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이 없어

똥 마려운 자에게만큼은 관대한.

by 박하


병장님, 화장실 좀 다녀와도 되겠습니까?


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일개 일병 나부랭이가 아침 점호가 5분도 남지 않은 시점에 화장실을 가겠다는 말을 곱게 들어줄 병장은 없다. 그 말은 곧 점호에 늦겠다는 말이다. 하물며 곱게 이해할 당직사관도 없다. 초반엔 그런 반응은 아니었다. 생리적인 이유에 어떤 변명이 필요한가라는 개인적인 아량이었다. 그래 똥 마렵다는데 체조하다가 싸게 만들 거냐 사관에게 한소리 듣고 말지 뭐. 그러나 내가 제공한 몇 번의 호의는 단 한 차례도 거르지 않는 녀석의 모닝 똥으로 귀결됐다.


일병의 아침은 병장의 아침과 많이 다르다. 기상나팔에 맞춰 불을 켜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이병들 대신 선임들의 침상을 도맡아 개고, 텔레비전을 켜서 그날 아침 날씨에 걸맞은 걸그룹의 노래를 골라 튼다. 그런 부조리가 당연시되어있는 시대였다. 전투복까지 입혀줘야만 하는 옆자리 선임 말년들과 달리 난 그런 생떼를 부리고 싶지 않았기에 스스로 하는 편이었으나, 짧고 분주한 아침시간 속 일병의 모닝 똥까지 챙겨줄 의향은 없었다.


당직사관을 차치하고서라도 그 일병에게만 화장실의 여유를 허락하는 건 뭇 선임들에게 눈총을 받기 마련이었다. 점호 3분 전에 모포에서 나올지언정 화장실로 사라진 후임을 찾아내는 게 말년이었다. 말년이라는 시어머니를 안고 있는 분대장으로서 나는 시달림에 지쳐 말했다. 아침에 화장실 가지 마.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면 차라리 점호 전에 일어나서 다녀와. 동기들 바쁜데 너만 빼주는 거 말년들은 곱게 안 봐. 쟤네한테 빌미를 주지 마. 똥도 참거나 미뤄. 아니 그보다 꼭 아침에만 싸야 하는 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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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을 할 때 늦게 되면 지연사유를 고를 수 있었다. 5분 단위로 최대 15분의 연장이 가능했는데 그나마 고를 지연사유는 두 가지였다. 조리 지연 혹은 교통체증. 그럼 화장실은? 아무도 허락해주지 않는 생리현상은 눈치껏 해결해야만 한다는 말이다.


이상한 이야기인데 똥 참기는 내 자랑이었다. 선임들에게 이쁨을 받기에 좋은 기술이었다. 과민성 대장을 가진 동기들이 화장실에 가 있을 적마다 나는 할 일을 마치고 틈틈이 화장실을 갔다. 그렇지만 사람은 언제까지고 튼튼한 장을 지닌 채 살 수 없다. 배달부는 길에서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생리현상을 해결하기 위하여 아무 가게에 들러 뭐라도 시키기엔 난처하다. 식당에서 조리를 기다리며 화장실을 한 번 써도 되겠느냐 부탁하는 게 보통이고 당연하지만 고객 집에 도착해 화장실을 요청하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하루는 무얼 잘못 먹었나 탈이 나서 종일 고생하고 있었고 좀 괜찮아졌나 싶어 저녁 일을 나선 참이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온 건 음식을 픽업하여 배송지로 이동 중일 때였다. 장에서도 뭔가 밀려오고 있었다. 하루 종일 시트에 엉덩이를 붙이고 다니면 땀이 찬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당장에 화장실을 찾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을 기분. 누구나 한 번쯤 겪어보았을 기분.


식어버릴 음식에 대하여 고민하기 전에 열린 화장실이 어디 있는가 고민해야 했다. 지하철역이며 관공서가 떠올랐지만 시간이 늦은 데다 멀찍이 있는 곳까지 걸어갈 자신이 없었다. 큰 건물 1층에 보통 화장실이 있었지. 상가가 딸린 오피스텔 건물에 들어서니 경비원이 있다. "저기.. 제가 화장실이 너무 급해서요.." 경비원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화장실을 가리켰다.


무사히 배달을 마치고 나서 난 곧장 퇴근했다. 화장실이라는 지연사유가 없는 탓에 교통체증 5분 추가를 이용해야 했으나 하늘도 고객도 나의 사정을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속이 좋지 않은 상태를 인정하며 집에 오는 길에도 생리현상은 날 기다려주지 않아 낯선 상가 건물을 두 번이나 더 찾아야 했다. 새삼 공중 화장실에 대해 감격했다. 아 이 세상은 아직 낯선 사람의 인간성을 망치지 않게 돕는구나. 어디선가 몰래카메라 같은 미친 일이 일어나지만 낯선 사람에게 화장실을 내어주는 사회는 유지되어야 한다고.



이 사건을 겪고 난 뒤 나는 어째서 해외에 배달 문화가 발전하지 않았는지에 대하여 말할 수 있게 됐다. 이건 분명 공중화장실의 유무 때문이다. 공중 화장실이라는 게 없다시피 한 나라들을 갔을 때 난감한 우리를 보라. 엉덩이를 꽉 붙잡고 화장실을 찾는 사람에게 일단 화장실 키를 줄 정도로 우린 아직 똥 마려운 자에게 관대하니까. 이런 비약을 할 만큼 나에게 그날은 다급했다.


아침 화장실 금지 선언을 들은 모닝 똥 일병의 표정이 떠오른다. 난 분명 그 후임에게 미움을 샀을 것이다. 똥 싸는 타이밍조차 조절해야 한다는 선임의 말이 얼마나 야박해 보였을까. 똥도 마음대로 못 싸게 합니다 라며 마음의 편지라도 적었다면 나는 군대에서 보름을 더 지내야 했을지 모른다.


마렵지 않은 사람은 마려운 사람의 다급함을 영영 모를 테지만 우리는 서로가 마려웠던 때를 기억하며 화장실을 얼른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점호 따위가 다 뭔가. 똥 냄새 잔뜩 묻은 것 같은 글을 빌어 모닝 똥 후임에게 사과를 하고 싶다. 넌 아무래도 배달일은 못 할 거 같아. 근데 꼭 아침에만 싸야 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