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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Apr 21. 2022

파리에서의 그것들

텅 빈 파리.


  터키는 공항에서마저 특유의 향신료 향이 물씬 난다. 환승구의 흡연구역에서 담배를 물자 모두가 나를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진다. 무엇보다 걱정했던 건 코로나 이후 아시안을 바라보는 인식이었다. 그저 낯선 외모를 살펴보는 게 아닌, 우려가 뒤섞인 시선들. 담배 연기가 목에 걸려 헛기침을 두어 번 하니 모두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앞으로의 여정은 무탈할 수 있을까.


  환승 시간을 가능한 길게 늘이는 것이 저가 항공권의 심술이었는데 이젠 줄일 만큼 줄이는 심술을 부리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체류시간을 낮추자는 게 명목이었으나, 무엇 하나 살필 새 없이 다음 항공편을 향해 내달리는 형국이라니. 어찌 되든 나는 파리에 가면 된다. 파리로. 사람이 없다는 에펠탑 앞으로.



  파리를 밟자마자 나는 마스크를 벗었다. 담배를 어디서 피울 수 있냐고 물어보니 안내소 직원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 되어 '바깥 아무데서나.' 짧게 대답하고 제 할 일을 한다. 사람이 없는 에펠탑에서 내 사진을 남길 기분은 나지 않고 건조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철골 구조물을 하나 찍고 바로 자리를 뜬다.


  감흥이 짧다. 배가 조금 고파서 만만한 길거리 음식을 먹었다. 파리, 내가 정말 파리에 와 있다.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돈을 모으는 행위 빼고는 따로 한 일이 없는 듯 느껴졌다. 가능한 오래 그리고 돌아가지 않을 셈으로 버텨야 하는 잔고 속 숫자가 의미 없이 나열되어 있다.


  터키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마스크를 벗는 일이 어색한 건 나뿐이었다. 사람들은 달리고 노래를 부르고 사진을 찍으며 예전처럼 센 강 주변에서 놀았다. 마치 나만 누군가에게 속아 넘어간 듯 분한 기분이 됐다. 기뻐야 하는데. 나는 다시 여행을 할 수 있음에 기뻐야만 하는데도.



어때?

  영 기분이 안 좋아. 출국으로 신나서 헤실헤실 웃는 것도 잠깐이었어. 난 파리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나 봐. 여전히 비싸고 냄새가 나고 어정쩡한 가게들이 즐비해서. 내가 잘 몰라서 그렇다고 반박하면 할 말은 없지만. 난 파리를 알고 싶지 않은 걸까. 도시가 차가워. 누가 연주를 하고 웃는 소리가 들리고 정돈된 공원과 새소리가 다 차가워. 물속에 푹 잠긴 것 같은 기분이야.


  쓸쓸해. 그게 맞아. 가만 생각해보니 파리의 분위기가 달라진 것은 없다. 다만 전보다도 더욱 배낭 여행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불러일으키는 어떤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여긴 원래 이런 도시였어. 여행자의 추레함에서 동질감을 찾는다는 일도 우스운 일이지만, 시작만큼은 조금 기대를 했는지 몰라. 그것들은 없다. 파리에서의 그것들은 멸종된 존재인가.


  흐리멍덩한 하늘과 강을 끼고 터벅터벅 걸었다. 가능한 괜찮은 척을 하면서 다른 이들처럼 사진을 드문드문 찍고 벤치에 앉기도 하다가 여기서 단 하루조차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장거리 비행으로 누적된 피로를 안은 채 심야버스를 타고 국경 근처의 어느 도시로 떠나야 했다. 마른 오줌의 냄새와 마리화나 냄새가 올라오는 더러운 버스 터미널 바닥에 털썩 앉아 버렸다. 시작할 일은 따로 있었다.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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