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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미노 Dec 18. 2018

노래로 기록한 육아 이야기

-둔대초등학교 교사 임동희(수원역밴드 기타리스트)

-수원역밴드는 교사와 경찰로 이루어진 밴드로 2008년에 결성하여 수원역 광장에서 거리공연을 활동을 하면서 시작했다. 결혼과 육아로 밴드 활동이 어려워지자 직장인 밴드 경연대회에 참가하면서 밴드의 명맥을 유지해오다 최근에는 혁신학교 아카데미 연수, 단위 학교 연수 등을 진행하면서 여러 선생님들과 노래를 매개로 교육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초임시절 한 학교의 선배교사가 아이가 자라는 모습과 육아 이야기를 사진과 일기로 기록한 것을 보았다. 그 매일 매일의 사진과 글들이 놀라웠고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10년이 넘은 지금도 그 모습, 장면들이 잊히지 않는다. 아이가 아내의 뱃속에 생기면서부터 나도 그런 모습을 닮아갔으면 했다. 하지만 매일 매일의 일기는 나에게는 참 버거운 일이었다. 사진을 찍는 것을 참 좋아하지만 그것도 쉽지는 않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우연히 나에게 맞는 내 아이에 대한 기록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때, 아내와 나는 KBS 다큐멘터리 '태아'를 함께 시청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비 부모로서 꼭 봐야 한다고 처제에게 추천을 받아 보게 되었다. 당시 우리 아가는 엄마 뱃속에 있었고 태명이 '몽실'이었다. ‘꿈이 익는다’는 뜻과 더불어 귀여운 딸이 태어났으면 하는 기대를 담은 태명이었다.


다큐멘터리 '태아'는 우리 아가 몽실이를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준 영상이었다. 뿐만 아니라 영상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새삼 느낄 수 있었고 태아가 성장하는 모습에 대하여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영상 중에는 뱃속의 아가를 위해 노래를 만들어 불러주는 부부의 모습도 있었다.


<♬ 몽환송 : 몽실이 환영 노래>


아내가 몽실이와 대화하면서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태교라기보다는 건강하게 태어나 주길 바라는기 도에 가깝지 않았나 싶다. 그런데 조금 훗날 이 노래는 다른 역할을 해주었다. 몽실이가 태어나서 맞는 첫 겨울에 수술을 해야 했는데 그때 회복실은 면회가 제한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우리 아기는 온 몸에는 갖가지 기계장치와 주사 바늘을 단 채 하루 이상을 혼자 지내야했다. 그 무서운 시간 동안 이 노래는 엄마 아빠를 대신해 몽실이 옆을 지켜주었다. 


그렇게 나만의 육아 기록은 시작되었다. 매일 매일 촘촘하지 않아도 커가면서 사진처럼 어떤 장면들을 담는 것. 지루하지도 않고 유쾌하고 특별한 기록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몇 개의 노래들을 만들게 되었고 그 몽실이가 이제는 ‘찬’이라는 다섯 살 된 남자 아이로 쑥쑥 크고 있다. 


이 글은 다른 혁신교육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들과는 조금 결이 다른 글이다. 순전히 개인의 경험과 이야기, 그와 관련된 노래에 대한 이야기이다. 교육에 대한 골치 아픈, 성찰하는, 무거운 글을 읽다가 다른 사람이 사는 것을 들여다보는 기분 또는교육 이야기 말고 잠깐 딴 눈을 파는, 정말 휴식 같은 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용기 내어서,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들었을 때의 글과 음악 세 개 정도 더 소개해보고자 한다.  

   


<♬ 생일축하해 찬찬찬>


우리 찬이는 빨리 기는 게 특기였다. 돌이 지나서 15개월 되어서야 걷기 시작했는데 좀 늦어도 걱정 없었다. 왜냐하면 엄청난 속도로 빨기 기어 다녔기에 그 에너지를 믿었다.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가족과 친지들이 이 녀석은 가만히 있지를 않는다고 할 때마다 내 어릴 적 성격검사 결과나 통지표의 '산만하다'는 문구가 떠오르며 나를 닮아버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고는 했다. 그렇게 바쁜 찬이의 모습을 보고 기타를 튕기다가 만들게 된 노래다. 찬이 첫 생일 즈음에 만든 노래라서 제목은 '생일 축하해! 찬찬찬!'이 되었다. 아빠도 해보지 않은 수술을 하고 지독한 공포를 이겨낸 찬이, 찬이의 첫 생일은 2월 20일이다. 하지만 조금 지나서 3월에서야 돌잔치를 했다. 심장에 큰 구멍을 치료하느라 수술을 하고 회복기간을 지내야했기 때문이다.


