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존재

일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by 박하


내가 부모의 품을 한시바삐 벗어나야 했던 이유는 보통의 존재가 되기 위해서였다. 세상은 나를 절대 특별히 대우해 주지 않았으며, 그깟 밥 한 공기에도 꼬박꼬박 천 원 한 장을 받아낸 뒤 날 놓아주었다. 잦은 외식에 통장은 버틸 여력이 없었고 나는 여느 학생들처럼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주변 상가엔 주점이 많았다. 골목 편의점은 금요일 밤이 되면 붐볐고, 가끔 추운 계절에 눈 둘 곳 없이 헐벗은 누나들이 들어와 담배와 커피를 사곤 했다. 행사 제품이라도 있으면 꼭 내게 먹으라며 주고서. 웨이터 형들은 대개 스포츠 복권을 하고, 종종 당첨이 되면 내 일주일치 급여정도의 돈을 딴다. 비록 편의점에서 고르는 것이었지만 내게 한 턱을 내기도 하고. 나와 한 살 차이었던 어느 웨이터 형은 벌써 아우디를 끌기도 했다. 옆 좌석 여자는 자주 바뀌었어도, 내가 모른 척 할 때마다 나중에 와서는 맛있는 걸 건네고 갔다. 가령, 햄버거라든가.


터키, 이스탄불 (2014)


자정이 지난 뒤, 택시기사 아저씨들에겐 편의점 앞 파라솔이 아지트였다. 얼굴만 보고서 에쎄 라이트인지, 던힐 일미리인지 말없이 꺼낼 수 있는 사이가 되었음에도 아저씨들은 나에게 친근함을 보이진 않았다. 비가 오는 날이면 손님이 많아 모이지 않기도 했다. 하긴, 택시 안에 무전기였나. 자신들끼리 연락할 수단이 있으니. 새벽 세 시가 되면 차가 들어온다. 거대한 트럭에서 다양한 종류의 물건이 내려 질 때면 개수를 파악하고 정리하는데 모든 일이 끝나면 꼭 동이 튼다. 아, 신문을 가져오는 아저씨가 가장 마지막.




그 당시에 난 꿈에 정복당할 시기였으며 밤엔 편의점 일을, 낮엔 스튜디오로 가서 사진을 배웠다. 하루에 네 시간 자기에도 빠듯했지만, 지하철에서 자다가 도착지에서 깨는 능력이 생겼고 사람이 없는 시간엔 잠시 졸아도 혼나지 않았다. 점장님의 배려였다. 식사는 언제나 편의점 음식으로 대체한다. 몸에 좋지 않은 건 알아도 돈을 아끼기엔 더할 나위 없으니 나름대로 복 받은 사람이라 여겼다. 옆 건물 피시방 아저씨가 가끔 건네는 짜장면의 출처는 돈 안 내고 도망간 손님의 것이어서, 꼬박꼬박 그런 특식도 나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폐기 음식물이 있다.

사람이 먹는 것에 '폐기'라는 단어가 붙으니 썩 좋게 들리진 않아도. 그런 것들을 먹고살았다. 단 한 시간 남짓. 폐기시간이 가까워질수록 삼각김밥은 이상하게 식감이 떨어지고 밥알도 우수수 날린다. 그래도 난 아직 폐기상태가 아닌 것들을 먹는다. 맛있는 걸 골라 먹을 순 없어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해야 한다.


늘 새벽에 편의점 앞을 서성이던 할머니는 남는 것이 없느냐 물어왔다. 내 임의대로 남는 것들을 드렸으나, 후에 점장님에게 물으니 그냥 드리라더라. 동이 트기 전, 할머니는 내가 다 먹지 못할 양의 폐기가 나오면 한 봉다리 가득 그것들을 안고 갔다. 뭐가 고마우신 건지 "고맙습니다."하며 고개를 숙이는 바람에 일 년간 나도 함께 고개를 숙였다.




어느 무렵에 문득, 할아버지가 왔다.

매번 게 눈 감추듯 사라지는 빈 박스들을 그렇게 참 열심히 수거하는 할아버지였다.


속이 쓰리다며 아침부터 베지밀을 한 병 사가던 택시 아저씨는 추가로 더 주는 베지밀 하나를 내게 건넨다. 피차 힘든데 너도 마셔. 아저씨는 타이어에 발을 올리고 스트레칭을 몇 번 하더니 다시 주행을 나간다.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나가자마자 할아버지는 들어왔다. 매번 들어올 때마다 할아버지는 매장을 한바퀴 도시곤 결국, 왕뚜껑을 집어 온다. 가장 양이 많은 라면에 정성스레 물을 부어 바깥으로 나간다.


DSC08969.jpg 터키, 이스탄불 (2014)


한 겨울 입김을 불어가며 먹는 라면에, 파라솔 의자엔 눈이 쌓여 앉지도 못하고 서서 먹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으나 문을 열고 할아버지를 불렀다. 추운데 들어오시라고. 안에서 드셔도 된다고.


괜찮아요, 냄새납니다.


폐지를 주우며 언제 한 번쯤, 냄새가 난다는 말을 들은 적 없겠냐만은 나는 그 어떤 비난도 하지 않을 생각인데. 할아버지는 끝내 들어오지 않으셨다. 할아버지가 라면 국물까지 다 들이키며 식사를 마무리할 때, 아까 받은 베지밀을 건넨다. 날 추운데 주머니에 넣어두셨다가 드시라고. 이것이 특별하지 않은 보통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할아버지는 만날 수 없었다. 사람 눈에 비치는 귀천의 시선을 벗어나지 못하고 허우적 대다가 결국 건넨 베지밀은, 다시는 오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진 걸까. 후회가 들기도,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것은 이내 멎었다. 어디로 가신 건가. 하지만 같은 상황이 다시 오더라도 베지밀을 건네는 것이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겠지. 잘못 받아들일 수 있는 어떤 종류의 동정보다도.


단지, 의자에 쌓인 눈을 털어놓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