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현장에 내가 있었다.
나는 이방인이다.
여권 문제로 골머리를 앓다가 결국 볼리비아의 수도인 라파즈까지 열두 시간을 이동해야 했을 때, 내가 이방인임을 소름 돋게 깨닫는 그 순간. 그래서 나는 떠날 시간이 코 앞까지 다가올 때까지 여권을 살피지 않았다. 이 기분을 철저하게 외면하기 위해. 그래서였던 것이다. 여권의 유효기간이 다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기분 좋게 잠들 수 있던 건 갑작스런 야간 버스에 당일 예약을 했음에도, 자리가 남아 떨이로 좌석을 팔아넘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값이 채 안 되는 좋은 버스를 타고, 차내에서 제공하는 저녁까지 맛있게 먹은 뒤 나는 잠에 빠졌다.
나는 '야간'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참 좋다. 야간 자율학습, 야간근무 같은 거 말고. 야간 버스, 야간기차, 야시장, 야간 도서관 같은. 물론 모순되게도 이 또한 누군가의 야간근무로 이루어지는 일일지라도 고객의 입장에선 상당히 낭만적이고 이색적인 것이라는 게.
버스가 멈췄다.
귀마개까지 하고 잠든 탓에, 이미 웅성거림은 한참이나 지난 듯 버스 안은 적막했다. 자정쯤 되었는지 캄캄한 버스 밖으로 나오니 낯선 언어로 다투는 사람들 사이로 눈곱을 먼저 떼고 옷깃을 여며야 했다. 정말 추웠으니까. 버스 기사는 근처에 이미 불까지 피워 놓았고 사람들은 언성을 높이면서도 추운지 불 근처에 옹기종기 모인다.
길이 막혀 못 간다는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져 세워진 차들로 알 수 있었지만, 저 길의 가장 앞에 어떤 것이 가로막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치우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불만에 숟가락을 더 얹어보는데 그들은 꿈쩍도 않는다.
"이봐, 지금 그렇게 소리를 질러도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 해가 뜨면 알겠지만 저 앞의 상태는 헛웃음밖에 나오질 않는다고. 물론 이 상황에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 찍고 다니는 당신도 제정신은 아니지만."
궁금함을 해소하기에 나는 너무 얇게 입고 길을 나섰다. 그래도 운전기사를 끌고 와 짐칸을 열어 침낭을 꺼낼 수 있었으니, 히터도 틀어주지 않는 정차한 버스에서의 취침은 입김과 함께였다.
나는 이 정성을 인정해야 했다.
최저임금이 생계를 위협한다는 시위는 상당히 평화적이어서 물리적 충돌은 없었으나, 수도로 향하는 모든 길에 정성스럽게 바위와 돌들을 깔아 놓은 것은 참신하다 못해 놀라운 발상이었다. 영하로 떨어졌던 이 황량한 광야에 동이 터오르기 시작하니 땅은 화산처럼 끓었다. 땅의 냉기가 뜨겁게 식어 피어오르는 김은 놀라웠다.
AP통신과 연합뉴스도 촬영하지 못할 이 시위의 현장에 목격자가 된다는 것은 두근거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왜 하필 오늘이어야 했는지 따지고 싶은 불쾌함도 함께. 그러나 차마 외면할 수 없는 광경을 보고 나는 의도치 않은 광야에서의 하룻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지독한 추위. 피난민을 방불케 하는 어마어마한 인구의 5km 남짓한 엇갈림을. 나는 그 광경에 취해버린다. 감히 설명할 수 없다. 내가 어쩌지 못하는 불가항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했을 때의 그 무력함을.
그 길을 걸어 건너편으로 왔어도 대책은 없다. 시위가 일주일이 넘게 걸릴지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 이건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사람들의 말에 분노할 힘조차 남지 않았을 때, 함께 길을 건너온 오스트리아 남자 하나가 내게 말을 건다.
"포기하지 마. 저기 트럭 하나가 돌아간다. 우리 저 트럭 뒤에 타고 가자 친구."
손을 잡고 일어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한다.
나는 조금 이른 포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쉼 없이 손을 흔들어 차를 잡는다.
비록 수도에 도착한 뒤, 버스 회사는 나의 환불 요구를 거절했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