요즘 심장에 난 구멍을 메우는 수술은 시술이라고 할 정도로 간단하다고 한다. 하지만 찬이는 심실과 심방에 하나씩, 그것도 가슴을 열지 않고 간단하게 시술로 해결하기 힘든 부위에 위치한 것이라서 부득이하게 가슴을 열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은 우리 부부에게 첫 아픔과 시련이었다. 함께 기도하고 걱정하고 서로 토닥이고 격려하며 1년을 지내면서 수술할 날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니 마음은 담담해지고 수술만 하면 그 이후로는 괜찮다는 말에 깊이 의지했다. 그런데 병실에 있는 다른 아이들을 보면서, 찬이가 간단한 주사를 맞는 것을 보면서 지켜보는 것이 참 힘들었다. 수술실 앞에서 마취 수건을 든 의사에게 넘겨지면서 "아빠"를 외치며 스르르 눈을 감는 장면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다행히 수술은 잘 되었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한 달 정도를 보내면서 완전히 회복했고 그 즈음에 때가 조금 지난 돌잔치를 갖게 되었다. 1년은 외출도 자제했고 여행은 생각도 안했다. 수술 전에 다른 질병이 생길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찬이랑 어디든 가고 싶었다. 바다도 가고 싶었고 산에도 같이 가고 싶었다. 그런 마음도 노래에 담았다. 아내와 같이 멜로디언 간주도 만들고 친한 형이 카혼도 쳐주었다. 그렇게 노래를 만들고 다듬어 돌잔치 날, 이 곡을 노래했다.    



<♬ 찬이 하는 말>

     

찬이는 말이 조금 느리다. 그런데 이때 즘 찬이 말이 조금씩 늘기 시작했다. 아빠를 하루에 백 번도 넘게 불러대고 그 억양이나 표정이 참 다양했다. 책을 펼치며 꿀꿀, 멍멍, 야옹...먹을 때가 되거나 먹을 게 보이면 까까, 쭈쭈, 빵...

세어보니 아직 열개도 안 된다. 하지만 우린 소통이 잘됐다. 특히 엄마하고는 더 잘 통한다. 아가들이 모든 엄마들하고 그렇겠지만 참 신통하다. 요즘에는 나하고도 잘 통하는 것 같다. 최근에 이모라는 말도 했고 오늘은 비를 맞으면서 '비'라는 말도 했다. ‘앞으로는 말이 폭발적으로 늘겠지?’ 하는 기대도 한다. 


찬이가 요즘 하는 말을 갖고 노래를 만들었다. 귀엽고 행복하고 기대되는 요즘의 이야기를 가사에 담고 기분을 살리는 멜로디를 만들었다. 찬이 엄마도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다. 찬이와 함께 노래하는 느낌이라 좋다. 조금 더 크면 함께 녹음할 날도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참 기대된다.        



<♬ 메탈치아>


2018년 1월 겨울은 찬이의 충치 치료가 우리가족의 주요 사건이었다. 지난 여름과 가을, 열심히 먹었던 초콜릿, 아이스크림과 초콜릿 아이스크림, 사탕, 곰젤리……. 그 결과가 고스란히 네 개의 충치로 돌아왔다. 아내는 허용적으로 그런 것을 사주고 먹인 나를 탓하면서도 바쁘다고 잘 돌보지 못한 자신을 탓하며 마음 아파했다. 웃을 때마다 은색 메탈치아가 보일 것을 걱정하면서 우리는 치과로 향했다.


손과 발이 묶여 꼼짝 못하고 침대 위에 누워 치아를 긁어내는 그 순간을 견디는 것은 어른인 나도 무서울 것 같다. 그러니 찬이의 그 첫 경험은 오죽했을까? 침대 위에서 치료 중에도 찬이는 눈물 콧물을 다 빼내며 "앞으로 엄마 아빠 말 잘 들을게요!", "앞으로 이 잘 닦을게요!" 라고 정확히 들리지도 않는 말들을 크게 내뱉었다. 그런 약속은 며칠 가지도 못했다. 내 눈 앞에서 초코쿠키를 연속으로 두 개, 순식간에 눈 깜짝할 사이에 먹어치우던 날, 나는 그만 먹으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다가 이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 가사도 멜로디도 후다닥~ 

"찰칵~!" 그날의 장면을 사진으로 담지는 못했지만 노래로 담았다. 


요즘 다섯 살 찬이는 기차에 빠져있다. 그래서 2018년도는 기차 여행을 많이도 했다. 그러면서 함께한 이야기, 같이 다닌 기차역, 같이 탄 기차, 앞으로 우리의 계획들을 엮어 가사로 만들고 곡을 붙였다. 찬이가 이 노래를 신나게 크게 부르고 다닌다. 그럴 때마다 뿌듯하고 만든 보람을 느낀다. 함께 신나게 부르며 녹음도 했다. 그런데 아직 레코딩과 편곡, 믹싱 작업을 하지 않아 누군가에게 들려줄 구색을 갖추진 못했다. 어쨌든 나의 노래를 누군가가 자기 노래처럼 불러주는 것이 참 행복하다.     



위의 노래들에 담긴 이야기는 나만이 겪은 특별한 상황이지만 사실 다들 겪고 사는 그런 평범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글을 읽으며 노래를 들으며 옛날 다 자란 자녀들의 어린 시절을 떠 올리시는 분도 있을 것이고, 또 지금 비슷한 일을 겪는 분들도 계실 것 같다. 그래서 개인적인 이야기라 부끄럽기도 하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공감을 살 수도 있겠다 싶다.  


우리 부부는 아이를 키우며 재미와 의미가 만난 지점에 위와 같은 노래로 점을 찍어 두었다. 영상도, 사진도, 글도 좋은 기록이지만 노래로 유쾌하게, 꾸준히 기록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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