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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ug 14. 2017

감히 네게 따뜻할 수 있을까

그 곱던 살구나무 아래.


소년! 불러보았습니다. 안쓰럽거나 하진 않았습니다. 멀리 앉아하던 짐작이 부끄러워졌을 뿐이지요. 아침 무렵 소년 하나가 긴 막대를 가지고 이리저리 부딪치며 마을을 시끄럽게 합니다. 우유를 진하게 탄 커피를 입에 대자마자 큰 소리에 고개가 돌아갑니다. 새로 건물을 올리는 공사장 한편에서 유리 없는 창틀에 매달리고, 드러난 철근을 때리며 즐거워합니다. 공사장에서 일하는 인부들은 귀찮은지 저리 가라 하면서도 소년을 직접 내보내지 않습니다. 무지개 빛깔의 멋진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습니다.


소년! 다시 불러보았습니다. 이제 완만한 사다리를 타고 건물 위로 올라간 소년은 인부들이 쓰는 컵을 주워 모아 철근에 걸었습니다. 낯선 음성이 부르는 소리에 주변을 두리번거려보지만 찾지 못합니다. 가만히 지켜보기로 합니다. 빈 물통까지 걸고 두드리니 제법 소리가 멀리까지 울립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미소가 떠나지 않는 소년의 얼굴이 선명합니다. 소리에 관해 천재성을 띈 아이가 아닐까. 나직이 말하는 일행과 한참을 지켜보다가 일어섭니다. 아무래도 가 봐야겠어.



소년! 사다리에 올라 불렀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놀았는지 선글라스가 비뚤어진 소년을 마주하고 저는 멈칫했습니다. 눈동자가 없는 소년의 한쪽 눈을 보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다가가 선글라스를 고쳐 씌워주고, 사진을 찍어도 되겠느냐 물었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하곤 놀이에 집중하는 소년을 찍었습니다. 다행히 저는 사진을 보여주는 일에선 멈칫하지 않았습니다. 잘 보이지 않을 눈을 가지고 낯선 사람에게 경계를 두지 않는 소년에게 보답하기 위해. 개구쟁이 골목 대장일 거라는 추측은 그 초점 없는 눈을 보고도 결코 내려앉지 않았습니다.  다만 부름이 두 번째가 되었을 때, 손을 잔뜩 흔들어도 찾지 못하던 소년은 동네에 하나쯤 있던 바보가 아닐까 여겼던 생각이 내내 지워지지 않아 저를 꾸짖어야 했습니다.





범인이 되는 시간.


여행사에서 앞다투어 소개하는 곳이 끌리지 않았다. 개방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는 말에, 가는 길이 얼마나 험한가는 흘려들었다. 물이 흐르고 인공적인 소리라곤 없는 마을. 그 국경 근처의 마을은 말도 통하지 않았고 이방인을 무서워했다. 종교적 이유로 사진을 거부했으며 덕분에 마음 편히 카메라를 두고 다닐 수 있었다. 바람과 꽃과 별을 품어 왔으니 금방이라도 고장 날 듯 흔들리던 버스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많이 변했어요. 고작 몇 년 전의 일이라고, 추억을 나눴던 형을 우연히 길에서 만나 끌어안았다. 해시태그를 걸며 하나도 없던 사진과 마을의 이름은 이제 무수한 게시글로 뒤덮여버렸다. 어느새 이렇게 된 걸까요. 그런 곳은 올리면 안 돼요. 난 그리 넘치는 팔로워를 가지고 있지도 않아요. 변명이 어색하도록, 며칠 후 떠날 예정이라는 말과 함께 씁쓸한 악수를 나눴다. 달러와 초콜릿을 달라는 아이들, 사진을 찍을 때마다 돈을 요구하는 사람들. 아이들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는 이방인을 보고 표정을 숨길 수 없었다. 내 탓이다. 제 발 저린 범인의 기분은 이렇지 않을까.


당신이 여행자라서 괜찮은 건 아무것도 없다.

단지, 그렇게 생각할 뿐.


일상을 침범당하는 것에 닳아버리면 삶이 어떤 방식으로 바뀔까요. 한 때 답이 없는 그 고민을 두고 했던 질문은 스스로에게 칼이 되어, 며칠 악몽을 꾸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일이 그치지 않았으면 한다. 이기심일지언정 내가 하는 일을 좋아한다고 스스로를 속이는 순간이 오면 얼마나 힘들어질지 불 보듯 뻔해서. 나는 나의 여행을 해야겠다. 흔적을 남기지 않는 일에 꾸준하도록, 그리하여 아픈 마음을 수신인으로 두어 편지를 건넨다.





조금 부딪혀 다치면 어떻습니까. 급하게 사람에 빠졌을 때, 그래서 헤어 나오기 힘든 순간들이 온다면 참 빠르게 아팠다고. 그래서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고. 속상해 하지만 않으면 될 일이 아닙니까. 술 한 잔 들어가 얽히고설켜서 다시 우리는 살아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친구가 있고, 믿지 못할 풍경이 있으니 그걸로 된 것은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나는 지금을 사랑한다고 할 수도 있겠지요. 뒤에, 나는 지금을 만족할까요. 그리고 아마도 확실히 그럴 겁니다. 지금껏 그랬으니까요.


묻는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이런 막무가내는 또 어떤가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처럼 알 수 없는 말들이 가득하고 나중에는 어떤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할 겁니다. 난 그 순간을 참 좋아했다고 말할 겁니다. 이런 작은 다짐과 이면지에 적는 말들은 어딘가 버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죽을 날을 점찍어 남겨두고 가진 않을 테니 다만 부디 하루하루 행복해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따름이지요. 아마 반드시 그럴 겁니다. 감히 당신에게 따뜻하도록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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