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주르 식당

배달부의 식사시간

by 박하


홍대엔 유서 깊은 식당 하나가 있다. 여러 명의 룸메이트와 함께 살던 셰어하우스에서 지낼 적엔 워낙 사람이 많다 보니, 누구든 봉주르 식당 앞을 지나게 되면 입간판을 찍어 올리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입간판이라 함은 그날의 메뉴였다. 값은 3900원으로 동일하며 주말을 뺀 평일의 메뉴는 날마다 달랐다. 제육볶음이나 볶음밥, 김치찌개가 나오기도 하고 더러는 돈가스며 비빔밥까지. 주머니 형편을 생각하면 최고의 식당이었다.


배달을 하면서부터는 입간판을 찍는 게 내 몫이 되었다. 매일같이 앞을 지났고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로 이보다 나은 곳이 없었다. 도리어 배달일을 하기 전보다 더 자주 갔다. 왜였을까. 단순히 지출을 아낀다기엔 그리 심하게 궁하지도 않았다. 미술을 하는 학생이 많은 탓에 화방이 빽빽이 들어선 골목 사이로 있는 식당인데 어찌 매일같이 찾았는지. 봉주르, 아 그런데 미술 하면 프랑스인가?



비가 온 뒤의 습기 탓으로 조금은 지쳐있었다. 카레라이스가 나온 날이었고 난 배달원의 제스처 같은 게 제법 묻어났다. 헬멧을 벗으니 땀에 전 머리가 엉겨 붙었다. 봉주르 식당은 지하에 있었다. 언젠가 경양식 집을 하지 않았었나 싶은 내부에 살짝 컴컴한 조명이 사람을 편안하게 한다.


배달원의 식사는 불규칙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식사시간'에 맞춰 밥을 시킨다. 그럼 배달부는 자연스레 밥때를 피해 식사를 해야 한다. 지극히 단순하다. 그럼 밥때가 지나면 밥을 먹는가? 아니다. 밥을 먹은 사람들은 커피나 간식을 먹는다. 배달부는 고객들에게 후식까지 전부 날라다 주고 나서야 식사를 한다. 그럼 세 시가 훌쩍 넘는다. 이쯤 되면 점심이라고 할 수 없는 점심을 먹는다.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 그렇듯, 건강에 좋은 게 없다.


그래서 늦은 오후의 봉주르 식당엔 배달부가 많다. 친구들과 제대로 된 식사시간에 맞춰 왔을 때 보던 식당의 풍경과 사뭇 다른 침잠된 분위기의 식당. 각자 회사의 조끼를 입고 헬멧에 눌린, 그러니까 땀에 절은 머리칼들이 보인다. 자고로 이 식당은 평소에 헬멧으로 가려져 있는 배달원의 얼굴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어찌 됐든 이 정도까지 왔으면 난 배달부들이 왜 여기 몰리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가격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으니 제쳐두고라도 어째서 여길 선택하는지. 배달부라는 직업의 특성상 맛집이라면 기가 막히게 안다. 청결하고 손님 많고 더불어 가격까지 저렴한. 그중에서도 하필 왜 봉주르 식당인가. 여긴 배달도 하지 않는 곳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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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신이 터지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났을 때 깨달았다. 늦게 알아챈 감이 있는데 왜 그렇냐면 나는 통신 불량이 내 휴대폰만의 문제인 줄 알았다. 통신사별로 잘 되는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있기 마련이니까. 식당에서 달아놓은 와이파이는 장식에 불과해서 안되다시피 하고 결국엔 음악도 틀어놓지 않은 지하식당에 앉아 음식에 집중한 뒤 떠나는 거다. 처음에는 사장님의 장사 수완인 줄로만 알았다. 가격이 저렴하니 회전율이라도 늘려야 한다는 건, 성인이라면 누구나 다 짐작할만한 이유가 되니까.


나는 전속 배달부가 되기에 모자라서 그러지 않았으나 프로들은 죄다 휴대폰을 서너 개씩 달고 다녔다. 어떤 누구는 휴대폰이 줄줄이 달린 충전식 철판을 통째로 들고 다니기도 했다. 업계 용어로 전투 콜이란 거다. 선착순이라는 말로 정리하기에 모호한, 동네와 동선과 품목의 조리시간까지 복합적 계산이 끝난 뒤 먼저 콜을 잡는 것. 그 계산이 3초 이내로 완료되는 것. 물론 숙련자는 그보다 더 빠르기도 하다. 그러나 이곳 봉주르 식당에서는 불가능한 것. 되긴 되지만 엄청나게 느린 통신은 결국 콜을 잡기에 역부족이란 말과 같다. 이른바 중립지대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매일같이 같은 식당을 갈 수는 없기에 다른 식당을 가보면 종종 눈에 확 띄는 배달부를 만난다. 주먹밥, 혹은 분식류를 파는 곳에서 음식을 허겁지겁 밀어 넣고는 휴대폰만 죽어라 바라보는 일상. 이 순간에도 한 건 정도를 더 하면 버는 숫자가 당최 어디로 도달하는 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버는 것이다.


숫자가 불어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넋을 잃는다. 중독이다. 사람이 돈에 불타올라 미쳐버리는 심리를 알고 있는지 회사는 휴대폰 가장 상단에 오늘 일당을 합산해 큼지막한 글씨로 박아둔다. 조급함이 따라오고 식사마저 거른다. 그러면 안된다는 걸 빨리 깨달을수록 이 세계에 결박되는 일이 없다. 결국 먹고사는 일 아닌가.


여기 봉주르 식당에 모인 배달부들은 각자의 음식을 앞에 두고 수저를 뜬다. 되지 않는 휴대폰을 보는 일도, 띠링띠링 울리는 알림 소리도 없다. 이 모든 게 생의 의지에 반하는 일인 것 같아서, 식사시간만큼은 그들도 나도 치열한 삶에서 잠시나마 비켜날 수 있어야만 했다. 버티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