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람

이런해프닝.

by 박하


모텔촌이었다. 사랑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물고 빨고 껴안다가 동이 트면 바스러지는 짧은 사랑도 있는. 참 덧없는 공간이었다. 공간의 보편적 성격과는 달리 낮에도 번잡했다. 아님 전날 숙박하고 느지막이 일어났을 수도 있겠다. 하여튼 간에 뭐라도 먹어야겠는 사람들이 배달 주문을 했다.


그렇게 아침부터 들어온 주문은 가게와 배송지가 지척이어서 오토바이를 세워둔 뒤 걸어서 배달을 갈 정도였다. 오십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를 걸어 호텔이라 이름만 붙인 모텔에 들어갔다. 주인장은 배달원이면 엘리베이터를 쓰지 말라고 했고 계단은 모텔이란 이름조차 호화스러울 정도로 낡은 여관방 수준에 불과했다. 곰팡이로 눅눅한 벽지에 어두운 복도를 지나자 배달해야 할 호수가 눈에 들어왔다.


문지방 건너의 여성은 모조리 벗고 있었다. 당황했으나 당황하지 않은 척하며 고개를 떨궜다. 요즘엔 별별 사람이 다 있고 아무나 붙잡아 당황하는 모습을 촬영해 놀림감으로 만들 심산일지도 몰랐다. 지갑을 가지고 뒤따라 나온 남자 역시 헐벗고 있었는데 부끄러움의 결핍인지 자신감의 표현인지 난 도무지 알 방도가 없는 것이었다.


의도야 어찌 됐든 여자는 음식을 받아 들어갔고 남자는 계산을 했다. 나체의 남녀를 보고 내려오니 내가 그들의 비밀스러운 시간을 비집고 끼어드는 기분이라 찜찜했다. 그다지 끼어들고 싶지 않지만. 반대로 그들은 나를 대하는 것에 있어 거리낌이 없었다. 이거 가만 보니 무시당한 걸까. 텔레비전을 보다 보면 그런 장면이 나오지 않나. 으리으리한 궁전에 사는 주인이 정사 후 가운만 입고 앞섶도 가리지 않은 채 하인에게 먹을 것을 부르는 장면 같은 거. 단순히 아드레날린이 폭발하고 난 뒤라 별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고.


친구에게 이야길 했더니 거 좋은 구경 했네 하는 농이 돌아온다. 근데 정말 무슨 생각이었을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묻는 내게 "야, 그건 이해하거나 분류되는 사람이 아니야. 그걸 어떻게 알아? 그냥 이상한 사람인 거지."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의기소침해진 채 잊고 지냈다.


며칠 뒤 나는 그 기억이 다시 번뜩 스칠 수밖에 없는 일을 겪고야 만다. 한 오피스텔에서 시킨 양념치킨 때문이었다. 벌집처럼 꾸려진 오피스텔은 한 층에 30세대도 넘었고 번호를 따라 빙글빙글 돌아 찾은 집. 벨을 누르고 자연스레 시선이 바닥에 있었는데 문을 연 여자의 얼굴로 올라가기까지 온몸을 훑어버리고 만 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녀는 외국인이었다. 웃기게도 덜 말린 머리에 수건을 감느라 실오라기 하나 없이 나체가 된 모양이었다. 내가 치킨을 들고 얼어있으니 '웁스' 한 마디 내뱉고는 머리를 풀어 중요부위만 가린 뒤 가볍게 웃으며 치킨을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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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이런 해프닝은 어떤 정신머리여야 하는 거야?


정말 재미있는 건 내가 앞서 있던 일에 대해 냉소적인 반응을 보인 데 반해 외국인을 보면서는 저런 문화가 있던가 먼저 떠올린 거였다. 아주 사대주의에 찌들어 있구나? 친구가 들으면 놀릴 게 분명했다. 친구는 이야길 듣고선 "이거 이상한 놈이네."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이 어찌 너에게만 일어나냐는 거다. 나마저도 종종 있는데 다른 배달원들은 그냥 숨죽이며 지내는 거 아닐까. 그래도 예쁜 몸 보면 좋지 않냐? 허튼소리가 왜 안 나오나 했다.


배달을 하다 보면 중년의 남성이 속옷만 입고 사타구니에 손을 넣은 채 마중 나오는 일 따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완전한 야생의 몸을 마주한 건 위의 두 건뿐이다. 두 사건 모두 겪은 내 감정은 무엇보다 불쾌함이었다. 좀 더 근사치를 말하자면 그건 아마 불쾌한 골짜기 같은 게 아니었을까. '멋진 근육과 아름다운 몸매, 오 멋있어!' 건너 듣기로는 괜찮을 것만 같은 일이 실상 무척 거북한 감정부터 인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아 그냥 이상한 사람 만났네 하고 지나치면 되는데 그게 잘 안된다.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좋지 않아요 같은 지금의 뉘앙스를 기만이라 부르는 자 역시 있을 거다. 그러나 단언컨대 어떤 연결 하나 없이 만난 이가 느닷없이 자기 속살을 다 내보이는 건 설렘보다 불쾌함이 먼저 들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사실 그건 육체뿐만 아니라 감정 또한 마찬가지겠지만.


그러니 그저 웃고 말아야겠지. 이 이상한 세계에 서로의 이상함을 찾는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던데 그거 참 이상하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