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다른 사람들

그래도 나는 서울을 그리워하기로 했다.

by 박하


연락 없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내겐 익숙했다. 그런데 그것은 나에게만 익숙한 일어어서 친구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워하는 일이 잦았다. 미리 계획하고, 스케줄을 짜는 삶에 깨진 유리처럼 끼어든 나의 연락이 달갑지 않아, 사람들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기에 바빴다.


만나고 싶은 사람이 생겨 똑똑, 노크를 하고. 지구가 반 바퀴 돌아갈 동안 답변이 없으면 더 이상 보채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마다 만남이 성사되는 사람은 참 고르게 나눠졌다. 만나는 사람마다 너무나 다방면의 성향을 가지고 있어, 나는 어떤 누군가의 편을 들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수용하는 능력만큼은 부쩍 늘었음이 분명했다. 이런 삶도 있고, 저런 삶도 있구나.


_H000661.JPG 한국, 서울 (2015)


어떤 삶을 비난하거나 혐오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잘 살고 있는 사람에게는 관심이 덜 갔지만 잘 살고 있지 못한 느낌의 사람에게는 살금살금 다가가 곁에 서기를 즐겼다. 나는 조금 많이 즐긴 듯하다. 어떤 이가 드러내기 힘든 치부를 드러내게 하는 것이 어떤 도전처럼 여겨져, 불쾌했을 당사자들을 생각하면 내가 참 못나고 미안하기도 하지만 '나에게 말해봐. 부족한 것을 채워줄게.'하는 의도는 없이 '넌 부족한 부분이 있구나. 뭐, 그럴 수도 있지.'하고 말하는 것이 딴엔 재밌었나 보다.


나는 느슨하게 살기로 했다.


치밀하게 사는 친구들은 날 마냥 부러워만 했다. 그렇다고 결코 시간을 가소로이 여긴 것은 아니며, 그저 짜임 있게 빳빳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을 뿐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언제나 나는 한가하고 여유로운 사람이 되었다. 꽤 오래 머물고 있는 한국은 나를 더 조급하게 만들고 있어 위기감을 느끼는데, 평균치보다는 한결 여유로운 사람이라니. 글쎄 이 정도로 만족해야 할까.


총천연색 박하향 미래를 꿈꾸기엔 여의치 않은 도시가 원망스러웠다. 내가 갔던 모든 도시 중에 가장 차갑고 인간미 없는 도시 서울은, 많은 사람이 동의하지 않을지언정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팍팍한 삶에 찌들어 좀비처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나 콘크리트 색 이외의 어떤 색을 흔히 찾을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서울을 미워하기에 충분한 이유였다.


_H000706.JPG 한국, 서울 (2015)


비싼 방 값에 깔려 낭만을 잃고 싶진 않았다. 현재의 속도를 유지하며 삶을 누리기에 나의 능력은 뛰어나지 않았으니, 서울로 올라오는 것을 우선시하기보다 내 속도를 잃지 않기를 택했다. 서울역에 도착하기 전까지 나는 서울에 있지 않은 것이어서, 엉뚱하게도 미리 연락하는 일이 없었다.




간혹, 시간의 간격을 메우려 식사를 택하는 사람들에게 맞추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끼니가 늘어나니 부쩍 살은 올랐다.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대화의 여백을 견디는 것들이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보드랍게 감싸는 여유가 익숙한 나는 때로 빠듯하게 그들과 같이 시간 도둑을 쫓았다.


밀린 이야기를 미처 다 나누기도 전에 대화를 다음으로 미루며 도망치는 일 또한 넘쳐났다. 자신의 폭풍 같은 삶 속으로 다시 뛰어드는 일을 채 말리기도 전에 그들은 사라졌다. 이런 바쁜 삶이 당연한 것이라는 의견에는 동의할 수 없으나 나의 여유를 강요할 마음 또한 없으니, 나는 그들이 뛰어드는 모습을 잠자코 바라만 봤다.


어영부영한 만남과 차가운 도시 사이에 빛나는 공간들은 나를 매료시켰다. 아니, 사실 그렇게 빛나진 않았지만 주변이 너무 어두워 그렇게 보였나 싶다. 질서 없는 공간. 무질서를 탄생시키는 공간들은 나의 애정을 듬뿍 받았다. 지친 세계를 엇나가는 역동적인 모습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나 돌연변이 같은 나의 동족들은 그런 곳으로 삼삼오오 모여든다. 이 처량한 도시에서 살아남으려 열심히 기어 이 곳까지 도착하기도 하나보다. 모두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_H000579.jpg 한국, 서울 (2015)


살아남을 수 있을까.


버텨낼 자신이 없으니 다시 계획하는 도피는 부러움의 정점이 된다. 없는 살림에 시작하는 여행이 색안경을 지나 '차고 넘쳐서 떠나는' 것으로 오해받아도, 그런 시샘을 경험하는 것 역시 그리 나쁘진 않다. 지금 이 식사도, 그 이전의 식사도 언제나 얻어먹는 입장에 있는 내가 가난한 것쯤은 그들 역시 다 알고 있으니 괜히 해보는 시샘을 충분히 들어줄 생각도 있으니까.


그래도 이 도시에 끈질기게 살아남고 있는 친구들에게, 언제나 몰래 온 손님이 되어 팍팍한 삶 속 촉촉한 이벤트 정도가 되었다면. 내 삶도 꽤 근사하다고 말하고 싶다. 얼마 없는 도피처가 좁아지고 더 이상 도피하지 않아도 되는 곳으로 떠나는 준비가 완성될 무렵, '다녀올게'라는 그 흔한 어떤 안부나 걱정 또한 주지 않는 시큰둥한 출국도 근사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런 나의 친구들이 훨씬 근사하다.

무척 괴짜 같긴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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