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에 뛰어들기 2초 전
저희는 약 9천 미터 상공에서 순항 중입니다.
곧이어 창가 오른쪽으로 후지산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실 수 있겠습니다.
수많은 고개들이 그 말 한마디에 일제히 기울었다. 왼편의 몇몇은 자리를 비우고 오른쪽 통로로 이동해 서서 창 밖을 살폈다. 오른쪽에만 잔뜩 있으니 무게중심이 맞지 않아 기울어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겨울의 설산을 깨끗한 하늘에서 볼 수 있음에 사람들은 몸을 기꺼이 옮겼다. 여기저기 소란스러운 탄성에 옮고 싶지 않아 헤드폰을 고쳐 쓴다. 내 자리는 왼편 창가였다.
아래로 내려올수록 좁아지는 대륙의 말미까지 왔다. 남극과 면해있는 동네의 바다는 바람이 먼저 있었다. 그러니까 저 멀리에 남극이 있단 말이지. 바다를 따라 걷는 길, 멀리서 보이는 형체는 아무래도 사람이었다. 턱 진 콘크리트 옆으로 너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누워있었다. 바람을 피하는 것이라 말하는 너는 아마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심한 바람에 휘청거리는 몸을 가누다가 누워 있는 네 옆으로 앉기로 했다.
소년은 여기에 산다고 했다. 학교는 어쩌자고 빼먹었는지 이미 되돌리기엔 무기력한 시간이라 묻지 않았다. 풀로 돌을 때리는 일이 무슨 의미일까. 마을에 기껏해야 많지 않을 아이들이다. 모여 놀 친구가 없으니 애꿎은 돌이나 때리고 있는 것이다. 또 어른들은 근처 유명한 트레킹 코스를 찾는 뜨내기들을 맞느라 온종일 정신이 없으니까. 그런데 어쩜 이렇게 바람이 멎지 않고 세니.
공기의 밀도가 높아야 정상이지만, 숨이 차는 이유는 조금 설렜는지 빨라진 걸음 탓이었다. 이용하는 주 고객층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 잘 꾸며진 놀이터를 가리켰다. 소년의 표정은 곧이어 생기가 번졌다. 보는 사람도 없으니 놀아볼 생각이 든 나는 부끄럼쟁이 어른이었다. 그건 소년 역시 별 다르지 않은 바다에서의 평범한 하루였다.
위에서 본 적 있니?
그네를 힘껏 밀면 아마 1미터쯤은 더 높아지지 않을까. 키가 자라길 기다리는 마음은 그런 모양이었다. 3미터는 이 도시의 깊이였다. 가족 혹은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호스텔을 운영하거나 택시를 몰기도 하고, 캠핑도구를 빌려주기도 한다. 그래서 더러는 입을 맞춰 바가지를 잔뜩 씌우기도 했다. 산은 무너지지 않고 땅 끝점의 물가는 당연히 비싸고 여행채널이나 국제기구가 선정하는 문화유산 순위 따위에 매번 빠지는 적이 없으니까. 해발 3미터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
후지산이라고 들어봤어? 일본의 큰 산인데 오는 비행기 안에서 거길 보라고 하더라. 여기에 있는 그 멋지다는 산도 위에서 볼 수는 없지 않을까. 우리가 새도 아닌데 헬기를 탈 여력도 안 되니까. 바람이 이렇게 많이 부는 걸. 그리고 고작 그네가 흔들리는 만큼 날겠지. 그러나 꾀죄죄한 소년은 말하는 게 아닌가. 나는 위에서 본 적 있어.
산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꾸역꾸역 3미터의 동네와 그보다 한참 높을 산의 높이를 생각한다. 편하게 가면 어디 덧나나. 내가 탄 버스와 사람들이 탄 수많은 버스들과 그보다도 많은 자동차들이 줄지어 입구에 선다. 잠이 덜 깬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
소년은 말했다. 바다가 모든 걸 뒤집기 위해 오는 날만 조심하면 돼. 어떤 해발도 소용없게 되는 바닷속에서 유영하며 소년은 무수한 산의 속살을 봤으리라. 그러나 나는 어리석은 다른 사람들과 같이 산의 한 면만을 보기 위해 막 들어서는 참이었다.
위에서 보려고 풍덩 뛰어들어.
그러면 말이야
다 보여.
소년이 가리키는 방향, 유리 같이 잠잠해진 바다엔 산이 흔들리고 있었다. 산이 저 멀리 보이는 동네의 바람은 차고 매웠다. 바다가 있는 탓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