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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l 22. 2017

그리운 한 잔

일요일 아침의 커피는.


터키식 커피를 가라앉혀 먹는 것이란 소리를 나중에야 듣고 그 알던 체가 부끄러운 기억으로 업데이트 되었다. 가루를 가라 앉혀 커피 점을 보는 것이란 말에 프로그램 하나를 깔아 기다리길 삼십 분. 이것 프로그램이 아니라 수작업으로 타이핑 하고 번역해주는 것 아니냐며 웃었던 기억이 있다.


커피를 처음 마셨을 때, 나는 심장이 터져 죽을 것이란 말이 딱 맞았다. 겁이 나고 마시지 않길 몇 년, 이제 제법 커피의 향과 산미를 느끼게 된 오늘. 티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커피가 더 좋아요 답하길 몇 번. 한 잔으로 성이 차지 않는 카페인은 충분히 혈중에 짙은 농도로 남았다.


가루 커피를 물에 녹여먹던 기억이 남는다. 믹스도 나쁘진 않으나 차지하는 부피와 구하기 힘든 그 뜨거운 물을 생각해 봉지에 얼마간 담았던 원두 가루. 찬 물에 차근히 녹여 까맣게 섞이길 기다리던 그 깊은 산골엔 혼자가 아니었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호호 불 필요도 없는 찬 커피를 왜 천천히 마셨는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었다.




전기가 끊겼다. 음악이 나오는 이유는 충전식 발전기 때문이었다. 전기가 자주 끊기는 덕에 커피 머신을 쓸 수 없던 날, 먹을 것이 없어 가만히 앉아 전기가 들어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각자의 여행을 말하는 일에 오늘은 어쩐지 끼어들기 싫어 가만히 있었다. 커피를 내오는 사람은 조금 시큼하다는 말을 하며 되려 원두는 어떤지 맞는 원두가 있을지 미심쩍어했지만 노랗게 볶은 머리를 쓸어넘기던 그의 자신감에 입술을 댔다. '맛있다' 열악한 환경에서 끓여내기 위해 더 많은 손을 썼을 잔을 전부 비울 때까지 맛은 변하지 않았다.


잔에 어떤 다른 것, 이를테면 술이 담겼을 때엔 기분이 야릇했다. 온갖 빚깔에 어쩌면, 차라리 색소를 넣은 것은 아닐까. 강렬하게 오르는 향에 마음 한 결이 잔뜩 담대해지면 변명삼아 터울을 트고 자지러지게 웃었나보다. 그러나 술을 권하는 일은 싫어서 그런 상황이 오면 꺼렸다.


각종 색이 들어간 칵테일이 유혹하는 일 역시 적지 않았다. 화려하게 꾸며진 맛이라는 건 불 같이 목을 태우고 지나갔다. 값도 더러 비쌌고. 여러 모양의 잔을 보며 마시는 일을 배워야 하나 진지한 고민도 있었다.





냉커피 천원. 플라스틱 물통에 믹스를 잔뜩 넣어 얼음에 부어주던 그 기억은 또렷하다. 도시에서 만들어 놓은 공설운동장에서 하는 체육대회였다. 더운 날에 조악한 플라스틱 물통이었지만 탁한 갈색의 음료는 청량감이 느껴질만큼 시원했고 달디 달았다.


군 시절 자판기 커피를 호호 불어마시고. 뙤약볕, 피할 길 없는 산티아고의 해를 지나 마시는 카페 콘 레체 한 잔. 그 기억에 남는 그리운 잠깐의 잔들에 추억이 얽혀 설탕처럼 녹았다. 한참을 멍 때리며 죽이는 시간을 기억할 수 있다면 기꺼이 주머니의 동전을 꺼내리라.


바람과 같은 마음으로 달려오는 사람이 가끔 있다. 일요일엔 여행도 잠시 쉬자며. 매일 꾸준히 커피를 쉬지 않고 내리는 그와 이문세를 틀어 놓은 채 다시금 잔을 든다. 시간이 흘러 언젠가 그리워질 기억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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