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들어, 이 구역의 가이드는 나야.
이미 그들에게 미슐랭 같은 단어는 더 이상 아무 의미도 갖지 못했다. 방금 나온 식사를 한 술 뜨고서, 고향의 맛을 찾으며 고수와 향신료를 빼기에 급급한 그 사람들은 영락없는 나의 가족이었다.
네 것 까지 끊었다.
엄마의 일방적인 통보에 어안이 벙벙했다. 상황을 정리해보자면 얼마 전에 흘리듯 말하던 가족 여행 이리라 짐작은 간다. 그러나 생각을 미처 조율할 시간도 없이 그 길로 나는 서울을 찾아 여권을 맡겼다. 통보를 받기 이전에 예정된 나의 인도행 비자를 위하여. 열흘 전쯤. 정확한 출국 날짜를 가족에게 통보한 아들에 대한 복수로써, 이 전화는 응당 적절한 카운터 펀치였다.
이 여행이 의외로 계획된 것임을 알게 된 건, 엄마의 말 때문이었다. 얼마나 열심히 약을 먹었는지 아니. 엄마는 높이 뜨는 비행기를 못 타니까. 엄마가 고도가 높은 비행기를 탈 수 없다는 걸, 무심한 아들은 그제야 알았지 싶다. 의사 선생님이 허락해 줄 만큼 체력을 기르기 위해 운동도 자주 하고 컨디션이 놀랍도록 좋아진 엄마는 분명 들떠있었다.
천식은 영어로 'asthma.'
비행기가 출발하기 전, 상공에서 혹시나 생길 문제를 대비해 부랴부랴 단어를 찾는다. 이 낯선 단어를 머리에 새기느라 중얼거리며 다른 좌석을 둘러본다. 우리 가족뿐만이 아니라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새벽 비행기가 귀찮았던 내가 미리 공항에 도착해 하룻밤을 보내고 꾀죄죄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해할 생각이 전혀 없는 친척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를 몰랐기에 나를 따라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졸지에 그렇게 여덟 명의 자리를 일렬로 받고, 나는 홀로 떨어져 앉는다. 다른 건 몰라도 여행에 있어 도가 튼 아들을 자랑하기에 여념이 없던 엄마는, 그렇게 우쭐하여 과감하게도 본인의 삶에 평생 해당되지 않을 듯했던 '자유여행'을 선택하고야 말았다.
나는 나와 어울리지 않는 이 한심한 여행을
좋은 추억으로 남기기 위하여 최선을 다했다.
그들은 끊임없이 나를 괴롭혔다. 한 명을 찾아오면 다른 한 명이 사라지기 일쑤였고, 가만히 길을 찾고 있을 때면 다른 방향의 표지판을 가리키며 서로 이쪽이라 왁왁거렸고, 모든 사람을 고려한 매운맛의 평균을 가늠하기 힘들었으며, 무엇보다도. 참 나를 함부로 대했다.
적게 먹는 우리 가족과 달리 엄청나게 먹어대는 친척들의 식성으로 순식간에 빠듯해진 경비와, 모두가 숙소에 들어가서 쉬는 동안 배 시간표를 알아보는 일 따위는 그저 웃으며 넘기려 노력한다. 모 방송에 나온 이서진 씨는 정말이지 힘들었겠구나 하며.
그러나 끼니 때마다 향신료 냄새에 영 먹지 못하겠다고 나에게 불평을 쏟을 땐, 참 울컥하고 말았다. 낮잠까지 챙기며 쉬는 혈육들을 뒤로 하고 열심히 정보를 긁어모아 찾은 식당에서 그렇게 돌아와 나는 엄마의 방을 찾아 소리를 지르고 만다.
이럴 거면 도대체 날 왜 데리고 왔어. 한식당이나 전전하는 패키지나 따라갈 것이지. 난 관광하고는 거리가 한참이나 멀다고. 이 사치스러운 도시를 혐오하며 화를 냈다.
엄마에게도 첫 해외였을 가족여행은 진절머리가 나기에 충분했다. 어제 먹은 식사의 반 값도 되지 않는 푼돈만 챙기고 나머지는 전부 아버지에게 넘겨버린 뒤 비싼 호텔을 나선다. 내가 이 도시 깊숙한 곳으로 풍덩 뛰어드는 동안 부디 알아서 하기를 바랐다. 어쩌면 나는 내 여행을 더 소중하게 여긴 것이 아닐까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부르는 죄책감을 외면하며.
자유는 고작 두 시간이었다.
우습게도 나는 엄마를, 아버지를 걱정했다. 다른 가족은 아랑곳없이 나에게 퍼붓던 괴롭힘을 아마도. 그나마 영어를 읽을 줄 아는 아버지에게 쏘고 있으리라는 생각에. 전화를 걸어보니 힘겨운 기색이 벌써부터 역력한 아버지는 용케도 선착장까지 왔다고 하여 강 건너에서 우린 다시 만났다. 더 이상 도망치지 않으려는 각오가 무색하게. 참 얌전해져서 우린 만났다.
언제 어디서나 갑질을 하고 타인을 무시하며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기죽지 않고 소리를 지르면 다 될 줄 아는 경우 없는 한국인이 내 가족은 아닐 것이라는 무의식적인 착각. 몸에 스민 습관은 결코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이 아니었다.
결국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칠 뻔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비행기 티켓에 적힌 출국 날짜를 멋대로 탑승구 번호로 판단하고 반대편 끝까지 가 있다니, 기다리는 여자도 없는데 참 드라마처럼 공항을 달렸다. 가족을 찾으러.
왜 이렇게 나를 괴롭히는거야. 난 돌아가자마자 다시 또 짐을 꾸려야 하는 사람인데. 도대체 왜.
가까스로 비행기를 타고도 씩씩대는 내 옆에서 엄마는 웃고 있었다. 기특한 아들 덕분에 편하게 구경했다고, 다시는 못 이렇게 함께 가지 못할지도 모르잖니. 그래도 또 한동안 못 볼 텐데, 이제 됐다며.
아들의 출타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엄마는 아들의 눈에만 보이는 엄마였다는 것을. 나는 몰랐다. 시도 때도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문화 때문에 그 매캐한 연기에 치명적인 엄마를 데리고서 들어갈 수 있는 곳은 없었고,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식당을 찾으려 한참을 더 헤매야했던. 그 성치 않은 몸으로 아버지에게, 또 아들에게도 온갖 구박을 받아도 이렇게나 스스로를 몰아붙인 적이 처음이어서 난 몰랐나 보다.
출국을 앞두고 이미그레이션 앞 검사대에서 영어를 모르는 엄마가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검사를 하는 남자가 묻는다. "asthma?" 천식 호흡기 환자가 가진 가스 압축식 약품이 주머니에서 나오고. 당황하여 땀을 뻘뻘 흘리는 엄마의 곁에서 외운 단어의 쓰임이 참 서글퍼져, 말했다.
"Yes, she have asth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