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 풍경.
여행에서 나와 맞붙어 다니던 사람 몇은 이미 한국에서 발을 뗐다. 먼저 출국한 사람들과 출국을 준비하는 몇 명과 정보를 공유하며 딱 2년, 바뀐 세상을 절감한다. 여행의 태도를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효율이 극도로 중요한데, 그중 으뜸은 교통과 금융이다. 앞서 적었지만 두꺼운 론리 플래닛은 스마트폰 안에 모두 담겼고 더 이상 아무도 모르는 정보를 사람에게 묻지 않는다.
이번에 나갈 준비를 하며 새로운 카드 하나를 알게 됐는데 교통카드처럼 실시간으로 충전하여 찍기만 하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었다. 가장 바꾸기 쉬운 달러를 그러모아 여기저기 옷 사이에 숨기지 않아도 된다니. 아는 형에게 당장 그 정보를 알려주며 외쳤다. “형, 이제 속옷에 현금 안 숨기고 다녀도 돼!” 금융이야말로 놀라운 변화다.
출국장은 한산했다. 배낭을 멨다 풀었다 하며 이게 이제 내가 짊어야 할 내 세상이라 재확인하고, 평소라면 먹지 않았을 값비싼 인천공항의 식당에서 밥을 먹고 유명 프랜차이즈의 커피도 한 잔 크게 마셨다. 그러고 나서 담배를 피웠다. 이 땅을 떠날 생각으로 시작된 여행의 감각을 다시 되살려 본다. 그 시작으로 삶의 궤적이 얼마나 바뀌었는지 말이다.
이제 공항은 단순히 부러움의 장이 아니었다. 일과 교육으로 인하여 반드시 떠나야만 하는 사람들 틈 사이에서 배낭을 메고 코로나 접종 증명서라는 한 가지의 절차를 더 거쳐 파리까지 내 몸뚱이를 날려 보낼 사람들에게 허가를 받는다.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담백하게 나는 통로열 어느 한 자리를 도맡는다. 아기가 우는 소리는 참아야 하고 나의 선택은 오로지 비빔밥이나 생선 요리를 고르는 일 밖에 없을.
모조리 문을 닫은 활기 없는 면세점을 들어가기 전에 난 여권에 스탬프를 찍고 싶었다. 나라별로 가지각색의 문양을 지닌 출국과 입국 날짜가 포함된 바로 그 출국 도장을 말이다. 모두 자동으로 바뀐 출입국 심사대 옆 별도의 검사대에서 만난 직원은 마스크 뒤에서도 한참 어려 보였다. 그리고 출국 도장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그녀가 선임 직원에게 부탁하기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며 흘러간 시대에 대해 생각한다. 단순히 그녀는 어려서가 아니라 바뀌고 난 뒤의 세상에 들어왔을 뿐일 테니까. 이런 것이 있었냐며 신기해하는 직원을 지나칠 때가 자정이었다.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는 이제 중요하지가 않다. 추억을 끌고 와 어르고 달래며 새 시대에 적응시킬 필요도 없다. 적응해야 할 것은 나뿐이야. ‘요즘 아이들 대부분이 열 손가락을 전부 이용해 타자를 칠 줄 모른대.’ 같은 말에서 더는 타자 연습을 시키지 않는 세상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여행 또한 그렇고 다만 고개를 푹 숙여 휴대폰을 보는 사람들과, 사람에게 길을 묻지 않는 사람들이 넘쳐나면 더 이상 여행에 낭만은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무도 마스크를 벗지 못하는 비행기 좌석에 앉아 벨트 사인이 꺼질 때까지 이제 어느 세상을 동경하며 다닐 것인지 가늠해본다. 현실과 유리되거나 과거에 박제되거나. 나라는 사람이 어디서나 유효할 때가 있었나도 떠올려보면서. 그러나 잠에 들어야 한다. 17시간이라는 긴 비행을 마치기 위하여 미리 잠에 들어야 한다. 실은 지난 몇 년 깊은 잠에 들어 있던 것 같기도 하지만.
<실시간 여행기>
@b__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