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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방인

19인실 도미토리

작지만 무한한 공간.

by 박하


스물은 너무 많은 것 같고, 그러니 열아홉으로 하자. 아마 이렇게 19인실이 된 건 아닐까. 난 있는 힘껏 구겨 넣은 열아홉 번째 침대를 배정받고서 배낭을 들어 방으로 향했다.


좁은 공간에 빽빽이 놓인 이층 침대, 열아홉의 인간은 열아홉의 패턴을 가지고 생활했다. 짐작컨대 마지막 번호인 나의 침대는 왠지 공간이 남는 것 같지 않냐는 주인의 제안에 방 한 켠으로 들어왔을지 모르겠다. 이 층 침대에 머무는 건너편의 친구들은 홀로 독립되게 놓인 단층의 나를 보고 부러운 눈빛을 보냈다. 너흰 위층의 파트너가, 혹은 아래층의 파트너가 움직일 때마다 같이 흔들려야 하잖아. 난 그렇지 않단다. 너는 홀로 침대를 차지하고 누워 편하겠다고.



남자 하나는 매일 아침, 왁스를 한 시간쯤 바르느라 화장실에서 나오지 않았다. 모두가 민폐라고 생각했다면 그는 눈치라도 봤을 테지만 일찍 일어나는 하루를 사는 건 열아홉 중 그와 나뿐이었다. 칫솔을 삼십 분쯤 물고 있다 보면 치아가 전부 사라지는 기분이 들었고 소리조차 낼 수 없을 정도로 입은 터질 듯 부풀었다. 전부 아침을 사는 사람들이었다면 화장실은 남아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또 다행스럽게. 대부분은 밤을 즐기러 나갔다. 이 도시는 클럽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온갖 종류의 술집과 밤에만 여는 식당들에 사람은 바글바글했다. 골목마다 있는 이들은 전부 술병을 쥐고 있었고 띄엄띄엄 울리는 고성과 더불어 병이 깨지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나의 바로 맞은편 이층 침대를 쓰는 커플은 늘 침대 하나가 비워져 있었다. 늦은 밤까지 놀다 들어와 한 침대에서 부둥켜안으니, 나머지 하나는 필요도 없을 테지만 저 정도면 호스텔에서 숙박비를 깎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도 들었다.



난 이따금 밤에 홀로 앉아싶기도 했는데 골목에 빈 손으로라도 나가기 어색해 담배를 물고 싶다는 생각도 때로 들었다. 그들은 날 홀로 두지 않았다. 열아홉 명쯤 되는 사람 중 꼭 하나 정돈 내게 관심을 가졌다. 어느 나라에서 왔어, 왜 왔어. 그의 호기심을 채워줄 생각이 없었던 나는 퉁명스러웠다. 네가 여기에 온 이유와 아마 비슷하지 않을까.


나는 나쁘게 굴고 싶었다. 정말.




어느 아침이었다.


두 시간에 걸쳐 울리는 알람에 한계를 느낄 무렵 그녀는 잠에서 깼다. 사실 친구에 의해 깨어졌다. 한동안 함부로 떠들지 못하는 이른 아침이었기에 그녀들은 소리 죽인 비명을 지르며 한바탕 다투었다. 친구는 너 때문에 기차를 놓쳤다고, 지금 택시로 따라잡으면 늦을까 하며 이런저런 아무 말을 뱉다가. 차라리 아예 느지막이 가겠다며 다시 돌아눕는 그녀의 말에 냉정하게 짐을 싸 먼저 떠났다.


삽시간에 홀로 남은 그녀는 내가 씻고 점심을 만들어 먹고 책을 펼칠 때까지 자다가 일어나, 아무도 없는 19인실 도미토리에 남아 있는 나를 보곤 친구의 행방을 물었다. 글쎄 아까 너랑 싸우고 떠났는데. 그녀는 캐리어에 마구 짐을 쑤셔 넣으며 쉼 없이 중얼거렸다. 뱉은 말 중 내가 알아들을 수 있던 건 욕뿐이었다.




각양각색의 사람을 보여 여러 가지 모양을 이해할 수 있기에 최적화된 공간은 더러 좁게도 느껴지지만. 인간이 어느 정도의 공간이라면, 어느 정도의 짐이라면 살기에 충분하다는 걸 느끼게 해 준다. 그리고 사람 사는 데 다 똑같구나 싶은 마음 역시.


나는 이 작은 세계를 사랑하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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