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소명여중 교사 이정요
양평에 자리한 청운중학교는 전교생 36명인 작은 학교다. 이 학교에 실험과 상상으로 똘똘 뭉친 선생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양평까지 달려갔다. 가정, 기술, 컴퓨터 세 개의 전공을 녹여 흥미로운 수업을 하고 있는, 교직경력 24년차 김주영 선생님의 수업 이야기를 들어보자.
점심 먹기 전에 손씻기를 유도하려고 기획한 수업이 있는데요. 일찍 배식을 받으려고 점심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급식실로 막 뛰어가요. 영양사 선생님이 지도를 하지만 손을 씻지 않고 배식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그래서 기술・가정(정보와 통신기술단원) 교과 시간에 물 컵에 물을 담아 놓고 여러 악기소리가 나도록 코딩을 했어요. ‘도, 레, 미, 파, 솔, 라, 시, 도’ 연주를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급식실에 가져다 놓았더니 아이들이 기다리는 동안 컵에 손가락을 넣어 보는 거예요. 소리가 나고 신기하니까 계속해서 손가락을 담그는 거죠. 그렇게 손가락이 물에 젖으면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손을 씻게 돼요. “손을 씻고 식사하자.”라고 말하는 것보다 아이들이 즐겁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손을 씻도록 하는 거죠. “물 컵에 손 소독제를 넣어도 좋을 것 같아요.”라는 의견도 있었죠.
음악 교과와 융합한 수업도 재미있었는데요. 작년에 음악 선생님이 제가 하는 수업을 보시더니 올해 같이 해 보고 싶다는 거예요. 그래서 올해 교육과정을 짤 때는 아예 음악 선생님과 함께 1학년 자유학기에 융합교육과정을 계획했지요. 기술・가정 시간에는 스크래치로 코딩하고 MakeyMakey보드와 연결해서 악기를 만들고 음악 시간에는 연주 및 합주를 하는 건데요. 악기는 가사실 조리도구, 쿠킹호일, 구리 테이프 등으로 만들었어요. 어떤 도구는 피아노 소리가 나도록, 어떤 도구는 드럼 소리가 나도록 코딩해서 연결해요. 조리도구에 손을 갖다 대면 피아노 소리가 나고 드럼 소리가 나는 거죠. 전류가 흐르는 거면 뭐든 악기가 될 수 있거든요. 아이들이 과학과 기술・가정 시간에 전기회로를 배우는데, 어떤 조리도구들은 연결을 해도 소리가 안 나요. 그럼 ‘아, 이건 부도체구나’ 또는 ‘회로에서 연결이 끊어진 부분이 있나?’ 하면서 연결이 끊어진 부분을 찾아서 연결하면서 자연스럽게 과학적 지식을 떠올리게 돼요.
기술・가정 교과서에 보면 가족, 저출산, 고령화, 복지 단원이 있어요. 이 단원과 마을을 연결해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고민을 했어요. 학교 앞에 나가면 오른 쪽에 큰 나무가 있는데 평상 시 어르신들이 10명 정도는 나오셔요. 한 번은 아이들이랑 인터뷰를 했는데, 어르신들이 10명 이상 나오면 앉을 의자가 부족하다는 거예요. “새 의자를 사드릴까요?” 했더니, “여기는 도로 옆이라 새 의자를 놓으면 가져간다.” 하셨어요. 좋은 의자가 아니어도 된다고 해서 학생들과 교육청, 주변 학교에 혹시 남는 의자가 있으면 보내달라고 연락을 했어요. 교육청에서 의자를 교체한다고 가져가라는 연락이 왔는데, 고급스럽게 천으로 싸인 의자라 비오는 날에는 젖겠더라고요. 그래서 학교 구석구석 찾아보니 급식실 리모델링하면서 나온 -인조가죽으로 된-의자가 있더라고요. 아이들이랑 그 의자를 가져다가 드렸는데 인근에 사는 할머님이 “아이들이 늙은이들에게 이렇게 관심을 다 가지고 고맙네.” 하면 눈물을 보이셨어요.
