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주진 못하겠지만.
저도 여기 사람이 아니라서..
방금 서울 사람 같았지? 지랄.
멈추지 않는 으쓱거림에 마음이 들뜬 건 철없는 나이도 한몫했으나, 참 영락없는 시골 사람임을 인정하는 꼴이라 드러내지 않으려 무진 애를 쓴 것 같다. 친구의 쏘아붙임이 야속했어도. 그래도 좋아. 어쩌면 조금쯤 도시 사람처럼 보일까 그런 시절.
여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며 느끼는 그 오묘한 우월감이란. 상대방이 난처한 모습을 보는 것이 난 어찌나 좋았던지, 누군가 내게 길을 물어주기를, 열심히 눈을 마주치려 노력하고 또 노력한다. 가끔 종교나 다단계와 같은 접근이 더 많았어도, 행여 지도라도 들고 있다면 아주 열렬한 눈빛으로 '나를 봐주길' 기도하며.
차를 멈추고 창을 열어 길을 물어오거나, 눈이 잘 보이지 않아 작은 글씨의 메모를 읽어달라고 부탁받는 건 일상다반사. 너도 나도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니, 적어도 나는 발걸음을 잠시 멈출 용의가 있다고 내뿜곤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나한테 묻지 마.
요즘 들어 그랬다.
내비게이션이 될 생각이 늘 가득했어도 가끔은 이어폰을 귀에 꽂아 나의 전원을 냅다 꺼버리곤 한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길을 물어오는 것이 피곤해지고, 하루 최대 여덟 번을 잡혔을 때 이건 뭔가 이상하다 느낀 후. 난 그냥 어수룩하고 멍청해 보였던 것인가.
맞다. 친구는 말하길, 반대로 생각해봐. 도시에서 길을 묻는 사람들은 대부분 타지 사람일 거야. 그 사람들이 왜 너한테 말을 걸까? 처음 보는 사람인데 알 수 없는 친근함이 있어서겠지. 네가 결국 서울 사람이 아니라 되려 시골 사람이라는 증거 아니냐.
여간해서 설득당하지 않는 내가 쉽게 넘어가버린 건, 그저 그 말에 내가 넘어가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모르는 것이 잘못이 아닌데도,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니까.
처음 가 보는 외국의 낯선 도시에서 길을 묻는 건 정작 난데. 내가 잡은 사람이 하필 길을 모르더라도, 인터넷까지 뒤져 최선을 다 해주는 모습이 난 서글프다. 좀 더 노력했어야 했을 나의 과거에게, 또 난 이리 성실하지 못했지 않나. 내가 만들지 않은 길이라 외면한다면 다시 외면당한다는 걸 알게 된 그 순간.
자, 겁먹지 말고 길을 묻도록 하자. 상대방도, 그리고 나 역시 당당히 모른다고 말해 주겠다. 시간의 틈이 있다면 기꺼이 함께 헤메 줄 생각도 있는 나에게.
방황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잡히는 횡단보도. 쌩쌩 리듬과 같이 달리는 차의 진동 앞에서 뻘쭘하게 모두가 신호만 애타게 기다리는 그 시간. 적당히 말을 걸기 좋은 그 멈춤에 나는 다시 붙들리고야 만다.
서울에 있다던 효창동을 모르는 나는, 부산에서 왔다던 노인의 딸이 참으로 복잡한 도시에 애 셋을 두고 얼마 전에 파란색 페인트로 방문을 칠하다가 미끄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미처 신호가 바뀌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