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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22. 2017

가득 찬 빛은 온기를 남기고

영화 <빛나는>


*본문은 주관적인 견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극의 내용이 다수 포함되어 있습니다.
*브런치 무비 패스를 통해 관람하였습니다.



다짐을 종종 잊는다. 해야할 일, 올해의 목표, 미뤄둔 것들 따위가 그렇다. 허튼 말을 하기 싫어 뱉은 말을 지키려 노력하는 편인데, 꼭 마음에 엉킨 어려운 일 하나가 있다. ‘라식을 할거야’ 안경이 싫어 그런 말을 했었는데 친구 하나는 적극적으로 병원을 소개시켜주며 날 독려했다. 나도 여기서 했는데 정말 잘 해. 가격도 저렴하고 후유증도 없어. 그러나 해가 몇 번이나 바뀌도록 선뜻 수술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 눈을 건드린다는 것은 두려운 일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사라지는 것들을 이해하는 방법

주인공 미사코는 영화 해설을 녹음하는 사람이다. 영화를 보고 시각장애인에게 도움이 될 나레이션을 넣는 그녀는 타이밍에 맞춰 호흡을 조절하고 단어를 수정하며 미흡한 점을 보완한다. 시력을 잃은 사람들이 여럿 모여 검수를 거치는 과정은 힘이 들어도 그들의 감상은 도움이 된다. 그러나 미사코는 유독 남자 하나와 마찰이 잦다. 색수차와 같은 어려운 용어가 아니더라도 시력을 잃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두려운 일일 것이다.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사람이라면 어떨까. 가령 영화에 등장하는 사진가 나카모리처럼.


나카모리는 꽤 유명한 사진가였다. 조금 남은 시력을 이용해 가까스로 사진을 찍으러 다니지만 마땅치 않다. 미사코에게 주관이 개입된 해설은 영화 감상을 방해할 뿐이라며 몰아세우곤 나가버린다. 미사코와 함께 일하는 센터 직원은 대화를 나눠보라며 나카모리에게 전달할 물품을 부탁한다. 차라도 한 잔 마시라는 제안에 들어선 나카모리의 집은 빛이 가득 들지만 그런 미사코의 말에 나카모리는 표정이 밝지 않다. 그 빛을 볼 수 없는 슬픔이란 가늠하기 어렵다.



누가 상상력이 부족한지 잘 생각해봐.


여느 때처럼 쏘아붙이는 나카모리의 말이 서운한 미사코는 결국 폭발한다. 개선 사항에 대한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던 다른 회원을 추궁하고 한 술 더 떠 미사코를 몰아세우는 나카모리. 미사코는 당신의 상상력이 부족한 탓이라 소리를 지르고 모임은 엉망이 되고 만다. 잠시 시간이 지나 진정된 미사코에게 동료는 말한다. 누가 상상력이 부족한지 잘 생각해봐. 이 대사는 시각장애인들이 더러 연약한 감각으로 살아갈 것이라 여기는 우리에게 하는 말이 아닐까. 보이는 자들은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기 위해 애써야 하지만 보이지 않는 자들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상상해야한다.




나카모리는 친구들의 모임에 나가 조롱받는다. 점점 침침해지는 시야에 사진을 그만둬야 하는 것 아니냐며, 몇몇은 잡지 속 자신의 성공을 들고 와 나카모리에게 으스댄다. 취기가 올라 돌아가는 새벽. 나카모리는 누군가의 토사물을 밟고 쓰러지는데 가방에서 나온 카메라를 누군가 주워 사라진다. 공중화장실에서 더러운 옷을 닦고 카메라를 가져간 범인을 잡는다. 범인은 그의 친구였다.


내 심장이야. 비록 멈춰버렸어도.


그가 하는 말은 포효에 가깝다. 삶의 목적과도 같은 사진을 자신에게 앗아갈 수 없다는 절규. 길에서 그를 보고 걱정이 되어 따라온 미사코는 가만히 그를 따른다. 미사코가 일적으로 영화를 대하며 알 수 없던 종류의 감정을 나카모리로 인해 공감한다. 사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력을 잃은 슬픔은 그만큼 절절히 타인에게 닿는다.



끝내 완전히 시력을 잃은 나카모리는 미사코에게 얼굴을 만져보아도 되냐고 묻는다.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더듬고 마지막 셔터를 누르는 나카모리. 집으로 데려다 준다는 미사코의 호의를 거절하지만 그는 육교에서 내려가는 계단앞에 좌절한다. 그 어마어마한 좌절 앞에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 앞으로 살아가야 할 캄캄한 세상이 닥친 사람에게 할 말을 아는 사람은 분명 드물 것이다.


빛이 가득 찬 장소에서 공평하게 느낄 수 있는 온기는 관객 앞까지 도달한다. 미사코의 얼굴을 만지던 손길과 같은 따뜻함으로. 치매로 기억을 잃은 그녀의 어머니가 사라진 숲 속에서 하던 말, 나카모리가 데려다 준 언덕에서 그가 카메라를 집어던지고 하던 말은 미사코에게 큰 감정변화를 일으킨다. 자신이 영화에 덧입히는 대사는 상상력을 부르는 힘이 아닐까. 그렇게 마지막 대사를 완성하며 가득한 빛으로 영화는 마무리 된다.





관객은 카메라의 답답한 앵글에 내내 짓눌린다. 감독이 의도한 바겠지만 영화의 제한된 시야만으로 느끼는 압박은 생각보다 괴롭다. 하물며 시력을 잃기 전까지 눈동자의 구석으로 세상을 보는 나카모리의 기분은 어떨까. 화면에 가득 차도록 가까운 눈을 잡은 장면이 유독 많다. 사람의 얼굴에서 가장 감정을 잘 나타내는 건 아마 그 곳이 아닐까. 카메라는 눈으로 등장 인물들의 감정을 능숙하게 드러낸다.


영화 말미. 나카모리는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짚고 걸어온다. 자신이 가겠다는 미사코의 말에 그는 단호하게 외친다. 내가 갈게요. 비장애인의 무조건적인 양해와 과한 배려는 과연 옳은 것일까. 잠자코 기다려 줄 시간이 있다면 그걸로 충분할 것이다. 인생의 목적지가 될,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는 어떤 구원. 미사코가 여백과 함께 남긴 영화의 마지막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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