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옷도 어디선가 줍지 않았을까.
나는 단벌신사다. 말이 좋아 단벌신사지, 패션에 대한 무관심에 더 가까웠다. 아레나, 지큐, 에스콰이어. 미용실에만 가도 흔히 볼 수 있는 남성 패션잡지들의 존재 여부조차도 잘 몰랐고, 신발은 두 개 이상을 동시에 가져본 적이 기억에 없다. 이런 내가 긴 여행을 떠나며 챙긴 옷들은 그냥 집에서 입던 옷, 심지어 군대에서 입던 티도 하나 챙겼으니 알만하지 않나.
신발 좀 하나 사. 제발.
돈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엄마의 태클로 인해 내 신발을 살펴보긴 했어도. '이 정도면 뭐..' 햇수로 삼 년에 접어드는 아디다스 운동화는 밑창도 아직 튼실하고 디자인도 무난하니, 헌 신발을 신고 다니다 찢어질 염려보다 새 신을 신고 다니다 도둑 맞을 걱정이 컸다. 욕을 한 사발 먹어가며 꿋꿋하게 들고 나왔던 신발 역시, 여정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와 신발장 한 편에 있다.
새벽녘에 도착한 쿠바에서 나는 우왕좌왕했다. 짐짓 그렇지 않은 척 하려 했어도 비즈니스 차 왔다던 이란 친구들과의 택시 합승은 힘들었다. 스페인어를 한마디도 못했기에, 긴 시간 동안 침묵을 하다가 얹혀 들어간 숙소. 벌써 동이 트는데, 세탁 서비스가 있다는 주인의 말에 부랴부랴 땀에 절은 티셔츠를 세탁실에 넣어놨더랬다.
테라스 빨랫줄에 걸린 옷들을 제각기 찾아가는데, 사라진 내 옷의 행방을 물어보지만 헛수고. 며칠이 지나, 티 한 벌로 매일 손빨래를 해 입는데 비가 내린다. 빨랫줄에 처량하게 걸려있는 얇은 흰색 이너웨어 한 벌. 어느 누가 나의 흰색 브이넥 티와 헷갈려 가져갔을 테지. 브랜드마저 똑같이 유니x로였다.
사실, 진짜 문제는 두꺼운 겨울 옷. 일 년 내내 여름인 나라만 여행할 수 없으니 외투라도 챙기는 것은 당연지사. 얇은 옷을 여러 벌 입는 것이 최선이지만 내복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새삼 깨닫는다. 나보다 추위를 더 많이 타는 사람들에게 빌려주기도 했다. 대책 없이 견디는 추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알고 있으니까.
획일화된 디자인은 부정하고 싶어도 등산에는 확실히 아웃도어가 좋다. 냉장고 바지를 입고 패기 있게 등산을 해본 결과, 기능성 제품이 왜 기능성인지 납득했다. 몸에 착 달라 붙는 아웃도어 제품이야 그리 많은 영향을 받지 않지만, 일반적인 옷에게 몸의 변화는 우습다. 식단 조절만으로 몸이 변한다는 말에 콧방귀를 치다가, 급속도로 빠진 살에 멀쩡한 옷을 못 입게 되다니. 옷에 몸을 맞추는 것이 얼마나 미련한 일인지 새삼 깨달아버렸지 뭔가.
있으면 챙겨가라는 말에 혹해 옷더미를 뒤진다. 파라과이의 더운 날씨에 물 한 잔 얻어마시려 들어간 곳이 한인교회였는데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줄 헌 옷 무더기를 정리하는 참이다. 자존심이고 뭐고 당장 입을 옷도 없는데 나는 옷의 무덤으로 뛰어든다.
먹을 것에 쓸 돈도 없는데 옷에 쓸 돈은 더욱 없다. 나이키 민소매 티 하나를 찾았는데 퀴퀴한 냄새야 빨면 되고 살짝 지워진 프린트는 빈티지라고 하자. 여행자에게 옷이란, 유용함과 무게를 중요시하더라도 가격 대 성능비 앞에선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보다 더 거대한 기준은 단연코 공짜 옷.
마을을 걷다 보면 한 명쯤은 반드시 보인다. 이질적인 외모를 가진 사람이. 판초를 걸치고 다니는 나라에서 입고 다니는 야구점퍼만큼 이질적인 것은 없겠지만 옷도 그 나라의 문화이니 되도록 맞춰보려는 시도는 기특하기 그지없다.
그중에서도 몇몇은 정말 현지인으로 착각하여 길을 묻는데, 알고 보니 한국인인 경우의 그 난감함. 시간이 흘러 나 역시 그런 오해를 받아보니 의외로 꽤 괜찮다. 내가 그렇게 현지에 융화되어 있는 느낌이구나 싶어서. 아니, 여행의 고단함과 꾀죄죄함이 얼굴에 묻어 있는 오해이려나.
너한테 더 어울려.
바람막이를 건네주며 그는 말한다. 편하다는 핑계로 뻔질나게 빌려 입다 결국 내가 뺏은 모양새가 되었어도 편하고 괜찮은 옷을 입는 것은 행복하다. 어울리기까지 하면 더더욱. 걸치는 것들에 개의치 않는 나의 성격상, 옷의 행방은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날 수 있는 여정이 아닐까.
또 다른 사람에게서 마음에 꼭 드는 슬리퍼를 조르고 졸라 얻어 신고 열심히 다녔는데, 그 튼튼했던 슬리퍼는 남미를 떠나는 공항에서 뚝 끊어지고 말았다. 그 우연함에 어떤 무게를 느낀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바람막이는 더 어울릴 것 같은 사람이 나타난다면 주저 없이 건넬 것이고,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한 슬리퍼 덕에 사람들이 농담 삼아 말하던. 비행기를 맨발로 타는 영광을 누렸으니 그걸로 됐다.
우연찮게 얻은 옷과 주운 옷.
아직도 만나지 못한 나의 옷들이, 어디선가 애타게 나를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어서 빨리 주워주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