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사하고 편한 자책

그는 살았을까.

by 박하


사고가 났다. 뒤에서 몸이 먼저 튀어 오르고 이어서 쇳덩어리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 누운 사람. 공덕 오거리 한복판에 사람이 크게 누웠다. 내 옆에 서 있던 오토바이였다. 분명 차로 맨 앞에서 나란히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는 내 옆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튕겨나갔다. 사람 몸이 그렇게 휠 수 있다는 걸 처음 봤다. 공덕 오거리는 일순간 멈췄다.


무슨 일인지 파악하기 위해 뒤를 보니 스포츠카 하나가 찌그러져 있었다. 그는 아마도 뒤쪽에 있다가 중앙선을 넘어 차로 맨 앞을 차지하려고 했었지 싶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속도를 올려 추월해 끼어들려고. 그러나 거기 오토바이가 있었는 줄은 몰랐을 거다. 뒤에서 보면 가로막은 차량들 때문에 작은 오토바이 하나쯤이야 쉬이 숨겨질 테니. 차주는 에이 시팔 하며 나와선 뒤통수를 긁었다.


날아간 배달원을 돌아보니 미동이 없었다. 살았을까. 차주는 담배를 꺼내 물었고 아무리 보아도 병원이나 경찰로 거는 전화 같지 않았다. 사고를 내고서 첫 통화의 태도가 저리 건성일 수 있는가. 얽혀서 좋을 것 없는 재벌 자제쯤 되거나 대단한 지위를 지니고 있을 수도 있지. 그러나 이 사고의 책임은 분명 당신 것이다. 기다리다 못한 차들이 뒤에서 클랙션을 울리기 시작했다. 누군가 하나 날아갔을지언정 각자의 삶은 멈추지 않고 구른다.


중앙차로에 있었기 때문에 난 뒤차가 지나갈 길을 비켜주고 잠시 정차했다. 이대로는 안 됐다. 그렇다고 어떻게 떨어졌을지 모를 피해자를 함부로 움직일 수도 없었다. 순서대로 구급대에 연락하고 경찰에 신고하고. 교통흐름을 막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이니 난 신촌 방향 길로 빠졌다. 그는 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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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는 언제나 잘못한 자의 몫으로 남겨져 있어야만 한다. 신호위반과 과속 역주행 등 배달원이 불법 운행하여 벌어진 사고는 자업자득이다. 나 역시 뉴스 기사를 보며 운전자의 트라우마는 어쩔 것인가 싶을 때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경우는 달랐다. 1미터도 떨어져 있던 사람이 용수철처럼 튕겨 나가는 모습이 각인되어 심장이 벌렁거리는 바람에 참을 수 없었다.


헛구역질이 일었다. 내가 잠시 정차한 그 틈에 지나가는 사람들 모두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창을 내려 구경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안부를 살피지도 않는 가해자. 쓰러진 피해자. 널브러진 커피와 빵. 아마도 그가 배달하는 음식이었을 이 제품들을 기다리는 사람들까지 순식간에 떠올랐다. 구급대가 반대 차선에서 사이렌을 울리며 지나갔다.


위치가 반대였다면 나에게 벌어졌을 일이라는 걸 깨달은 뒤로, 나는 이 일이 무서워졌다. 젊은 사람이었는데. 그가 배달일을 하기까지 나름의 절박함이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그에게도 날고 싶은 꿈이 있겠지만 그게 배달원으로서의 날갯짓은 아니었을 거다. 나의 잘못이 아닌 사유로 벌어질 수 있는 사고에 대해 고작 헬멧 하나는 너무 빈약하지 않은가. 갑작스레 죽음을 맞이하게 되면,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엎어진 음식물 사이에 눕고 싶은 사람은 없다. 그렇다 해서 지금의 생존욕이 피해자의 위안이 되진 않는다. 그는 살아있을까.


물통을 꺼내 들어 한 통을 모조리 비웠다. 냉기가 식도를 따라 몸으로 퍼지는 걸 느꼈다. 마음을 가다듬고 잠시 쉬다가 콜을 받았다. 클랙션을 울리며 지나치던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꼴에 환멸이 일었다. 내가 당장 사라져도 세상은 무심하게 돌아가니 위선 따위 부리지 말라고 하는 듯했다.


그 잠깐의 광기가 옮아 아무나 붙잡고 이런 일이 있었다 말하지 않으면 버틸 수 없었다. 위선이 아니라면 살 자신이 있었을까. 부디 그가 살아있었으면 좋겠다. 벼락이나 다름없잖아. 불가항력이잖아.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면 어쩜 위치가 뒤바뀌어 내가 당했을지도 모르는 사고에 남을 위로 따윈 없다. 치사하고 편한 자책을 한다. 난 아무것도 못했어. 그리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