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 하우스 체크인

부디 할부로 해주세요.

by 박하


그랜드 피아노와 와인셀러. 이 조합을 어느 집에서 다시 볼 수 있을까. 나는 개인 욕실이 딸린 응접실까지 있는 거대한 집에서 방 한 칸을 차지하고 침대에 눕는다. 한참 전부터 거대한 거실을 가로지르는 날카로운 목소리는 그랬다. "이렇게 공부 안 할 거면 때려치워!"




친구 자취방에서 잘게요.


재미있는 것은 따로 있다. 얼마 전만 하더라도 뻔질나게 내 집인 양 드나들던 친척집들은 여전한데, 이제는 방문을 꺼리게 되는 나 자신이 바로 그렇다는 것.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사는 집이야 그렇다 쳐도 다른 타지에 나가면 피할 수 없는 질문은 '오늘 어디서 자느냐'는 것이다. 잘 곳이 없는 게 딱한 나이는 아니어도 하루를 누이기에 개인적인 공간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럴 때마다 찜질방 문화가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느꼈지만.


물론 친척들이라고 경제적 수준이 공평한 것이 아니니 나는 가장 부잣집을 가면 시설면에서는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어도 집주인의 관심이라는 것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도련님'이라는 생소한 호칭의 아주머니가 나를 반기고 높은 천장이나 대리석 타일이 깔린 현관을 지나는 것은 평생 있을까 말까 한 과분한 대접이었다. 아파트 건물 아래엔 입주민들을 위한 목욕탕까지 마련되어 있으니 이런 부의 집중은 내게 어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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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0043.jpg 서울, 이태원(2015)


그렇다고 하여 근처에 있는 다른 친척의 집을 가면 더 편안하냐 하는 문제는 아니었다.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은 상관없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식사는 탁월했고, 아이가 없다는 것은 정서적 교류에 부담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령의 친척은 경제적 여건이 나의 아버지보다 밑돌았기에 '요즘은 돈 잘 버느냐'는 물음에 서슴없었다.


나에게 집은 결코 편안함의 기준이 된 적 없다.




질문이 휘몰아친다.


그러나 공통된 점은, 강도 높게 몰아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삐질거리며 하는 내가 있다는 것. 결혼, 자녀, 취직으로 이어지는 질문들은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을 할 때마다 한 층 더 심도 있어졌고 친척들은 나에 대한 어떤 지분을 차지한 듯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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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종류의 숙박비는 해결하기도 어려웠다. 선을 넘는 것이 공공연해지고 그 침범에 무덤덤해지지도 못할 내가 결국 발걸음을 포기하게 되는. 나의 삶이 어딘가 재단당하고 기준점을 재확립당하는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내게 생경한 삶이었다. 주말에도 쉼 없이 아이들을 학원마다 실어나르며 사교육의 한 획을 긋고 있는 사람이라면. 내게 비치는 자랑의 용도와는 사뭇 다르게, 한밤 중 아이를 다그치다 꼭 한 번 울음을 터트리게 하는 것이 어떤 종류의 학대가 아닌가 생각도 했다.


없는 살림에 밥이라도 위아래 한 공기씩 고봉밥을 퍼주는 집이나, 거대한 부엌을 놓고도 밥을 시켜먹는 집이 있는 것을 보면 그 괴리에 내 적응 속도가 늘 한 발자국 느렸다. 친척들의 정치적 성향 따위는 아예 생각지 않더라도 생각할 것은 많았다.



그렇게 나는 방문이 뜸해진다. 어딘가 몽롱하게, 늦은 밤 갈 수 있는 가까운 친척집이 있어도 어김없이 친구에게 민폐를 끼치게 되는 것. 도련님이라 불러주는 아주머니는 물론 없으며, 찬 물 밖에 나오지 않고 보일러도 고장 나 외풍이 들지언정. 그 어떤 편안함으로.


나는 잠도 설치지 않는 친구의 집에 하다 못해 함께 먹을 맥주나 떡볶이 같은 주전부리를 바리바리 싸 들고 문을 두드린다. 오랜 타향살이에 너저분한 집안 꼴을 타박하기도 하며. 집에 들어서 대충 바닥에 널브러진 것들을 밀어내고 상을 편다. 살기 힘들다고 투덜댈 수 없는 친척 하우스와 달리 친구 하우스는 형용할 수 없는 공감대로 나를 맞아준다.


어쩌다 먼저 도착한 내게 비밀번호를 알려주기 꺼리는 친척들의 애매한 거절.


추운 겨울, 주인이 올 때까지 집 근처 어딘가를 배회하며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