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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05. 2017

존재의 부재

‘사실은 말이야’


한밤의 부고였다. 죽음은 늘 섣부르게 다가왔다. 누군가의 빈자리를 그리며 긴장하는 마음으로 메시지를 확인한다. 가장 가까운 친구로부터 온 연락은 그 조부의 몫이었다. 화면 속 짧은 단어 몇 자를 훑으며 나는 생각했다. ‘다행이다’라고.



일정을 바꿔 아침 열차를 탔지만 장례식장에 도착했을 땐 저녁이었다. 친구 몇을 모아 돈을 걷어 이름을 적고 영정과 상주에게 의례를 마쳤다. 마련된 술과 음식을 먹고 있자니 상주복이 어색한 녀석이 다가와 말했다. 미안해, 아무래도 손이 모자라 운구를 도와줄 사람이 필요해. 우리는 가만히 눈빛을 교환했다. 직장과 출근이 있는 몇 명과 함께였다. 그럴 줄 알고 왔으니 걱정 마. 일 없는 내가 남기로 하니 친구는 수육 몇 점을 더 가져와 내 앞에 두었다.



이틀이래.

직장이 허락한 슬픔의 시간이었다. 회사에서 지급한 휴가는 부당했으나 그렇게 한 마디씩 얹어도 그 치사함과 싸울 자신이 없었다. 요즘 안 그래도 참 말이 많더라, 외가 쪽은 그마저도 안 준대. 자기 휴가 써야 한다며. 그렇게 합당한 불만이 푸념으로 끝나버린다. 어쩌면 밤에 눈을 감으신 게 자식들 편하라고 하는 마지막 배려일 수 있다는 위로가, 회사에게는 그저 빈 공백을 하루 덜어내는 일이 되었다. 그 터무니없는 갑갑함이 못내 슬퍼져 애꿎게 술잔을 채운다. 드라마에서 가끔 봤다. 친구들보다 시간이 팍팍하지 않은 나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그뿐이었다.


관을 들었다. 죽은 이의 무게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차마 잠을 설친 밤이었다고 고백할 수 없었다. 아마도 나보다 더 잠을 설쳤을 친구는 고인의 영정을 들었다. 잠시 눈을 붙인 버스에서 내려 생전 지내시던 집을 향해 마을 어귀를 걷는다. 쌓이는 하품을 무르고 새벽 찬 공기에 꾸준히 따라 걸었다. 연세 지긋한 미망인의 걸음이 자꾸만 느려져 함께 뒤늦기 위한 속도로 걸었다. 집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친구는 울고 있었다. 내내 괜찮아 보이던 그가 썩 괜찮게 이 시간을 통과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양 손을 모으고 선 내 앞을 지나치는 그의 입김이 문득 마음에 서린다. 내가 그의 울음을 본 적이 있던가.



전날 밤의 방바닥은 지나치게 뜨거웠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던 테이블 구석에 가까스로 몸만 눕히니 이미 하루가 지나있었다. 나의 외조부가 세상을 떠난 지난날 무섭도록 시린 바닥이 떠올라 이불까지 챙겨 잠든 참이었다. 친구는 어린 동생들과 둘러앉아 돈을 세기 시작했다. 한 사람이 떠날 땐 너무 많은 게 떠난다던 노랫말이 머리에 흘렀다.


미안하다, 부끄럽게.

모른 체 한다고 해서 모를 리 없었다. 땀을 흘리며 깨지 않은 척을 했어도 친척들이 모여 충돌하는 생각들은 늘 높아지는 언성과 함께였다. 나 역시 그런 시간을 겪어왔으니 꼭 누군가의 죽음이 남기고 간 것들 때문이었다. 이미 함께 나이 지긋한 자식들은 지아비 잃은 노모의 거처를 두고 다투었다. 그리고 항상 그렇듯 흐지부지하게 잠이 들었다.



나에게 주는 사과가 어쩐지 곤란해서 그랬다. 미안하다는 말은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니야. 평소보다 부쩍 늘어난 담배를 그만 하라 말릴 수도 없었으니까. 어릴 땐 더 자주 붙어 다녔다. 넓은 방에서 게임을 하다 그대로 잠들기도 하고, 그렇게 같이 학교를 가기도 하고 그랬다. 기억은 아주 짧았다. 고인이 되신 그의 할아버지는 아침저녁으로 마당을 비질하는 모습이 어렴풋했고, 할머니가 건네주신 냄비엔 국수가닥처럼 퉁퉁 불어버린 라면이 그득했다. 그 줄지 않는 라면에 배를 두드리며 웃었나 보다.


비록 고등학교는 달랐지만 함께 가게 된 대학을 내가 먼저 관두기 전까지 꾸준히 연락했다. 친구의 집이 좀 어려워지고 난 뒤엔 많은 걸 묻지 않았다. 키우던 강아지가 어디로 갔는지 따위를 묻는 한심한 일을 애써 꺼렸다. 그리고 오늘 ‘사실은 말이야’로 시작하는 그의 내밀한 이야기를 잠자코 들었다. 내가 깨어있었을 밤의 이야기와 그보다 더 전의 이야기를 하며 녀석은 한 개비를 더 꺼내 물었다.



흰 장갑을 쥔 손으로 태극기가 덮인 관을 옮긴다. 덥혀진 공기는 기분 나쁘게 감돌았다. 너도 나도 복받쳐 울었다. 더 이상 온전하지 못한 한 줌으로 만드는 공간은 이별 투성이었다. 관이 타는 공간은 결코 타인이 함께 할 수 없는 영역으로 느껴져 바깥에 남아야 했다. 속으로부터 불길이 뜨거울 철문은 깨끗하게 차가운 색이었다.


여전히 슬픔에 비척대는 미망인의 몸짓은 느렸다. 뒤따르며 느린 걸음을 못 견딘 다른 영정이 그녀를 앞질렀을 때 나는 많이 피로해졌다. 생각보다 더 신경 쓰고 있는 탓이었으리라.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에 대해 무서울 정도로 무심했다. 나는 슬픔을 겪고 있으니 이해받아야 마땅하다는 마음을 가진 걸까. 같은 생각이 온통 모인 추모공원은 삭막했다. 하루가 지나도록 꺼슬거리는 이 느낌의 정체를 비로소 깨닫는다.



고민하다가 나눔 없던 메시지 창을 열어 적는다. 전달받은 부고를 끝으로 더 이상의 대화가 없었다. 난 네가 부끄러운 적이 없었어. 네가 부끄러워하는 것들이 절대 널 부끄럽게 만들지는 못해. 그러니까 기운 내.


나는 이번 죽음에서 느낀 안도감에 좌절한다. 그나마 덜 가까운 사람이라는 것에 대하여. 슬픔의 무게를 제멋대로 판단한 스스로에게 밀려오는 실망에 대하여. 이 돌이킬 수 없는 안도로 인해 할아버지를 정성껏 배웅했다. 살아있음이란 결국 남은 자의 몫이 아닌가. 끊임없이 남겨질 이들을 뒤로하여 떠날 순서가 온다면 그들의 기억으로 나의 존재를 얼마나 더 버텨낼 수 있을까. 찬 공기에 뱉는 숨이 선명했다.


존재의 부재.

그리고 부재로부터 느끼는 존재의 선명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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