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돌뱅이들은 말이야.
단체복을 입은 아이들이 걸어간다. 한 명은 자기 팔꿈치에 무엇이 묻었는지도 모른 채 낄낄 웃고 캐리어 끄는 아주머니는 잠금장치가 하나 풀린 줄도 모르고 바삐 걷는다. 옆 사람에게 길을 묻는 새 도착한 버스를 부랴부랴 올라타는 노인이나 정신없는 공항의 분위기를 이기지 못하고 딸에게 성질을 부리는 중년 모두 같은 공간에 있다. 교통정리하는 여경, 개를 끌고 수상한 짐을 살피는 경찰도 모두 바닷가의 노을을 좋아할 것을 나는 안다. 섬에는 볼 것이 많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않은 사람들은 서로 바쁘다. 삼 번 게이트 앞엔 사라지는 것들이 아름답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 곁에 바다와 노을을 두고 살겠다며 떠나온 날의 풍경이었다.
섬은 맑은 날이 손에 꼽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계절이 바뀌어 옷을 어느 장단에 맞춰 걸쳐야 할지 한참을 헤맸다. 산다는 일도 마땅한 벌이가 없이 모아둔 돈으로 사는 것과 일자리를 구해 지내는 것은 아득한 거리가 있었다. 먼저 집을 구해야 했다. 그저 당장 머물 방이 필요해 여럿이 함께 사는 곳을 찾아 들어갔더니, 곰팡내 나는 밥솥과 설거지로 가득한 주방이며 더러운 욕실을 견딜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불로 낸 돈을 돌려받을 방법이 없어 난 한 달을 꼬박 살았다.
집을 옮기기 전까지 살며 애정을 듬뿍 쏟았던 공간은 바로 건너에 있는 오일장이었다. 장이 서는 날이면 이른 새벽부터 앞 도로에 생선 실린 냉동탑차와 잡화 가득 탄 트럭 따위가 좋은 자리를 선점하려 늘어서 있었다. 물건을 나르려 차를 바짝 붙이는 게 그들의 일이었다. 그러다 자칫 옆 노점 주인의 심기가 거슬려 언쟁이라도 붙는 날엔 고무장갑에 생선 머리 썰던 무쇠 칼을 힘껏 든 손이나 보고 마는 것이다. 난 살림살이에 보탬이 될 만한 것들이 있는지 쓱 둘러보고서 결국 군것질거리나 입에 물고 오는 게 장날의 주된 일과였으나 현금이 없는 날이면 침이나 꼴깍 삼키고 터덜터덜 돌아오곤 했다.
어느 날은 비도 오고 그래서 국밥이나 먹을까 하여 장터를 찾았다. 국수와 국밥을 훌륭하게 말아내는 식당이 있다 들은 참이었다. 건더기가 골고루 수북이 담긴 순댓국에 감탄하여 삽시간에 한 그릇을 해치웠다. 든든한 속으로 계산을 하려고 보니 지갑을 집에 두고 나와버린 게 아닌가. 외상을 달자니 더 달라고 했던 오징어 젓갈이 참 염치도 없었다.
먹으러 바삐 오느라 지갑도 두고 왔습니다.
집이 저 건너에 있는데 얼른 다녀오겠습니다.
마감시간이고 비도 오고 하니 다음 장에 가져와요.
중년의 남자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힐끗 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귀가를 허락받았는데도 뛰는 가슴이 되어 장터를 나왔다. 이미 뒷정리를 끝마치고 듬성듬성 노점이 빠진 장터는 식당에 들어가기 전과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국밥 한 그릇을 빚지고 돌아오는 걸음이 무겁다. 남자가 무얼 믿고 나를 보내주었나. 오래도록 사람을 보다 보면 알아보는 눈이 생기는 것인가. 사실 주인이 아니라서 몰래 보내준 것은 아닐까. 이대로 다시는 장터에 가지 않는다면 밥값을 굳힐 수도 있겠다.
난 과연 어떤 사람인가. 다행히 아직까진 빚진 마음으로 뒤통수가 시큰거리는 사람이었다.
대개 카드결제도 잘 되지 않는 시장 사람들을 보곤 그들에게 천금같이 여겨지는 것이 돈 뿐이라 단정하기에 어딘가 부족하다. 넉넉한 마음 기대하며 부리는 욕심이 ‘여긴 죄다 팍팍한 사람뿐이야.’ 넘겨짚는 게 아닌가. 사람들은 주머니 사정을 떠나 들쭉날쭉하여 함부로 어떻다 할 수가 없다. 주로 깎기를 쉼 없이 하는 이가 인심 야박하다 말하는 마음 또한 언저리가 단단하지 못하여 스스로의 야박한 품새를 말로 드러내는 것뿐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시장을 아주 사나운 것으로 만들어 버리곤 한다.
그렇다. 그렇게 어딘가에 함부로 새기는 말은 사납기도 더욱 사납다.
우리 같은 장돌뱅이들은 늘 잔돈이 있어. 무슨 말이냐 하면 여기저기 장터를 따라다녀야 하니 은행에 돈을 가둬두기보다 현금을 쥐고 있는 거지. 근데 마음에도 그런 게 있어. 그게 믿음이랑은 좀 달라요. 다음 장에 갖다 주겠지 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받은 것처럼 착각하게 돼. 잘 이해가 안 되지? 이를테면 자네의 식사는 그때 끝나지 않은 거야. 값을 치른 지금 끝난 거지. 터전이 뱅글뱅글 도니까 보이지 않지만 우린 계속 장사를 해. 거스름으로 쓰일 잔돈들이 여기저기 있는 거야. 자네도 지금 이렇게 왔잖아.
무심히 말하는 남자를 뒤로 하여 식당을 나와 분식집 앞에서 서성였다. 천 원짜리 한 장이 남았고 돈을 만지작 거리며 서 있다가 괜히 호떡 값과 붕어빵 값을 번갈아 물었다. 눈치 좋은 아주머니는 말한다. 원래 그렇게 안 주는데 하나씩 줄게. 가져가요. 내가 가진 욕심은 들킬만한 크기였고 바다와 노을이 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