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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파리의 추억 만들기

by 까미노

김동식 작가와의 북토크가 끝나고, 행사를 도와준 아이들 몇몇과 함께 마라탕집을 찾았다. 혀끝이 얼얼해지기를 벼르던 맵기는 예상보다 순했고, ‘한 단계 높일 걸 그랬나’ 후회하던 찰나, 아이들은 기습적인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은 첫사랑에 짝사랑도 포함된다고 생각하세요?”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 탓이었을까, 아이들은 별안간 ‘첫사랑의 정의’를 놓고 꽤나 진지한 밸런스 게임을 시작했다.

‘상대가 모르는 관계는 사랑이 아니다’라는 현실파와 ‘누군가를 향한 감정이 처음으로 싹튼 것만으로 충분하다’라는 낭만파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답이 나올 리 없는 싸움. 아이들은 결국 나에게 최종 판결을 요구했다.

이런 갑작스러운 질문이 익숙해질 만도 한데 여전히 버겁다. 아이들이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기에 이제 너무 나이가 들어버린 게 아닐까? 그런데도 여전히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이 아이들, ‘이파리들’이라 부르는 존재들과 함께하며 오늘도 ‘함께 할 추억거리’를 찾고 있다.




담쟁이들이 마른 나뭇가지 끝에서 연둣빛 싹을 밀어 올리던 봄의 길목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오니 업무용 메신저에 2학년 담임이 보낸 메시지가 와 있었다.


‘저희 반에 들어오시는 교과 선생님께, 아무개가 작년에 중국에서 전학을 왔는데 아이들이 놀리는 통에 중국 관련 이야기에 무척 예민합니다. 수업 중 조심 부탁드립니다.’


제자의 상처를 걱정하는 섬세한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메시지였다. 작년에 중국 중도 입국 학생들을 방과 후에 가르쳤던 경험이 있어서 이 메시지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 아이가 겪었을 상처와 외로움이 짐작되어 마음이 아팠다. 그 아이를 따로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문득, 비슷한 외로움을 알 것 같은 3학년 아이가 떠올랐다. 중국 중도 입국으로 또래보다 한 살 많은 나이, 그 공감대가 필요할 것 같았다. 다행히 3학년 아이는 흔쾌히 후배와의 만남을 수락했다.


점심시간, 둘은 내가 주로 사용하는 특별실(아이들이 부르는 ‘민실’)에서 만났다. 그날 이후로 그 아이는 복도에서 나를 보면 스스럼없이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렇게 마른 가지에 ‘첫잎’이 생겨났다. 그러다 어느 날, 첫잎이가 민실에 ‘두잎이’를 데리고 왔다. 외롭게 지내고 있을 줄 알았던 첫잎이에게 마음 맞는 친구가 생긴 것은 다행이었다. 그 후 두잎이는 같은 반에서 친한 ‘세잎이’와 ‘네잎이’를 줄줄이 데려왔다. 그렇게 민실은 ‘이파리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이파리들은 학원 가기 전 자투리 시간을 민실에서 채웠다. 유튜브를 보고, 숙제를 하고, 때로는 왁자지껄하게 모바일 게임을 했다. 처음엔 방과 후에만 오더니 나중에는 내가 있든 없든 쉬는 시간, 점심시간 가리지 않고 놀이터처럼 들락거렸다. 이파리들이 숙제하다가 배고프다고 아우성을 치면 나는 사물함 깊숙이 넣어두었던 냄비와 버너를 꺼내 라면을 끓였다. 처음엔 인원수만큼 끓였으나 어느 순간 예닐곱 개씩 끓여 먹는 풍경이 익숙한 일상이 되어 버렸다. 여름 방학식 날은 이파리들이 화채를, 내가 팥빙수를 준비해 2학년 선생님들께 돌릴 만큼 우리는 새로운 추억거리에 목말라 있었다.


나는 이파리들과의 추억에 좀 더 ‘의미’를 얹고 싶었다. 교육청 공모 사업에 신청해 50만 원의 예산을 받았다. 네 명 중 두 명이 다문화 또는 탈북 가정이어서 가능했던 지원이었다. 사업 내용 중 하나는 가정을 방문하는 것이었고, 두 아이의 집에 다녀왔다. 활달했던 세잎이는 탈북한 어머니와 살고 있었는데 어머니는 북한에서의 경험 때문인지 엄격한 가정교육을 고수했다. 세잎이는 그 엄격함이 늘 못마땅하다고 나에게 고충을 털어놨다. 두잎이는 한 학기 내내 첫사랑의 시련을 겪었다. 작년 체육대회 때부터 눈에 들어온 선배에게 용기를 내 고백했지만, 돌아온 답은 ‘선후배 관계로만 남고 싶다’였다. 쓰라린 아픔에 두잎이는 한동안 웃음을 잃었다.


