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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턴 티켓

귀국 비행기를 타는 일.

by 박하


비행기를 타러 가는 길이 미리 고달프고 힘이 드는 건 서울행 뿐이었다. 벌써부터 마음이 바빠지고 기분이 울적해지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 비행기표도 최대한 늦도록 발버둥쳤지 않은가. 차라리 불편한 공항에서 덮을거리도 없이 하루를 더 버텨보자고 생각하다가 마음을 접는다. 결국 방심할 겨를도 없이 매정하게, 여름 초입의 습한 열기가 서울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아침 비행기로 한국을 떠나는 길엔 항상 공항에 전날부터 자리를 편다. 면세구역도 아니면서 벌써 한국이 아니라고 생각한 탓인지 공항은 더할나위없이 편했다. 이미 떠나는 마음은 먼저 출국한 상태였고 곧 따라 나갈 몸뚱이도 피곤을 몰랐다. 왜 그렇게까지 떠나고 싶어했는지 여태 알 길이 없다. 사실, 적당히 모른 척 하는 중이다.





반 박자 일찍.


촉이라도 있는 것일까. 아들이 올 타이밍에 매번 귀신같이 그 타이밍을 알아채곤 하는 연락이 아들은 싫었다. 접을 붙이듯 조심스레 묻는 안부는 언제나 나를 살 떨리게 했는데, 경우는 두 가지 였다. 아프거나 혹은 명절이거나. 엄마가 달고 살던 기침이 유독 해외에선 크게 울리는 통에 부랴부랴 전화를 끊었다. 동네 친구에게 알려준 귀국 날짜가 부모님의 귀에 들어가는 바람에 부렸던 호들갑은 다시 겪고 싶지 않았고 귀국 일자가 기밀이라도 되는 양 숨기고 숨겼다.


아들이 어디있는지 집요하게 묻는 날이면 바쁘지 않은 사람에게 바쁜 척이라도 해달라고 종이에 적기도 했다. 이제 종종 아프다는 말을 전하는 엄마의 전화가 잦아질 때의 불안이, 그 아픈 사이를 넘겨 돌아와 다시 치료 된 모습을 보면 금세 사라져 없던 것이 되었다. 사실 안 아팠던 것은 아닐까, 불효막심한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낸 적도 결코 없다.





가르치려 든 것은 아니지만.

엄마는 더 이상 시시콜콜한 그 안부를 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보다 큰 스트레스가 되어 두통을 앓는 아들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번에 건너 듣게 된 부모의 병세가 깊다는 말을 듣고 아무 감정이 없었다. 하다 못해 이게 정상인걸까 의사인 친구에게 물어야만 했다. 그 아프다는 말을 신경쓰게 되어 내가 비행기를 바꾼 적은 없었으나, 그 말이 서울행 비행기의 날짜를 고르는데 영향을 끼친 건 사실이었다.


터미널

환승 터미널에서의 스물하고도 세 시간은 보통 고역이다. 그래서 공항을 벗어나 하루 푹 자고 오려 했는데. 나가려 했던 계획이 물거품되고 꼼짝없이 잡혀야 했던 이유는 평소에 사지도 않던 와인 때문이었다. 결국 이럴 운명인가 싶어 시간이 늦어졌을즈음, 가장 빛이 들지 않던 구석 벤치에 자리를 편다. 화장실에 가려거든 모든 짐을 들고 일어서야 할 것을 알기에 미리 본 용변과, 어둡고 편안한 나의 자리를 탐하는 공항 노숙자들의 눈빛에 '참 잘했다' 생각도 들었다. 오늘의 잠자리라며 차갑고 딱딱한 벤치를 찍어 보낸 메시지를 본 친구가 대신 슬퍼해주니 그 곳에 내 몫의 슬픔은 없었다.


한국에 갈 이유라는 건,

오래도록 써 온 체크카드의 기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공인인증서도 하지 않으면 귀찮아지니까. 떡볶이가 먹고 싶기도 했고, 교환학생을 떠날 친구를 만나야 하기도 했다. 꼭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일을 열심히 떠올려보지만 영 탐탁치않다. 그런고로 한 번 보고 말 사람들에게는 귀국이 얼마나 싫은지 치를 떨며 말해도 상관없으니 그 한을 다 내려놓고 풀었다.





미루고 미뤄 다른 일정의 비행기를 비싼 값에 치르고, 꽃이 필 계절을 지나 맞은 여름이 이 곳에도 뒤늦게 내려 앉았다. 어딘가 체한 느낌이 들어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가만히 공항에 마련 된 스크린의 비행편을 노려본다. 바뀌는 건 없었고, 관제탑이 바빠 지연이 되었다는 말도, 태풍이 올라온다는 둥의 천재지변 역시 없었다. 사실 일어날 일 없는 터무니 없음을 애타게 바라고 있었다.


긴장이 풀어져 어느 새 잠이 든 걸까. 어둠이 깊어지고 종종 들리는 한국말의 볼륨이 사나워 깰 때면 잠에서 덜 빠져나와 깜빡거리는 정신이 비행기표를 확인했다. '서울' 확실하게 서울로 가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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