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의 역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by 박하


'역치'라는 것이 있다. 지구과학이었나, 생물이었던가. 아니, 물리시간이었나. 난데없이 등장한 골동품 같은 단어의 의미는 최소한의 자극 크기라고 했다. 시커먼 사내놈들 넷이 간 놀이동산에 기어이 자이로드롭으로 향했다. 금방 줄이 길어질 것이라는 나름 계산된 계획이었으나, 삽시간에 이루어지는 자유낙하의 충격으로 금세 모든 놀이기구가 허무해졌으니. 우린 머쓱하게 다른 것들을 외면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순수의 시대였다. 로맨스 영화를 보고 눈물 흘리는 일 쯤이야 뒤늦은 사춘기에 자랑스러움일 뿐이고. 주인공의 역할에 취해 우울함을 그대로 이끄는 일은, 소풍이 끝나고도 들뜬 분위기를 이어가는 학교생활보다 쉬웠다. 글 한번 써보겠다고 나선 일도 쉽게 성공하지 못했지만 학교의 과제로서는 충분히 쓸만했고, 한 문제를 틀려 울고 웃는 것이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사람의 기쁨 같은 것이야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가방끈이 짧은 나는 그것이 어떤 세계인지 모른다.


캐나다, 토론토. 나이아가라 폭포 (2013)


내 인생에 시험은 없다.


졸업을 하고 대학을 자퇴하는 동안, 더 이상 시험이 없을 것이라는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예상을 깨뜨린 건 허무하게도 운전면허시험이었지만 누군가와의 경쟁은 아니니 치를 만 했다. 합격에도 더 이상 기쁜 일은 그리 많지 않고, 시시콜콜한 감정에 울고 웃는 일도 사치가 되었다. 입모양으로만 부르는 생일 축하 노래에도 익숙해졌고 눈물이 날 때까지 웃는 일은 너무 먼 이야기였다.




어째서 쉽게 감동하는가. 쉼 없이 내달려도 모자랄 판에. 감동은 미성숙한 자들의 것들로만 여겨져 나는 그것을 소분 하여 담아놓는다. 미루어지고 밀린 울음을 터트릴 적엔 괜찮다며 웃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끄윽, 끄윽' 울음을 꺼내버렸다. 그렇게 딱 내일쯤이면 죽어버릴 것 같았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더 엄청날 줄 알았다. 사실 엄청났다. 충격적이었고 거대했고 아름다웠다. 이제 나는 감동을 못 느끼는 사람이 되어 모든 것이 평범해졌나. 토론토에서 살고 있던 누나의 도움으로 이 구석진 곳까지 쉽게 왔는데 나는 충분히 기뻐해 주지 못했다. 감동의 역치가 너무나도 높아져서.


터키, 카파도키아 괴레메. (2014)


나는 분명, 안 타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100달러가 넘는 금액을 지불할 가치가 있나 고민하던 사이에 새벽은 왔다. 고약한 터키 놈과 대판 싸우고 난리를 쳤으니 이 동네에서 열기구를 탈 생각은 접어야 했다. 괴레메에서 한 달이나 캠핑 생활을 한 형의 말이 기억난다.


"나중에 카파도키아를 간다면 기억해. 내가 거기서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봤는데, 새벽에 선셋포인트에 올라가면 사람이 없거든. 와인이나 맥주 한 병을 챙겨. 자리를 잡고 앉아 마셔. 그게 최고야."


100달러짜리 열기구 탈 돈은 없어도 10달러짜리 싸구려 와인 정도는 사보자. 슬리퍼를 터덜터덜 끌고 올라간 포인트는 태양 대신 별이 지키고 있어 고요 그 자체였다. 새벽 바람이 차, 먼저 코르크를 따고 벌컥벌컥 들이켜니 열이 좀 오른다. 땅콩이라도 한 줌 사 올걸. 어제 그와 다툰 일이 억울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내가 가난한 여행을 하고 있어서, 외로워서도 아니었지만 정말이지 꼴 사납게 울었다. 지구 반대편에서도 나를 기다리고 있을 사람은 없는데 뭐가 그리웠는지 오랜만에 펑펑 울었다.


감동할 수 없고 미성숙했던 나는 어디로 갔는지, 이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도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즐기지 못하고 있는지. 활짝 벌린 팔로 끌어안아보니, 팔 한쪽이 없었다던가 하는 것처럼. 꿀꺽꿀꺽, 안주도 없이 남은 팔로 술병을 든다.


일출과 동시에 부푼 열기구들이 날아오른다. 둥실둥실. 감동이, 감정이 떠오른다.


알고 보면 여태 감동이란 놈의 역치는 짜릿한 스파크가 아니었다. 물 위에 떨어트린 잉크 방울같이 서서히 스며든다. 마치 햇살처럼. 그래, 어쩌면 나는 참 납작한 감동을 잊고 있었는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