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이 반이야.
분명 이전에 와 본 적 없던 거리가 익숙하게 보이는 탓은 순례자 증서를 받은 뒤라 그렇다. 앞으로 수많은 소도시를 질러 산티아고로 향할 것이다. 리스본에서 출발해 포르투갈 길을 걸었던 지난날의 전적이 있으니 프랑스 길 또한 그렇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었다. 장거리 비행 후 파리에서 한숨 잠들지도 않고 야간 버스로 다시 꼬박 열 시간을 이동했다. 다시 갈아타서 한 번 더. 멈추지 않고 이동한 시간만 꼬박 사흘이었다.
알베르게에서 순례를 준비하는 사람들과 어떤 이야기도 서로 나누지 않고 약속한 듯 잠에 들었다. 쌓인 피로가 고작 몇 시간의 수면으로 해소될 리 없었으나 곧장 시작하지 않으면 난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비가 매섭게 내리는 동트기 전 새벽부터 길을 나섰다.
준비한 장비들과 옷이 제 역할을 충실히 하기를 바라면서 걸었다. 헤드랜턴을 걸고 진창이 된 길 위를 걷는데 기분은 영 낯설었다. 마치 처음 걷는 사람처럼. 어두컴컴한 산길 앞에 자꾸 맥이 풀려 자주 쉬었다. 비를 맞아 잊었던 피로가 엄습했다. 벌써 포기하고 다 관두고 싶었다. 무엇 때문에 또 무슨 이유로 여길 다시 올 생각을 했던가.
사실 프랑스 길을 제치고 먼저 포르투갈 길을 걸었던 것은 길에 사람이 너무 많다는 소식 탓이었다. 덕분에 5년 전, 난 길을 걷는 동안 고작 다섯의 순례자를 만난 게 고작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프랑스 길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래, 이런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예상했던 시간보다 목적지에 늦게 되더라도 걸어봐야지.
피레네는 명성만큼 사악했다. 이미 몸은 모조리 비에 젖어 차가웠고 고도가 높아질수록 기온이 떨어져 얼어붙었다. 이거야말로 진퇴양난인가. 걸어야만 몸이 식지 않고 걷기엔 힘이 들었다. 처마 밑에 앉아 잠시 비를 피하며 초콜릿을 먹는데 한 이탈리아 친구를 만났다. 그도 힘든 모양이었다. 지쳐서 말도 없이 각자 가져온 음식을 씹다가 가벼운 목례 뒤 다시 오르막을 올랐다. 앞치락 뒤치락하며, 번개를 맞아 쓰러진 나무를 피하고 무너진 산비탈을 에둘러 걸었다. 그저 '걸었다'라고 말하기엔 너무나도 힘에 부친 산행이었다. 물도 떨어지고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그간 다닌 곳에서 이런 경우가 있었나. 몸이 위기를 느낄 때 종종 공황발작이 일었는데, 앞에도 뒤에도 사람이 없는 무지막지한 산길에서 그렇게 되면 어쩌나. 설상가상으로 비는 눈이 되었다. 아득한 눈보라가 몰아칠 때 실성한 듯 웃어버렸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빠졌으니 이제부터 내 진면모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스스로를 수렁에 빠뜨리길 좋아하는 사람은 이런 생각에 미친다.
아마도 재미있는 기억이 될 거야.
탈진 상태를 넘어선 어떤 것이 되어 발만 움직이다 비로소 정상에 올랐을 때, 개와 함께 걷는 남자가 신령처럼 머물러 있었다. 그는 블리자드라고 했다. 매서운 바람에 얼어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 그는 개와 꼭 붙어 앉아서는 눈보라 너머 어느 버려진 성당을 바라보고 있었다. 개의 이름이 뭐야. 폴. 눈보라가 부는 곳에서 태어났을 폴이 푸른 눈으로 눈보라를 응시한다. 산을 넘었다.
산을 내려와 이탈리아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의 이름은 댄. 앞으로 계속 마주치게 될 첫 친구. 시작점 이후의 첫 스탬프를 순례자 증서에 찍으며 시작이 반이라는 한국 속담을 알려줬다. 벌써 반이야. 말하면서 웃고 말았다. 뜨거운 물을 맞을 때의 황홀한 감각을 나는 알고 있었다. 젖은 옷을 널어두고 태우는 담배의 맛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도.
폴과 함께 신기루 같이 걷던 남자가 나무 막대를 짚고 내려왔다. 개와 함께 잘 수 있는 곳을 찾으려면 더 걸어야만 한다며 다시 스르르 사라졌다. 난 그 이후로 남자와 폴을 다시 본 적이 없다. 아마 그 비슷한 일을 겪었던 것만 같다.
@b__ak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