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낭여행자의 고백

적당한 고백은 관두도록 해요, 우리.

by 박하


고백은 늘 극적인 타이밍에 찾아온다.

그러나 언제나 극적인 타이밍은 아니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은 늘 공항을 뛰어다니고, 게이트 사이에서 붙잡곤 하는 일만 있다는 말이 아니란 소리. 최악의 타이밍에 건네는 고백이란, 마치 포효와 같아서 되려 상대방을 겁나게 하지 않나. 미련처럼, 때론 그 미련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하는 고백들이.


인도, 푸쉬카르 (2014)


세계여행을 시작하기 전, 누군가 내게 세 가지를 절제하라고 했다. 술, 마약, 그리고 사랑. 사랑이 술과 마약과 동급이라니 이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떨떠름했지만 태국행 비행기표를 찢고서 깨닫는다. '아, 이거 사랑이 제일 위험하구나.'



사실, 전부 돈의 문제다.

술도, 마약도, 사랑도. 어느 나라를 돌아보아도 술 한잔은 저렴한 밥값을 넘었으니 거들떠도 안 보면 되는 일. 마약은 거하게 취한 사람을 본 일이 트라우마로 박혀 차라리 나았다 하겠다. 그러나 글쎄, 사랑이란 건.


일렁이는 바람에 실린 마음이 손 끝에 가 닿았으면 하는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 사랑을 못 하다니. 낯선 타국의 햇살. 기울어지는 노을에 진한 키스를 나누는 일이야말로 낭만을 넘어선 어떤 로망이 아닌가. 그러나 가난한 자에겐 사랑 역시 샤넬백처럼 사치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아직 해야 할 여행이 길다.

무섭도록 긴 여정에서 주체적이었던 스스로가, 생전 처음 본 사람에게 그 핸들을 맡기는 느낌. 납득하기 힘들어도 그렇다. 나의 남은 여정과 그, 혹은 그녀를 저울질하는 자체에서 이미 진정한 사랑이 아니라며 감정을 소멸시켜버리는 일.


내 감정을 자살하도록 부추기는 일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지만, 모든 바람에 그대로 일렁이면 스스로가 갈피를 잃는다는 어떤 위기감이 든다. 나를 차갑게 얼리는 일이 한층 더 익숙해질 무렵 깨닫는다, 다시 떠나기 좋다는 걸.


인도, 푸쉬카르 (2014)


마치 영화처럼.

그래 우리는 영화 주인공이다. 당신에게 고백을 하는 주인공인데 연습이 덜 되어서인지, 참 어렵다. 리테이크가 가능한 영화라면 몰라도 적당한 타이밍과 분위기에 NG 없이 가는 것은 엄청난 용기가 있어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어쩌면 우린 남보다도 못한 사이가 되기 위해서. 이 사이를 한 발자국 넘어보려는 시도로 고백을 하는 것이겠지. 수많은 NG가 필요함을 알고 있어도, 어쩌다 NG 없는 상황을 꿈꾸며 그렇게. 그러나 다시 누군가에게 나쁜 사람이 될, 그만큼의 용기는 반드시 필요하다.


오해는 아니랍니다.

'알고 보니 사랑이었더라.' 같은 아련한 문장을 먼저 떠올리기 전에 문득. 여행을 하며 터득한 그 대범함은 뒤로 물리고 가장 약한 모습의 자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건 어쩜, 두려워서일까. 이런 태도가 주는 것들은 역시, 사랑이 가장 나약한 모습에서 출발하는 느낌이어서 좋다.


나도, 상대방도 가장 약하디 약한 모습에서 쉬이 바스러지기 좋은 상태로. 원래의 단단한 모습을 찾으려 돌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반면, 혹시나 상처받을 자신을 위로하기에 제일 좋은 포지션이란 것은 모순이더라도. 약한 나를 앞세워 '그럴 줄 알았어.'라고 말하는 것은 바람에 떨어지는 잎사귀만큼 비열하다.




DSC09675.jpg 인도, 맥그로드간즈 (2014)


어느 날, 달빛 없는 하늘에서 고개를 내민 별들이 제가 제일 밝다며 떠드는 밤이었다. 마음이라는 것이 마치 탁구공 같아서, 상대방에게 고백이란 형태로 일단 넘기고 보면 자신은 일순간 편해진다던. 그런 말을 듣고 있었더랬다. 그러고 보니 고백이란 놈, 그것 참 이기적인 일일세.


그리고 대부분 여행에서의 고백은 그래, 미적지근한 경우가 많다. 아니, 접촉사고로 그치는 일이 잦다. 요절할 정도로 큰 대형사고는 결코 치지 않으려 몸을 사리다 보니 보험 처리하고 제 갈길 갈 수밖에. 내가 너무 쉽게 영화처럼 빠져버리는 것이 아닐까, 상대방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조심조심 움직이는 것이 현실이리라. 때문에 전력을 다해야 할 타이밍에 멈칫거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렁이는 바람에 불씨라도 붙는다면, "아, 끓기 시작했다." 이젠 아차 싶은 마음마저도 들지 않을 때. 불길을 잡으려 다독여도 실패. 도망친 다한들 불길은 근처까지 서서히 번질 것이니, 고백이란 것은 돌풍처럼 마음 들녘 초가삼간을 전부 태워버릴 테지만. 가끔, 비가 되어 모든 것을 꺼뜨리는 역할을 해줄 터.


DSC00659.jpg 인도, 맥그로드간즈 (2014)


Que sera, sera.


될 대로 되라지.

'하쿠나 마타타.'라는 긍정적인 단어도 있거늘, 그 말을 선택할 만큼의 용기까진 없었다. 히말라야 동편의 다즐링을 함께 하자는 선약까지 깨고, 지나온 길을 거슬러 올라가는 일이 미친 짓으로선 충분했는데. 느린 완행 기차에 이틀 동안 꼬박 묶여 있어도 피곤치 않다. 하루 이틀 싸운 것이 아닌 현지인들과 살갑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분명, 나는 들떠있었다.


사흘 앞서 떠난 그녀가 있다던 도시에 도착해, 골목마다 동양인을 묻고 다니는 꼴이라니 '여행 초보라서 같은 동족을 찾나 보다.'라는 오해를 받기 딱 좋았다. 이리저리 들러붙는 호객꾼 들을 떨쳐내고 찾아낸 곳에서 나는 다시 겁이 난다.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되기에 너무 아까운 두려움이.


밥을 먹고 산책하는 거리에서, 시원한 음료가 괜찮은 카페에서, 노을이 일렁이는 호수에서. 사실 괜찮은 타이밍을 전부 놓친 셈이다. 더 좋은 것이 오리라는 기대 속에 벌써 하루는 저문다. 여행 중 시도 때도 없이 체하는 그녀의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주므르며 말했던 것 같다.


어설픈 돌풍 말고 간절한 단비처럼 짙은 고백을.


그게 벌써 일 년 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