이파리들 사이에도 파열음은 있었다. 어느 날은 세잎이가 두잎이와 네잎이에게 따돌림을 느낀다며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또, 첫잎이는 다른 이파리들이 철부지처럼 느껴질 때마다 답답해하며 말수가 줄어들어 다른 이파리들을 불편하게 만들기도 했다. 아들만 둘 키운 아빠로서 이파리들을 대할 때마다 ‘내게 딸이 있다면 저런 모습이었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들의 아픈 마음을 달래주려고 나름대로 애썼다. 힘들지만 그것이 내 마음 한구석의 빈 부분을 채우는 일이었다.


물론 이파리들과 늘 좋았던 것은 아니다. 이파리들이 선을 넘는 장난을 하거나 욕설이 튀어나오면 나는 정색했다. 그럴 때마다 이파리들은 내 호칭 앞에 ‘정색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특히 이파리들끼리 대화 중에 입버릇처럼 하는 ‘어쩌라고?’가 들려오면, 나는 자동 반사로 이마의 주름을 더 깊게 잡으며 그 녀석을 따끔하게 혼냈다.


이파리들도 내게 불만이 없지 않았다. 친한 선생님이니 수행평가 점수를 후하게 줄 것이라 기대가 있었나 보다. 하지만 성적은 친분 여부를 떠나 누구에게나 공정해야 했기에 이파리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배려하지 않았다. 학기 말에 내가 가르친 과목 성적이 1점 모자라 A등급을 놓치고 B등급을 받은 첫잎이는 성적 통지표를 들고 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울었다. 두잎이와 세잎이는 매시간 확인해서 점수를 부여하는 활동지 점수가 너무 짜다며 불만이 많았다. 좋은 소리도 자주 들으면 싫은데 하물며 볼멘소리야. 나도 모르게 짜증이 올라와 한 번은 몹시 크게 화를 냈다.


“내가 너희와 친하다고 해서 성적을 좋게 줄 수는 없어. 그리고 너희가 수업 시간에 집중을 안 해서 활동지 점수가 낮은 걸 왜 내 탓을 해?”


너무 속이 상해서 다음 날 아침부터 마주쳐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마주치기 싫어 일부러 민실에 가지 않고 교무실에 머물렀다. 그런데도 이파리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방긋방긋 웃으며 교무실로 찾아왔고, 학교 어딘가에서 만나면 환하게 웃으며 달려왔다. 축제 때는 교문에서 온종일 안전 지도를 하느라 다리가 저렸는데 행사가 끝날 무렵 안쓰러웠는지 다가와 두 팔을 벌려 안아주었다.


세상에 영원한 관계는 없다. 특히 사제지간의 관계는 더 그렇다. 해가 바뀌면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파리들과의 관계도 이제 저물어 간다. 담쟁이 이파리가 벽을 타기 위해 조심스럽게 싹을 틔웠듯, 민실이라는 공간에서 상처 입은 아이들이 서로를 향해 용기 내어 마음을 열어준 시간. 함께 팥빙수와 화채를 만들고, 냄비 가득 라면을 끓여 먹으며 웃고 즐긴 시간. 고운 한복을 빌려 입고 경복궁을 뛰어다니며 깔깔거렸던 장면들이 지금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내년 봄이면 학교 벽을 타고 올라온 담쟁이가 연둣빛 새싹을 밀어 올리듯, 새로운 이파리들이 나를 찾아오겠지.




마라탕 국물처럼 뜨겁고 맹숭했던 아이들의 첫사랑 논쟁은 시작이 그랬듯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리고 연예인 얘기로 넘어갔다가 같은 반 남학생 얘기를 거쳐 ‘선생님의 첫사랑'으로 다시 돌아왔다.


“쌤의 첫사랑은 언제예요?”

“누구예요?”

“첫사랑 얘기해 주세요.”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피할 도리가 없어 학교 건물벽을 휘감은 담쟁이 이파리처럼 조심스럽게 시작된 한 시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쩌면 이 이야기 속에 '첫사랑의 정의'에 대한 답이 있을지도 모르니 잘 들어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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