제가 시골 여주 출신이에요. 어렸을 때 시골 마을에서의 경험, 어르신들과 함께 지낸 시간들이 제 수업의 많은 부분을 자치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언젠가는 시골로 돌아가 그때 받은 것들을 환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남편한테 회사를 그만 두고 시골로 가서 살고 싶다고 설득해서, 가족이 함께 친정에 가까운 양평으로 온 거예요.
어렸을 적 살던 집 앞에는 자전거도 고치고 온갖 잡다한 걸 수리하는 곳이 있었는데, 아저씨가 수리하는 과정을 한없이 앉아서 보곤 했어요. 뭘 가르쳐 주시지는 않았지만 뚝딱뚝딱 변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며 ‘아, 이렇게 하니까 뭐가 만들어지네?’ 감탄했죠. 지금의 유튜브를 보는 것 같은 흥미로운 경험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학교에서 집으로 늘 다니던 시간이 있었는데, 늦은 시간에 지나가면 “오늘은 좀 늦었네? 어디 갔다 왔니?” 하면서 마을 어른들이 물으시는 거예요. 제가 하는 모든 일들을 마을에서 알고 있었어요. 그 때는 ‘왜 이렇게 나한테 관심이 많은 거지?’ 하면서 귀찮다고 느꼈어요. 그런데 지나고 보니까 ‘그게 관심과 사랑이었고, 나에 대한 지지와 격려였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죠.
겨울에는 동네별로 모여서 땅콩 껍질 까는 걸 돕곤 했어요. 껍질이 단단하여 반복적으로 오래하면 손이 아프니까 아주머니들이 도구를 만들어 오세요. 어떤 아주머니가 “내가 이번에 나무젓가락으로 만들었는데 이거 되게 편해.” 하면 다른 분이 집에서 만들어 봐요. 그러고는 “그래도 불편해서 고무줄을 감았어.” 하시는데, 저는 이 분들이 삶 속에서 뭔가 하나씩 바꾸어 나가는 걸 옆에서 자연스럽게 보게 되었죠. 공부를 많이 하시거나 과학적인 원리를 잘 알아서 만들 수 있었던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아이들에게 뭔가 불편하면 “그럼, 우리 이렇게 한 번 해볼까?” 하는 거예요.
지금 3년째 마을 어르신과 함께 수업을 하고 있는데요. 시작은 세대 공감과 마을의 전통을 이어보자는 취지로 시작했어요. 아이들이 향토 음식의 유래를 들으며 함께 만들어 보는 거예요. 올해는 전통 발효주(술) 담그기를 했는데, 지금 1,3학년 교실에서 술이 익어가고 있어요. 술 익는 교실이죠. 호호. 이런 수업은 혼자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올해 이런 수업 함께 하고 싶어요~”라며 계획서를 공유하면 본인의 교과가 연결하고 싶은 부분을 이야기를 해 주세요. 방금 소개한 수업도 과학의 ‘발효’ 단원과 국어의 ‘평화 감수성’ 수업 세 교과가 블록으로 묶어 함께 진행을 한 거고요.
학교가 작아서 모든 교과가 있지 않아요. 그래서 이런 수업을 다른 학교 선생님들도 함께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게 이야기만 들어서는 상상이 잘 안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다른 학교 점심시간에 가서 수업 시연을 했어요. 제 수업 시연을 보고 관심이 생기거나 한 번 해 보고 싶어 하는 교사들끼리 모여 현재 융합수업(STEAM) 연구회를 하고 있답니다. 융합수업 연구회는 중・고 교사로 구성되어 2년째 하고 있고요. 연구회에서 실제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지 궁금하면 모임에 편하게 참여하셔도 좋아요.
새로운 시도를 해 보고 싶지만 선뜻 용기가 나지 않는 교사들에게 편안하고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김주영 선생님은 “실험과 상상은, 삶 그 자체”라고 말한다. 실험과 상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고, 아이들이 수업이나 학교생활에서 건강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도록 고민하는 것. 그런 교사의 삶 자체가 실험이고 상상이라고 했다. 보기만 해도 긍정적인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김주영 선생님의 꿈은 “벌써 수업이 끝났어?”라는 말을 나이가 들어서도 계속 듣는 것이라 했다. 좋은 기운으로 아이들을, 학교를, 마을을 밝혀줄 호기심 천국 김주영 선생님의 꿈을 열렬히 응원해 본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