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식당

그래도 맛있잖아, 치사하게.

by 박하


어느 곳에 가면 옛날 홍콩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중국어를 어설프게 흉내 내며, 그저 동양인인 나를 뭉뚱 그러 본인들의 농담거리로 삼는다. 그러나 이미 다른 나라 사람들이 깊숙이 들어온 땅에선 대놓고 날 경멸하지 못한다. 여기 어딘가의 골목에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또 아직 사람들의 발길이 충분히 닿지 않은 곳은 호기심과 두려움과 공존한 눈빛을 조용히 보내곤 한다. 낯선 것에 대해 느끼는 막연한 공포 때문에.


길을 걷다 불특정 다수가 건네는 익숙한 놀림이라도 매번 받다 보면 불쑥 그런 마음이 떠오른다. ‘차라리.'




불편한 식당


짧게나마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나를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그 흔한 음악 하나 틀지 않은 레스토랑이었다. 평가가 제각기 다른 이 식당은 모두가 한결같이 ‘불친절’을 말하고 있었다. 내가 궁금한 건 ‘맛’인데. 그러나 사람들은 꾸준하게도 갔다, 어제도 다녀갔다는 기록이 있으니 이 곳은 범상치 않다. 단지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쓰기엔 음식의 값이 컸다. 다른 식당보다 절반이나 저렴하다는 이야기에 이내 마음을 굳혔다.


중국인들이 그 속엔 가득했다. 사람들이 주문을 여러 번 바꾸는 통에 거동이 불편한 듯한 할아버지는 때로 인상을 썼다. 난 이 분위기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그래, 식당이라는 것은 주인의 마음이 아닌가. 몇몇은 일부러 욕쟁이 할머니도 찾아가는 마당에, 이 어찌나 본능적인 식당인지. 그 어처구니없는 모습에 하하하 웃고 말았다.


생긴 건 이 모양인데.


불편한 그 식당의 요리가 어떤 맛이든지 간에 한국인들은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버렸다. 천성 탓인지 중국인들은 눈치를 보지 않았고, 주인의 그 괴팍한 몸짓을 잘도 견뎠다. 동양인들은 음악이 흐르지 않는 식당에서 어떤 말로 공간을 채울지 알지 못했다. 주인 할아버지는 귀마저 잘 들리지 않는지 이따금 큰 목소리를 내고 그럴 때마다 모두는 흠칫 놀라며 경직됐다.


그는 동양인들에겐 식전 빵도 내오지 않았다. 왜? 추가 요금이라면 먹지 않으니까. 인종을 구별하여 손님마다 남다르게 제공하는 서비스, 메뉴가 오래 걸릴 걸 알아서 하는 '메뉴 통일’ 등의 강제성까지, 여태 경험한 노인의 머릿속 빅데이터들은 성실히 움직여 모든 것이 그에게 완벽하도록 식당이 돌아가고 있었다. 다양한 종류의 리뷰가 다시금 떠오른다. 다만 이 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나처럼 판단당하길 싫어할 뿐이었다고,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저 그 패기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관광객을 보아왔을까. 이 곳에 벌어진 상황과 당황하는 이들을 구경하는 건 아주 즐거운 일이었다. 사람들이 청결과 서비스라는 본질과 동떨어진 것을 중시하는 것은 어째서일까. 본디 식당이란 음식의 맛이 본질일 텐데. 서비스랍시고 제공되는 감정들에 값어치를 매기려거든 이미 다른 곳보다 반이나 저렴한 이 식당에 발을 들이지 말았어야 했다고, 나는 생각했다.


그만큼 맛에 자신이 있었겠지.


요리를 기다리며 미리 맥주 하나를 시키고선 홀로 흥겨워했다. 사실 그는 느리지 않았다. 자세히 보니 그는 늙은 몸을 대신해 최대한 효율적인 동선으로 몸을 놀리고 있었다. 불필요한 이동은 없었고 그러나 한꺼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하진 않은 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웨이터에게 웃음이 필수요소라고 누군가 정의한다면 잘렸을지도 모르나 공교롭게도 그는 숙련된 오너였다. 이윽고 나온 요리의 맛은 물론 훌륭했다.







모든 여행자는 시간을 조각내어 지금 이 순간에 디딘 곳을 바라볼 수 있는 특권이 있다. 나중에 다시 오지 않는 한 바뀐 것들과 변화 중인 그 어떤 것도 느끼긴 힘들지언정 오늘의 조각을 맛볼 수 있는 것. 이방인은 때로 어느 순간에도 비빌 곳 하나 없나 싶게 외롭더라도, 그 값을 지불하고 분명 얻는 것이 있다. 아마 등가교환이라고 하던가.

나는 시간의 흐름, 그 전과 후에 대하여 어떤 기대와 태도를 취해야 하나. 하나의 사회가 시간의 등에 업혀 변화하고 있는 중이라면. 과연 어떤 것이 옳은 것일까, 사실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에도 난 이 상황을 편안해하고 있었다. 나의 기준과 다른 기준점으로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가진 ‘편리함'.


어쩌면 당연시 여기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흥정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지정된 금액들, 어디든 있는 인포메이션 센터, 검색 한 번에 전부 나오는 온갖 모양의 정보들. 나는 그 편안함에 마음이 살짝 솔깃했었는지 모를 일이다.


언젠가 모든 곳이 변하고 혹은 어떤 영향에도 변치 않는 곳으로 일절 나뉘게 되는 때가 올 때, 이 길고 긴 여정은 끝나지 않을까 짐작해 본다.


그 어중간함을 그리워할 때가 온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