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빽' 투 더 아날로그

왠지 이렇게 발음해야 할 것 같지 않니.

by 박하


이모가 건넨 휴대용 카세트 플레이어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그것을 꽤 소중히 다루었다. 생일이 나와 같음에도 불구하고 한참이나 기다려왔다는 듯, 선물로 준비한 것이었다. 간간이 보이는 MP3플레이어와 대부분의 CD플레이어가 대세인 요즘, 큼지막한 'SONY'마크는 비루하기 짝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뒤떨어졌단 소리는 아니고. 자신의 첫 월급으로 산 의미 있는 물건을 여태 버리지 못해 가지고 있는 그녀에게, 나는 거짓 미소로 기쁜 모습을 보이긴 어려운 열여섯이었다.


난 아날로그를 사랑했다.


검은색에 무게도 묵직한 그 물건을 들고 다니기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카세트테이프 또한 컴필레이션을 마음대로 할 수 없어 곡의 선호도는 상관없이 앨범 자체를 전부 들어야 했다. 사실, 그런 불만을 가진 사람들이 있어 유행곡들을 엄선한 테이프도 음반가게에서 들어보았지만 순정 앨범만 못했다. 꼴에 앨범의 질을 따지는 열렬한 순정파였다 나는.


DSC05592.jpg 쿠바의 중고 책시장(위), 숙소에 비치된 가이드북 일명 '바이블'. 시시콜콜한 온갖 정보가 가득하다. 쿠바는 인터넷이 되지 않아 방문한 사람들이 손수 정보를 남긴다.(아래)
IMG_2338.jpg
IMG_2336.jpg
IMG_2335.jpg


사람이 결코 넘치지 못 하던, 시내에 딱 하나 있는 음반가게를 뻔질나게 드나들던 내가 덕분에 알게 된 가수 '이적'의 행보는 어린 나이에 결코 쉽지 않은 것이었어도 동방신기와 god로 나뉘어 싸우던 여자애들을 결코 무시하지 않았다.


카메라 시장도 상황이 다르진 않았다. 흑백 필름의 가격은 어느 새 내가 감당하지 못할 선까지 올라있었다. 수요가 없다 보니 자연스레 가격은 오르는 것이 경제법칙이라 해도, 그 속도보다 나의 성공이 훨씬 더뎠다. 지금은 롤당 가격이 6천 원 정도, 삼각김밥에 라면만 먹으며 한 롤당 4천 원대까지 버티보긴 했다. 그러나 인화비까지 감당하며, 내 욕심에 컷 수를 줄이는 것은 어려웠다.


바꾸기에 만족스럽지 않은 디지털의 발전과 아날로그의 퇴보. 그 중간은 애매한 구간이었다. 내가 관통하는 시절은 돈에 대한 여유가 없는 학생에겐 골치 아픈 시기였다. 유행에 휘둘려 어설픈 완성도의 물건을 사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는 한둘이 아니었고, 그럼에도 외면할 수 없는 시선들은 결국 나의 지갑을 열었다.


그래, 격변의 시기였다. 아직 필름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들도, CD플레이어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도 한 시절쯤 지난 지금과 같이 '낭만적이다' 혹은 '클래식하다'라고 좋게 포장되지 않는 때였다. 여분의 테이프도 CD도, 필름도. 구닥다리 물건 취급을 받는 것들이 가득 찬 아날로그인의 가방은 무거웠다.



IMG_4428.jpg 아저씨와의 흥정으로 산 미놀타 렌즈. 단종됐다.(페루, 쿠스코)
DSC06198.jpg
DSC06201.jpg


어느 순간부터, 게으름은 편리함으로 포장되고 있었다.


전화까진 좋았다. 내 인생에 갑작스러운 일이 닥쳐 '빠름'이 필요할 때, 난 전화의 존재에 대하여 무한한 감사를 표했다. 전화가 다른 기능을 품게 되고 더 이상 누군가의 목소리보단 활자로 정보를 전하게 될 때까지. 사람들이 치킨집에 배달 전화를 거는 일이 편치 않다는 공감을 말할 때, 나는 소름이 끼쳤다.


이제는 일면식 없는 누군가를 알고자 하는 일이 멎고 있다는 것에 드는 회의감. 자신을 숨기고 SNS를 이용하여 그 뒤로 적는 관음증과 같은 공감. 쓰는 일이 줄어들어 손글씨가 예술의 영역으로 탈바꿈하기까지. 그것들이 어떤 불편함으로써 인식되지 않던 아날로그로부터 나 홀로 도망치지 못했다.


어떤 특별한 이벤트로밖에 역할을 하지 못하는 손편지와 뜨개질 따위가. 어느 순간부터 잊혀진 것들이 된다면 나는 슬프기나 할까. 전자책을 사려고 알아보다가, 책 넘기는 소리가 사랑스러워 종이책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내가. 점점 더 게을러지는 세상에서 버틸 수나 있으려나.


IMG_5056.jpg 가능하면 글씨는 만년필로.


끊임없이 새로운 것들이 나오는 마당에 나는 내 손때를 묻히고 싶다. 아직 아날로그가 세상을 움직이고 있다고 믿고 있다. 쌀알보다 작은 시계 부품을 조각하여 만드는 할아버지라던가, 섬세하고 정교한 일을 할 수 없는 로봇 발표회 따위에서. 다행이라고. 기계보다 정확한 감의 사람들이 아직은 살아있다고. 그런 생각을 한다. 가끔 필름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사람을 볼 때면 '그래, 저 사람은 아직 버티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나는 버텨내지 못했는데.'


죄책감과 상실이 뒤엉켜 마음을 때릴 만큼 우울한 비에 세상이 잠시 멈췄으면. 뒤돌아 걷지는 못해도 더 나아가지는 않았으면. 이미 충분히 편리한 세상에 나는 만족하기로 해서. 꽤 올드 한 취향을 유지한다. 다이어리나 만년필, 단종된 카메라 렌즈와 아직 버리지 못한 필름 카메라. 비록 이 글마저 인터넷으로 올리는 영광을 누리고 있다한들.


영화 '빽 투 더 퓨처'가 상상하던 미래에 도착한 지금. 영화보다도 현실은 시시했고 다소 싱겁기까지 했다. 오히려 아날로그를 동경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나에게 이 속도는 버겁기까지 하니까.



점점 시대에 굴복할 것들이 많아지는 요즘.

여전히 아날로그로 가득한 내 가방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