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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방인

신과 함께 걷던 날

카미노 데 산티아고.

by 박하


천로역정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릴 적의 엄마는 종교적 의미로 아주 신실한 사람이어서 제게 신을 강요했는데, 만화로 된 성경 이야기 따위로 흥미를 끌어보려 했었나 봅니다. 조악한 그림체였지만, 천국을 향해 걷는 길 내내 악마가 건넨 온갖 역경을 딛는 그 과정이 무서워 전 밤에 잠도 못 잤습니다. 한참 시간이 흐르고 산티아고를 걸어보니 가는 길 전부가 곧 지옥도, 왜 그 책이 그리 쓰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지요.





멀쩡한 옷이라곤 두 벌 밖에 없는 저는 덜 마른빨래를 다시 입습니다. 몸의 온기로 말려야죠. 마치 시린 걱정에 다시 용기를 불어넣는 일이랄까요. 하루에 걸어야 하는 일정량의 거리를 채우면 해가 저물지 않았어도 멈추고 쉬기로 합니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고생시킬 악취미는 없기 때문에.


늘 햇살이 떠올라 땅이 데워지기 전에 걷습니다. 불이 없어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더위를 피할 수 있습니다. 눈을 잃고 시원함을 얻느냐, 눈을 얻고 더위까지 얻느냐는 본인 몫입니다. 저는 더위보다 눈이 없는 공포를 더 얕봤을지 모르겠네요. 새벽부터 캄캄한 방 안에서 소지품을 잊지 않고 챙기는 일은 배낭을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시험하는 일입니다. 물건들을 미리 정한 위치에 넣고, 마지막으로 더듬더듬 침대를 쓸어보는 일은 누운 자리의 온기를 챙기듯 정성스럽습니다.



밤의 숲은 무섭습니다. 이것도 마치 걸음처럼 이틀 정도면 익숙해지겠지 했는데 아니었나 봅니다. 차가운 팻말을 볼 때면 등줄기가 서늘해지고, 가끔 보이는 농장에선 무서운 인형을 허수아비로 쓰다 보니 휑한 바람이 불면 괜히 겁이 납니다. 그리고 개가 컹컹 짖지요.


10킬로가 좀 넘는 배낭을 하루에 오만 번씩 밀어 올리다 보면 고장이 납니다. 발바닥과 발목이 말이죠. 걸음이 익숙해진다는 말은 여전히 우습고, 시큰거리는 것들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다 보니 혹여 더 심각해질까 아껴 둔 파스를 꺼내 붙이고 맙니다. 아, 그리고 진통제도 한 알.





길에 정답은 없다는 뻔한 말이 두려워 화살표 밖으로 나가진 않았습니다. 종종 흥미로워 보이는 길이 나오면 살짝 돌아가 보기도 했지만, 길이 끊기고 후회하며 돌아 나올 걱정은 매번 절 괴롭혔습니다. 결국 다시 옳은 길이 나왔을 때의 희열은 참으로 괜찮은 것이었고 때로 그 뻔한 말이 맞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지요.


길은 제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네가 품을 세상이 이 정도는 된단다. 아무렴, 그 길이 종종 너무 가혹해 세상을 등지고 모른 채 하고 싶을 뿐이었지요. 그렇게 밤낮도 잊은 채 걷던 사람들이 모두 모이면 그중 꼭 한둘은 무시무시하게 코를 골았습니다. 서로 눈이 맞아 좁은 침대에 함께 몸을 비비는 사람도 있었고, 다른 피부색을 보곤 괜히 시비를 거는 치도 있었죠.


곤경에 빠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지갑이야 뻔한 일이었고, 그 안에 든 돈을 생각해 뻐근한 발을 끌고 장을 보러 나섭니다. 어느 날은 봉투가 찢어져 바닥에 와르르 쏟아진 비스킷, 파스타, 얼마 간의 고깃덩이를 보곤 서글퍼졌습니다. 찢어진 부분을 대충 묶어 도로 주워 담으며, 사무치는 외로움이 섞이지 않도록 얼마나 신중했는지요.





느낌이 왔습니다. '이번 여정 중 반드시 발톱 하나는 빠진다.' 미리 관리를 한 덕에 아프던 발톱은 검은 피만 조금 맺히고 말았습니다. 육체적인 한계점이 올 때 쉴 곳이 마땅치 않으면 그만큼 더 걸었는데, 그 때문인지 몸은 길이 먼저 닳느냐 내가 먼저 닳느냐. 묻는 것 같았습니다.


나와 반대로 걷는 할머니는 손을 내밀게 하더니 양손 가득 말린 과일과 견과류를 쏟아냅니다. 또 다른 성지로 향하는 걸음이라 그녀와 내가 다시는 볼 일이 없을 텐데, 이름을 묻고는 그 어려운 발음을 딱 세 번 더 따라 합니다. 난 널 기억할 거야. 그녀에게 그건 어떤 의미였을까요. 힘들어 보이는 제게 손도 흔들지 못할 만큼 먹을 것을 가득 쏟아놓고선. 그건 아마도 자신의 발걸음을 증명해달라는 부탁은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날은 부활절이었고 지나던 동네는 잔칫집 분위기였습니다. 땅만 보고 걷던 저를 막은 남자 때문에 저는 다시 고개를 들었지요. 아니, 살짝 기분이 나빴던 것 같기도 합니다. 작은 동력조차도 소중한 순간에 멈추게 만드는 것들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릅니다. 플라스틱 잔에 와인을 따르며 남자는 말했습니다. 이게 너에게 힘을 줄 거야. 아 정말 얼음같이 차갑던 포도주 한 잔.


신은 인간을 만들 때 자신의 모습을 본 따 만들었다고 전해집니다. 그 수많은 도움과 응원, 부족한 먹을거리를 양껏 나누어주는 당신들에게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감격했지만 이건 확실히 알 것만 같습니다. 우린 서로가 서로에게 신이 아니었을까 하구요.






길 위에 저마다의 속도로 걷는다는 것은 언제나 홀로임에도 언제나 혼자가 아님을 느끼게 했습니다. 시간만 다를 뿐 모두가 걷고 있던 시간 곁엔 작은 응원의 글귀와 사랑한다는 말이 끊임없었으니까요. 새벽의 숲을 지날 때, 알 수 없는 동물의 울음이 들릴 때, 가끔 지나는 차들이 괴물같이 날 쏘고 갈 때. 저는 너무 혼자가 될 것만 같아 두려웠습니다.


다 쓰인 위성이 떨어지던 날이었습니다. 소용을 다 한 그것이 떨어지는 아침에 저는 도착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산티아고로 향하는 이 길을 안전히 마칠 수 있도록. 여태 떠돌던 걱정은 기우처럼, 안전히 마지막을 마주했을 때. 거창한 저의 꿈같은 것은 빌지 않았습니다.



많이 달라진 것 같진 않습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 곳곳에 놓인 염원들을 보며 마치 이 길을 끝내면 모든 죄가 한순간에 사라지고 새로 태어날 것만 같던 기대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서 하는 고생이라 핀잔을 받긴 했어도 뭐 어떤가요.


앞서 걸었던, 뒤에 걸어올 사람들과 함께 저는 여전히 그 길 위에 있습니다.


아마 저는 또 어딘가 제멋대로 흐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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