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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2방인

왕자가 떠난 자리

모로코 단상.

by 박하


최근 터진 역병을 모두 두려워하는 분위기였다. 녀석은 몸짓을 길게도 뻗쳐 영역을 넓혔다. 가지 말아요. 남편이 그곳에서 병 고치는 일을 한다던 여자는 말했다. 원래 계획을 따르는 일이 용기 일지 객기 일지 고민해야만 했는데, 고민을 하는 동안 국경은 비상사태가 되었다. 아프리카 대륙을 가까이 맞댄 스페인 역시 감염자가 나온 탓이었다. 나의 모로코 행은 무산되었다.



그게 그러니까 벌써 삼 년 전.


스페인에서 살고 있던 나는, 고작 배로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바다를 건너 모로코로 가려했다. 세계사 시간에나 흘려 들었을 지브롤터 해협이 여기였구나. 그렇게 배낭을 꾸리니 들려온 소식은 서 아프리카에 창궐한 에볼라 바이러스였다. 그때 가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려, 언젠가 가보리라 벼르던 것이 이리되었다.


모험을 사랑하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조금 치사한 사람이 되었으나 객기가 되었을 선택임이 확실해지고서 웅성거림은 쏙 들어갔다. 늘 숙제처럼 남았던 땅은 언제나 내 주위를 맴돌아, 잊을만하면 사하라를 밟은 사람이 나타나곤 하여 배가 아팠다. 나도 갈 수 있었는데. 그리고 다시 조용하게 모로코를 밟게 되던 날, 코 끝에 짙은 모래 향과 바다의 짠내가 걸려온다.





한 여자는 남편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결국 머리채를 잡혔다. 무슨 일인지 길을 내내 걸으며 남자에게 소리를 지른 탓이었을까. 자신의 기분을 꾸준하게 토로하는 여성은 그 와중에도 머리에 덧댄 히잡을 고쳐 쓰고 있었다. 여성에게 지위가 없다는 건 문화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내내 아리송했다. 머리를 가린 천이나 여성들이 사원에 들어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 충실히 기도하는 남자들은 없었다. 나는 친구와 말했다.


이것들 진짜 날라리네.



나는 역사서를 읽으며 카르타고에 대해 어느 낭만 같은 것이 있었다. 한 때 로마와 비등하게 싸웠던 그 사막의 나라는 어떨지, 가 본 적도 없는 로마보다 높게 쳐 주곤 했음을. 이제야 고백한다. 기대라는 것이 있었을까, 길거리에서 폐 가득 본드를 불어넣는 아이들과 낯선 동양인의 흥미를 끌기 위해 과격하게 돌을 던지는 아이들. 내가 내미는 돈에 따라 노골적으로 바뀌는 표정들. 손에 든 감자칩을 주지 않았다며 영어로 배운 온갖 욕을 뱉는 애들까지.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까지 몰아붙였을까.





나는 어린 왕자가 떠난 그 자리를 그리워했다.

한 번도 와 본 적 없던 자리를 평생토록 그리워했었다.


끈질기게 달라붙는 환멸을 제치고 사하라에 발을 디뎠다. 모래는 중간이란 없이 뜨겁게 달아올랐거나 무섭도록 차가워서 발을 가만두지 않았다. 마른 사막에서 별을 보며, 가끔 까맣게 불어오는 바람에 모래가 섞였던 건 일어나 모래를 털 때야 알았다. 나를 위한 맛있는 음식들이 차려지고 몰이꾼은 연주까지 곁들였지만 기분이 썩 나아지진 않아서 냉큼 나가 다시 사막에 발을 담근다.


새파랗게 아름다운 새벽의 도시와, 드넓은 사막의 자유와, 풍요한 오렌지 나무의 향긋함은 마냥 아름답지 않은 기분이어서 다시 모로코를 조용히 떠난다. 이 나라가 이토록 서글픈 이유는 어린 왕자가 진작 떠났기 때문이라 믿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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