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에서 한껏 대찬 발버둥을 쳐본다.
300에 34.
주인이 고약하지 않으면 됐다. 어딘지 까탈스러워 보이는 안경에, 품에 안은 강아지는 나보다 화려해도. 되려 이런 사람이 간섭을 안 하니까. 햇볕도 잘 들고, 지하철역도 가깝고. 이만하면 됐다. 아니, 이런 생각이 들면 꼭 더 좋은 방이 나온다고 하던데. 요 며칠 동네를 뒤지고 다닌 끝에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매물은 '살아보니 비좁았더라' 같은 결과를 주었어도, 계약을 하기 전까진 어찌나 넓어 보이 던지.
배낭 하나에 세간살이를 다 넣을 만큼 나의 짐은 간소했으나, 정착의 일환으로 시작된 텃밭 가꾸기는 자꾸만 계획보다 엇나간다. 홀로 서기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보증금은 아버지의 지갑에서 빌렸지만, 대학 등록금 따위도 없으니 이만하면 양심적인 빚쟁이지 싶었다.
코딱지 만한 월급에서 다달이 큰 조각으로 나가는 월세가 눈물 겨웠어도 어쩌랴. 수준이 이런 것을. 혼자 살면 개성 넘치게 방을 꾸미겠다던 포부는 고작 1년짜리 집주인 타이틀 앞에서 고이 접어야 했다. 열두 달 안에 못이라도 잘못 박아 집에 흠을 내면 거꾸로 물어줘야 할까 싶어 그 흔한 공구하나 들이지 않았다.
월세 34만 원짜리 방에서 하루 만원 어치의 생산적인 일을 해내야 한다는 압박. '하루 만원이라도 쓰지 않으면 다행이지' 자조와 함께 그렇게 원래의 꿈은 서서히 자취를 감췄다. 이 방은 어딘가 악귀가 있나, 또랑또랑한 정신이 한 없이 무기력해지는 수조에 갇힌 느낌을 주는.
낮은 찬장을 여니 라면이 있다. 파스타도, 볶음밥도, 김치찌개도 할 줄 알지만 이것도 한두 번 지나면 참 귀찮은 일이라는 걸. 좁은 집이 주는 감동이란 어느 누군가가 올린 셀프 인테리어에서 여실히 느끼는데, 그것도 열 평 쯤은 넘어가야 손을 대지. 여러 사람에게 숱한 감동을 선사하기에 고작 싱글 침대의 위치 변경만으론 어림도 없다.
안 되겠어. 비상탈출을 해야지.
챙길 것은 라면뿐이어도, 옷가지 몇 벌 주워 넣어 둘러메고 나간다. 방에 앉으면 시선이 닿지 않는 곳은 오직 화장실뿐이라는 사실에 절규하듯 도망쳐도, 우주선보다 작은 방엔 낙하산조차 없다. 우리는 행복을 사수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그 얼마나 많은 기회를 탕진하는가. 집이 없을 땐 온 세상이 나의 집이었던 내가 저지른 멍청한 선택이 그랬듯.
지치지도 않고 돌아오는 월셋날에, 걷어차버린 일자리가 남긴 백수짓이 애먼 일로 보여도 스스로를 위기로 몰아 넣는 것은 프로젝트의 첫걸음이다. 그래도 며칠은 방구석에서 무기력에 날 놓았다. 바닥까지 잠수하는 기분을 한껏 즐기다 바닥에 발이 닿는 느낌이 들어 방을 깨끗이 정리하고, 밀린 설거지도 하고. 들키지 않게 조심스레 나간다. 그렇게 탈출했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집을 놓고 다른 곳을 전전하다 돌아온 월세방 앞에서 나는 야속하게도 정말 선명히 비밀번호를 기억했다. 차라리 잊거나 틀려버려서 '어머, 들어갈 수가 없네?'하며 발걸음을 돌려 다시 도망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어떤 독립이 실패하든 간에, 그것은 당사자에겐 자존감 하락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어서 난 끈덕지게 월세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아버지의 지갑으로 돌아갈 보증금의 무게까지 더해진다면. 그런 내가 꾸역꾸역 목구멍으로 넘겨야 했던 독사과를 야멸차게 뿌리친 건, 단순하게도 계약 해지였다.
나의 실패를 인정하는 일이, 부모님의 잘못이 아니라는 설명을 동반해야 했지만. 어쨌든 난 보기 좋게 실패했다. 계약직 인턴에게 뻔하디 뻔한 결과였는데 잔소리는 없었다. 제 몫을 다하지 못하는 아들에게 역정을 낼 좋은 구실이 되었지만 전혀 그런 눈치가 없다.
아니, 나는 어쩌면 성공했다.
그래. 월세 적응에 실패했을지언정 기존의 목표였던 월세 탈출 프로젝트는 성공하지 않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