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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y 02. 2022

미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정말 미쳐버린 사람들은


  여행에 미쳤다는 사람들이 있다. 인터넷에 신세 좋은 나날을 올리며 부러움을 수집하는 사람들.  정말 미쳐버린 사람들이 있었다. 자랑을 토대로 여정을 만들어내려 애쓰지 않는 사람들. 바라는 것을 따르다  자체가 되어버린 이들. 나는 어느 쪽에 속할까. 아니면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는 사람일까. 글로 드러내는 방식을 생각하면 전자일 테고 동경하는 지점은 후자. 그렇게 미쳤다는 사람들과 미친 사람들을 만난다.


  방콕에서 호스텔을 운영하던 사람은 호스텔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당분간 공사현장 일을 한다고 했다. 자전거로 세계를 여행하던 사람은 명상센터에서 일을 도우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살사를 잘 추기에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초대를 받던 사람은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춤을 가르치고 있다. 모두 여행을 떠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이 건사하는 건 자신의 신념뿐이다.



  순례자들은 제멋대로의 속도로 길을 걷는다. 그날, 나는 평범한 목적지를 골라 택했고 성수기를 기하여 문을 여는 숙소들이 있을 것이라 예상도 했기에 빠른 속도보단 체력 안배를 우선으로 걷는다. 혹여 가진 정보와 달리 아직 닫혀있는 곳이 있다면 다음 마을을, 그리고 또 다음 마을을 찾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일이 왕왕 있지만 이렇게 빨리 생길 줄은 몰랐다.


  남자의 작은 가게에는 여러 나라의 국기가 있었다. 벨기에 출신인 그가 나를 불러 세우며 이 동네의 숙소는 모조리 닫았고 앞 뒤로도 마찬가지니 대안은 비싼 곳에 묵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예측은 언제나 가장 밑바닥으로 향한다. 더 떨어지지 않고 멈추는 게 다행일 정도로. 그러나 오늘은 바닥에 가까운 소식이었다.


  그는 잠시 후에 장을 보러 가까운 도시에 나갈 예정이니 자신의 차를 타고 가라며 커피 한 잔을 권했다. 비싼 숙소에 머물기 싫어 곤란한 차였으니, 응당 무료라고 덧붙이면서. 그리고 그와 나는 한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남자는 이미 7번의 순례길을 걸어낸 사람이었다. 이런 일이 종종 생기는 데다 누군가의 차를 얻어 타는 일에 스스로를 공격하지 말라고도 했다. 씁쓸하게 웃는 내 마음을 헤아리는 사람이었다. 나도 이미 한 번 걸어봤기에 이런 상황을 가능한 꺼리게 되는 편이었지만 그의 섬세한 다정까지 내칠 필요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래서 남자는 왜 이런 타국의 작은 마을에서 기껏해야 라면과 콜라, 사탕 따위를 팔며 살고 있는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얻는 에너지는 고국으로 돌아간 자신이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종류의 에너지라고 한다. 극도로 응축된 에너지는 열흘 정도 밥을 먹지 않더라도 살아갈만한 에너지를 얻는다고. 그렇게 자신의 삶은 나날이 늘어나는 중이라고도 했다.


  비웃을 일도, 한심하게 볼 일도 아니다. 그의 인생은 그랬다. 삶에서 도피한 것도 아니요 궤도에서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게 그가 걷는 길이 었겠지. 말마따나 수명이 백 년은 늘었을 그와 함께 즐거운 대화를 나누며 차를 얻어 타고 다음 도시로 갔다. 빨래를 하고 휴식을 취하다가 강렬한 허기가 밀려왔다. 난 게걸스럽게 식사를 하며 에너지를 채웠다. 몸을 챙기는 것이 전부인 순례길에서 챙길 이야기가 늘어날수록 힘이 드는 걸까. 난 길을 걷나 아니면 사람을 걷나.



  그리하여 진정 미친 사람들이 줄줄이 떠오르는 거다. 진심으로 자신이 행복해하는 길을 유지하기 위해 힘든 것도 버티는 사람들. 고통을 견디기를 택한다면, 가령 내가 글을 쓰거나 여행을 위해 돈벌이를 찾는 행위가 그렇다면. 고작 그런 게 스스로를 가여워할 이유는 될 수 없다고 증명하는 사람들이 도처에 있다. 울지 않고도 이룰 수 있는 목표와 슬픔 없이 이겨낼 수 있는 시련이 있다. 용기와 존경을 보내면서 나는 미치지 않는다. 덩달아 함께 미쳐버릴 수 있겠지만 정말 자신에게 미친 사람들을 보면서 그만한 미침을 보일 수 있는가는 의문으로 마무리된다.


  아, 누군가 내게 미쳐있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싶어서 사나 보다. 정말 미쳐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미쳤다고 말하지 않으니까. 그럼에도 너무나 묵묵하고 초연히 미친 길을 걷는다. 이미 마음은 그 발길에 다지고 다져져 어느 굴곡도 굴곡이라 여기지 않게 된 것처럼.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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