응, 맞아.”
아이들은 믿기지 않는 듯 몇 번이고 사실을 확인했다. 모임이 끝날 때까지 “진짜예요?”라는 질문이 수없이 되풀이됐다. 그럴 때마다 나는 미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떡볶이 파티는 아이들의 울음 섞인 아쉬움 속에 끝이 났다.
집에 돌아가서도 카톡으로 재차 사실을 묻던 아이들은, 다음 날 아침 교문에서 나를 보자마자 또다시 물었다. 수백 번 물어본다고 결과가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은 그렇게라도 이별의 서운함을 쏟아내고 있었다.
‘방학식 날 말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러면 우리가 제대로 인사할 시간도 없이 헤어지게 될 것 같았어. 남은 시간 동안 우리, 예쁘게 잘 헤어지는 연습을 해보자.’
내 카톡 메시지에 아이들은 말 대신 ‘슬픈 표정’의 이모티콘으로 대답을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