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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l 17. 2017

말의 온도

그리고 당신이 부디 알았더라면.


모르는 언어를 이용해 함부로 말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다. 모르는 이의 초상을 담으려거든 필수였던 대화들이 한결같은 언사이길 바라고, 상대가 알리 만무한 언어를 휘둘러 함부로 이야기하지 않겠노라고. 그간 무심코 뱉은 문장들이 뒤엉켰지만 '무심코'가 면죄부는 될 수 없었다. 이런 다짐은 차라리 더 이상 업보를 쌓지 않을 방파제와 같이 얼마간의 수고를 거쳐 좀 더 다듬어진 사람이 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두었다.


나도 그의 언어를 모르고, 그 역시 나의 언어를 모르던 날엔 적당히 자신의 말들에 취해 이야기했다. 조금은 적당히 알아듣겠거니 했던 착각이 착각이라는 걸 깨닫게 된 순간은 양쪽의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오고 나서였다. 터무니 없던 각자의 이해를 알고도 웃으며 만족했던 건 분명한 그 온도 때문이지 않았나. 따뜻한 무게가 실려오는 동안 꼭 상대의 눈을 맞추고 있던 시간들로부터.


수고스럽게 꼬박 며칠을 더 머물며 맞춰가던 온도를 기억한다. 나의 기분과 안위를 최우선으로 하던 가족의 걱정을 거스를까 최선을 다했다. 여전히 그와 나는 눈짓으로만 통했으니 되려 그와 그의 갓난아들이 더 섬세한 소통을 하진 않았을까.




모든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 좋으련만 싶던 게 지난 날이 되고부터 높고 낯선 톤과 어조, 숨의 길이는 너무나 재미난 일거리가 되었다. 대화가 막히던 순간이 오면 어느 정도는 같길 바라는 간사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으나 그 고개를 떨궈버릴만큼 힘이 제법 자라고는 보이지 않던 진심까지 보였다. 가끔 무너지려는 순간에 녀석은 특히 힘이 세졌다. 기특한 녀석이었다.


대화를 마친 뒤 말투를 체크하고 말을 삼켜 아끼는 연습은 서툴지만 꾸준히 늘고 있다. 모자랄지언정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으니까. 침묵이 금이 되는 순간들은 짜릿했고 조금 더 나아졌다는 기분까지 얻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더 오래 묵힌 것들은 글로 써보자 했다.



많이 변했네.


스스로의 변화에만 민감했던 날에 듣게 된 말은 썩 좋지 않았다. 한결같이 변화를 거부하던 낮들이 여러 번의 밤과 함께 지나고, 입으로만 외치던 인정은 기어이 존중과 함께 왔나보다. 비로소 사람을 사랑하게 된 순간에 날씨는 어찌나 맑던지 눈이 부시게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아, 행복해- 말해버렸으니.


비죽비죽 새어나오는 웃음을 편하게 뱉지 못하고 읽던 책을 덮게 한 대화에서 느낀 기쁨은 크기가 그마만큼 컸구나, 그렇게 사랑하게 된 말의 재미를 당신은 알까. 흐린 날씨에 무지개가 뜨는 기분을. 여전히 맑다고 할 수 없는 문장까지 소중히 여기게 되었으니 그걸로 됐다.




하늘이 높던 날, 그는 얼마나 서러웠는지 도시의 말을 배울 사람도 없는 땅에 지어진 허름한 집을 두고 무너진 축사만 가르키며 울었다. 양과 염소가 누울 자리를 걱정하는 그가 헝클어진 머리칼을 제치고 입술을 움직여 한 말이 어떤 뜻이었는지 끝끝내 모르지만, 그 뜻을 안다. 소리도 없이 빨갛게 충혈된 눈과 흐르는 눈물을 손바닥으로 살짝 가리며 했던 말은 뜨거운 온도에 그대로 익어버렸으니까.


손을 꼭 쥐고 차라리 그 온도가 없다면 모를 수 있었으리라 여기며, 걱정 말아요. 같은 온도의 말을 골라 소리를 내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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