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쁜 일.
살구를 먹었다. 마트 마감세일 코너에 놓여있던 녀석이었다. 살구 한 알을 씻어 물기를 턴 뒤 입에 넣었다. 과육으로부터 찌르르 퍼지는 살구향, 손가락 따라 쥔 보드라운 겉면이 얼마나 좋은지 한 알을 더 집었다. 살구는 손색이 없었다. 흠이 있는 것은 모두 걸러져 다른 곳으로 갔으리란 걸 알고 있다. 단단한 씨가 접시에 쌓였다.
외진 도시의 더 외진 마을로 가서 외진 언덕을 오를 때 졸졸 따라오던 아이 몇이 있었다. 관심을 받고 싶은지 돌아볼 적마다 수줍게 숨어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용기를 낸 아이들이 지천에 깔린 살구를 줍기 시작하더니 개중에 빼어난 색인 것을 옷소매로 슥슥 닦아 내어 줬다. 난생처음 먹었던 살구의 맛이었다. 그곳은 황무지로부터 태어나는 이불 같은 먼지와 얼음 같은 계곡물이 전부라서 아이들은 십상 그을렸다. 새카만 소매가 가장 깨끗한 것이라 열심히 닦은 살구는 빛이 났다.
살구는 무척 달았다. 갈증이 가시고 포만감이 일었다. 힘이 생겨서 언덕 위까지 쉽게 올라갈 것만 같았다. 그저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을 주워다 준 것치고는 근사하지 않냐고 묻는 표정의 아이들이 재밌기도 했다. 이곳은 그랬다. 가열한 삶을 버티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을 식히려 주로 찾곤 했다. 비슷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따라다니다 그 순간 가장 좋은 살구를 하나 주워다 닦아주는 아이들의 모양이 마치 요정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태어나는 것들은 왜일까. 어째서 꾸준히 싱그러운 채 있을 수 없는 건지, 그래서 난 과일이 참 싫었나 보다. 빛나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고 그래서 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온갖 종류의 과실이 썩 맘에 들지 않았다. 그 속성이란 풀이나 숲에 대하여도 같겠지만 열매는 왜 굳이 눈에 띄는 색으로 매달리나. 잡아먹히기 좋은 모습이 되냔 말이다.
아이들과 언덕에 올라 마을을 보다가 돌아온 날 뒤에도 종종 누군가로부터 살구를 받았다. 마을 사람들은 살구가 마냥 있는 재료라서 주스나 잼 등 이것저것 잘도 만들어 먹었다. 맛을 알고 난 뒤라 그런지 나도 끼니마다 살구 맛을 혀에 거른 일이 없었다.
오랜만의 살구가 입에 닿았을 때 난 과거의 기억으로 빨려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삐딱한 마음으로 서있던 살구밭에서 밝고 아름다운 것을 골라 집지 않았는지 후회하는 중이다. 개살구라 하면 거긴 오로지 그때의 나를 일컫는 말 말곤 없다. 그나마 배운 것으로는 더러운 소매로 닦아도 빛이 안 나는 게 아니니 슬픈 얼굴 한 사람에게 한 알 챙겨줘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이건 잊지 않아도 되는 맛이었다. 지금은 살구나무를 보기 어려워 또 한동안 잊고 지내더라도 이만한 여름이 되거든 아, 살구가 자랄 때구나 몸소 느낄 때도 올 것이다.
이렇다 보니 과일을 싫어하는데도 살구만큼은 도통 미워할 수가 없다. 아니, 이제 나는 비로소 좋아하는 과일 하나가 생긴 셈이었다. 내가 받은 살구는 언제나 빛이 좋았고 거기 개살구는 한 알도 없었다. 언제나 완벽한 살구였다. 한 입 베어 물면 여태 꿈꿔오던 일들이 널브러져 있는 숲에서 무엇이라도 하나 골라잡아 새로이 도모할 수 있을만한 힘이 차오른다. 여름의 기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