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을 덧붙이자면
영주 누나는 내 잔을 채우며 끊임없이 말했다. ‘내 동친 박하가-’ 자꾸만 떠나는 날을 붙잡는 통에 단호하게 말했으나 그런 의미가 아니었을 걸 알기에 되려 호되게 굴었을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짐을 정리하면서도 짬짬이 술을 함께 마셨다. 제주에서의 2년을 정리하고 다시 티켓을 끊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언제 돌아올 거야? 영원히 안 돌아올 건데요. 누구나 묻고 난 누구에게나 답했다. 단순한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디로 갈 셈이냐. 일단은, 일단은 스페인이요. 내가 보낸 정이 많은 곳들을 떠올리면 셀 수 없지만, 세계를 관통한 코로나 그 이후의 세계를 나는 모른다. 유럽은 이제 모든 빗장이 풀리는 중이라고 했다. 벌써 답답함을 이기지 못해 나간 치들도 많다고 한다. 마음먹은 이상 뒤를 돌아볼 여유가 내게는 없다. 티켓을 끊고 이삿짐을 정리하다가 또는 새로운 물건들을 산다. 여행에 필요한 모든 것을 새로 마련한다. 이전의 세계는 끝났었고 다음 세계는 전혀 모르는 세상일 테니까 말이다.
그간 많은 사람을 만났다. 한국에서 지내는 사이 살뜰하게 날 보살핀 사람들과 개중 멀어진 사람들. 출국 사실을 아는 친구들이 전화를 걸어왔다. 응원하고 걱정하고 미워하고 벌써부터 그리워하고 그리고 사족을 덧붙이자면. 한결같이 다들 그렇게 말했다. 그 사족은 보통 건강하라는 당부였다. 부디 안전하게 다니라고 했다. 사족은 불필요한 말일 진대 건강하라니. 내게 건강과 안전은 걱정할 필요도 없는 요소라는 뜻인 걸까.
고백하자면 난 자주 아팠다. 다만 아픔이라는 개념이 스스로에게 충족되어 ‘아프다’라고 말할 만큼의 역치가 무척 높다. 여행 중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아픈 일들이 초래하는 불편함이란 해결할 과제가 된다. 약으로 단박에 치료하느냐, 시간을 두고 경과를 지켜보느냐. 즉 면역력을 믿고 자연치유를 기다리느냐. 나는 언제나 후자였다. 내 시간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값싼 것이었으니까.
배낭이 900그램밖에 되지 않는 시대가 왔다고, 충전식 카드가 있으니 현금을 속옷이며 양말이며 어디다 숨겨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고, 론리 플래닛 따위를 챙기지 않아도 된다고, 어디서나 인터넷 신호가 잡힌다고, 더불어 언어를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런 말들이 도처에 떠다니고 있었다.
나는 두렵다. 정녕 내가 모르는 세계로 다시 여행을 떠난다는 게. 어떤 것에 뒤쳐진다고 생각하게 될까 봐 그렇고 내 방식에 사로잡혀 있게 될까 봐 겁이 난다. 외국인을 바라보는 맹목적 호의에 얹혀 흘러 다니곤 했었던 게 아닐까. 코로나 이후의 세계가 어떤지 모르는 채 뒤집어쓰는 두려움이 전의로 바뀔 때쯤 비행 티켓을 끊었다.
보름 뒤, 나는 다시 인천공항에 가게 될 것이다. 사람이 없다는 소식을 간간이 듣던, 뻔질나게 드나들던 공항으로 가서 바뀐 것들을 목도하게 되겠지. 샤워는 아마도 못 할 거야. 코로나니까. 마스크도 써야겠지. 코로나니까. 접종 서류가 필요하겠지. 코로나니까. 모든 게 바이러스로 귀결되는 머릿속을 헤집다가 발견하고 만다. 내가 돌아가고자 했던 세상을. 그래, 굳이 사족을 덧붙이자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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