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지향의 세계

원래 하던 일

by 박하


아침 아홉 시였다. 나중엔 피크타임에 바짝 열정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땐 모를 시절이어서 그저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콜이 우수수 떨어질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웬걸, 아침엔 콜이 적고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배달원들이 잔뜩이라 한 시간 가량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을 때도 있었다. 위치고 거리고 간에 뭐라도 잡는 게 나을 지경이었다. 올라오자마자 클릭한 배달지는 홍대의 가장 중심가였다.


도깨비?


난생처음 간 클럽이었다. 젊은 날 클럽이라는 공간을 단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는 게 부끄럽진 않다. 그러나 어떤 부류의 공간이라는 건 나름대로 규칙이 있고 흐르는 시간이 있으며 그에 걸맞은 때가 있다 느끼는 바, 한 번쯤 가보았어야 했다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살다 보니 어쩌다 이렇게 오긴 왔지 않은가.


그러나 내가 간 클럽은 클럽이라기보다 거대한 소극장 무대라던가 혹은 파리에서 보던 라이브 카페의 느낌이 더 컸다. 그도 그럴게 아주 대낮처럼 밝았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더 적자면 아침 아홉 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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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회사들의 배달이 시작되는 시간, 대부분의 직장인이 출근한 시간, 하루를 본격적으로 준비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에는 단연코 브런치나 커피 주문이 가득이다. 나는 양 손에 그득 들린 커피가 쏟아지지 않도록 애썼다. 정말 애를 썼다. 입구부터 새카만 계단과 닫힌 문까지 하나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마침 내부에서 직원이 나왔기에 망정이지 마지막 계단을 헛디뎠다면 대참사였을 거다.


안쪽까지 부탁드린다는 말과 함께 직원을 따라 들어갔다. 안쪽에는 철계단이 하나 더 있었고 아래 있는 사람들의 머리칼은 형형색색으로 빛났다. 이제 보니 날 안내한 직원도 만만치 않다. 피어싱은 기본이고 반지와 목걸이, 몸에 붙은 쇠붙이만 봐도 무거울 지경이다.


공사 중인 것 같았다. 잘은 모르지만 콘셉트를 바꾸려고 하는 건지 조명을 이리저리 옮기고 인부 몇 명은 무대 높이를 조절하는 모양이었다. 안내한 직원은 테이블 하나를 가리키더니 커피를 놓고 가시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한 남자가 날 붙잡았다. 바쁘세요? 아뇨 아침이라 바쁘진 않아요. 그럼 잠깐만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클럽은 순수 목적지향의 세계다. 춤을 즐기는 사람, 음악을 즐기는 사람, 술을 즐기는 사람, 원나잇을 바라는 사람, 아니면 그 모두가 목적인 사람. 유희나 쾌락으로 점철되어있긴 하지만 클럽에 가겠다는 건 오늘은 보통보다 흐트러지겠다는 말과도 비슷하게 들린다. 그런 곳에 있다는 게 영 어색하고 낯설어서 쭈뼛거렸다.


남자는 날더러 그냥 무대 가운데 서 있으면 된다고 했다. 나의 옷차림이 제법 반짝이니까 이런저런 조명을 틀어보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어떤가 확인해보겠다는 심산이었다. 날 향한 조명이 어지럽게 흔들릴 때마다 헬멧이며 조끼며 덩달아 빛을 튕겼다. 나는 가만히 있어도 춤을 추는 기분이었다.


원래 어떤 일 하세요?


'원래'라고 하면 배달부의 내 차림이 어울리지 않는 건지 혹은 배달부가 원래의 어떤 일은 영영 되지 않는가 하는 건지 헷갈린다. '원래 하던 일은 클럽에 전혀 올 일이 없는 일이죠.' 답하고 싶었지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좀 움직여보실래요? 남자의 질문은 그러니까 가만히 서 있지 말란 거였다. 춤에 종사하는 사람까진 아니더라도 너무 딱딱한 일생이 아니었다면 몸 좀 흔들어보란 말이었다. 무대를 한 바퀴 걸어보고 흔들흔들 팔과 다리를 제멋대로 움직였다. 헬멧을 쓰고 터번까지 쓰고 있는 게 참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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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지갑에서 만원을 꺼내 건넸다. 검지와 중지 사이에 지폐를 끼워서. 나는 양손을 모두 내밀어 돈을 받았다. 담배를 물고 있길래 나도 피우고 가도 되겠느냐 물었다. 그는 잠깐 놀란 눈이 되더니 그러라고 했다. 클럽이 실내 흡연이 되는지 안되는지 따위는 알 길이 없고, 엔도르핀인지 아드레날린인지 뭔가 나오는 거 같기도 했다.


원래 어떤 일 하세요? 남자는 거듭 물었다. 돈벌이로는 사진을 했었고 삶의 대부분은 여행을 했고 하고 싶은 일은 글쓰기인데 내가 '원래'라고 규정할 일이 뭔지 난처했다. 가려져 있던 얼굴 아래로 수염이 가득 있어서 물었노라고 그는 덧붙였다. 겉모습은 특이할수록 괜히 특별한 일을 할 거 같으니까. 내가 여기 있는 사람들을 보고 느낀 것처럼. 나는 세 가지를 전부 말했다. 클럽이 난생처음이라고도.


바깥은 열 시도 채 되지 않았다. 아침이었다. 교통버스가 이제야 숨을 돌린 듯 쉬엄쉬엄 다녔다. 전파가 잘 터지지 않는 지하에서 탈출하고 나서도 콜은 마땅히 없었다. 내 눈에는 무엇이 남는지 알 수 없는 공간이었다. 사라지는 것들이 아름답다지만. 목적지향에 충실한 사람이 물어오는 내 삶의 목적이 도리어 희미했다. 그에겐 매일 밤이, 다가오는 아침이 의미가 있을까. 눈이 부셔서 잠깐 쉬다가 받은 명함을 구겨서 버렸다. 한 번 놀러 오라고 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 끼워져 건네받았던 명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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