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궤적을 그리며 돌진하는 나는.
어쩐지 낌새가 이상해서 열심히 캐묻다 보면 꼭 숨겨둔 비행기 티켓 하나쯤은 나왔다. 우린 그런 종류의 인간이었다.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의 부모들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비슷한 고민들로 불만을 말하곤 했다. 이미 진행 중인 문제도, 누구에겐 해결되어 지나버린 문제도. 우린 조타수라는 자리를 부모에게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어떤 계획을 꾸미는 집단 같아 보이기도 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에 대한 애정과 별개로 생기는 불편함들로 인해 애증의 관계로 변모된 것처럼.
지금 관통하고 있는 시기는 그만큼 인생의 과도기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만큼 중요해 보였다. 가뜩이나 연습 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나와버린 항해에서 백 미터도 채 못 가 회항해버리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객기를 부리면서까지 태풍으로 돌진하던 우리는 결국 구조되고야 만다.
빠지고 보니 무릎밖에 안 올 정도로 얕았다거나 하는 낙관적인 상황은 결코 오지 않았다. 하는 일마다 부딪치다가 서서히 깨지거나 한 번에 깨져버리는 일이 더 많았다. 그만큼 냉혹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부적응자들의 불만을 들어줄 이 없으니 우리끼리 씹을 수밖에.
그래서 언제 가는데?
좋다는 건 이런 사소하지만 큰 차이. 돌아올지를 묻지 않는 현재에 충실한 물음을 보며 그냥 미소 짓고 마는 건, 나의 계획을 숨기는 것이 아니다. 무슨 그림을 그릴지는 잘 물어보면서 다음 붓터치를 묻는 사람들이 없는 세상에 나도 모르게 진절머리가 났었나 보다.
그에 걸맞은 두루뭉술한 대답을 하는 건 나의 역할이었고 나는 충분히 소화한다. 마치 오래된 친구인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에 감사하며.
엄마는 거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자식이 잘 살기를 바라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반대했다. 행복에 대한 기준이 명확하게 잡혀 다른 것은 결코 인정하지 않을 태도로. 한 번, 두 번, 세 번. 셀 수 없을 만큼 어긋난 궤도로 돌진하는 자식의 모습이 마뜩잖아도 난 결코 돌아가지 않았다.
여행하며 만났던 이들의 '돌아가면 다시 나오기 힘들다'는 만류를 이해할 무렵, 나는 정말 나오기 힘든 인간이 되어 있다. 여권에 스탬프 찍는 것이 재미있어 국경을 넘나들던 그 발걸음이 이리도 무거워질 줄이야. 나는 아마 눌려버렸는지도 몰라. 영화처럼 날 두고 먼저 가라는 소리는 아직 못하겠대도.
숨만 쉬어도 꾸준히 줄어드는 통장 숫자를 외면하다가 나는 그걸 종이 한 장으로 바꾼다. 오랜만에 만나는 'FIRST NAME'과 'LAST NAME'을 잊진 않았지만, 기억나지 않는 여권 번호에 '절대로 여권을 펼치지 않고 기억해 내겠다.'는 오기를 부려보다 포기도 했다.
일단 끊어.
돌아온 한국에서 여행을 낯설어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은 내게 '난 이미 틀렸다.'는 투로 패기 있게 그녀는 말했다. 직장인이 되어 더욱 힘들어지는 여행에 결단을 내리는 되돌리지 못할 지름이 무모해도 난 그런 종류의 응원이 필요했었다.
클릭 몇 번이 오가면 나는 떠나야 하는 사람이 된다. 그 단순한 행동이 주는 엄청난 후폭풍은 나를 외딴섬으로 데려다 주리라 기대도 한다. 불안과 기대 사이의 아슬아슬함을 즐기다 미끄러진 곳이 부디 '기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이가 들어도, 세월이 흘러도.
나는 여전히 지구 반대편을 옆 동네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되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