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와 4분의 3 반지하
"계세요?"
대문 너머로 던지는 말이다. 답이 되돌아오면 다행이고 아닐 때가 더 많아서 나는 들어가지 못하는 대문 앞에 서서 늘 말을 던진다. 옛날 집에는 초인종 없는 철문이 많다. 집을 여러 갈래로 쪼개 칸칸이 사는 집도 있고 대문 너머 단독 주택을 홀로 영위하는 사람도 있다. 나 같은 신참에게 도로명주소는 확실히 획기적이다. 그러나 지금 여긴 이상하다. 고객은 번지수와 번지수 사이에 서서 기다려 달라고 했다. 전화를 하니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쪽문에서 사람이 나왔다.
철문 뒤로 언뜻 보이는 공간을 살피니 곧바로 계단이 있다. 지하로 이어지는 통로를 따라 늘어진 문이 보인다. 집이 여러 개 박혀 있다는 것보다 놀라운 건, 생필품이 이 좁은 철문을 어찌 지나가냐는 거다. 음식을 건네고도 찜찜한 마음이 가시질 않았다. 모름지기 사람이 거주하기 위해서 지녀야 할 기본적인 가구와 침대, 테이블 등 사실 그 모든 게 필요 없다 하여도 화장실 변기마저 옮기기 어려웠을 작은 문은 그저 창살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필요에 따라 많은 현관을 지나지만 보면 볼수록 함부로 보통의 기준을 잡기가 어려워졌다. 좋은 집은 더 웅장하고 더 으리으리한 세계가 있지만 어느 정도 상한선이 구축되어 있는데 반해, 좁은 집은 하한선이 보이지 않는 데다 밑도 끝도 없어 늘 새롭고 더 놀라운 세계를 만나게 되는 탓이다.
여관에 조촐한 살림을 담은 달셋방부터 바퀴벌레가 먼저 마중 나오는 밀림 같은 고시원, 심지어는 주차장 한 칸을 임시 가벽으로 막아 사는 집까지 봤다. 마지막의 경우엔 현관 비밀번호가 있나 찾던 와중에 '저기요.. 이쪽이에요.' 하는 소리로 소스라치게 놀라 음식을 엎을 뻔했다. 작은 창문 안쪽을 보니 확실히 사람이 사는 곳이었고, 집이라 짐작조차 못했으니 확실히 사람이 살 만한 곳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동교동 언덕길에 사는 친구들 말을 빌리자면 자기 집 골목으로 빼곡한 집들이 달동네스럽다 한들 사람이 살만한 형태인데, 차라리 언덕을 오르면 올랐지 이딴 집에서는 못 산다 하는 집을 너무 많이 봐왔다는 거다. 그런 집을 보니 나도 화가 치민다. 사람은 환경에 지배받는 동물이라 믿기 때문에 주거의 기본이 갖춰지지 못한 건축물을 으스대며 파는 꼴을 봐줄 수가 없었다. 건축법이니 뭐니 이래저래 알아보다 '그런데 거기 사는 사람들은?' 하는 의문이 섬찟해 관뒀다.
대부분의 거주자가 천정부지인 집값 탓에 지내는 것일 텐데 내몰릴 것을 뻔히 알면서도 고발할 자신은 없었다. 어떤 친구가 나의 목격담에 대해 '그들이 가난과 합의한 것이 아니냐.'라고 물어오자 나는 '가난을 볼모로 잡는' 집주인들이 문제라고 대꾸했다. 그만큼 신경질이 일었다. 난 좋은 집보다 좁은 집을 더 자주 갔으니까.
주거의 질과 생활수준을 연계 짓자면 배달음식은 당연히 좋은 집보단 좁은 집으로 더 자주 향한다. 주거와 생활은 식사의 질까지 좌우하기 때문이다. 물론 배달음식에 있어서도 요리의 질이 나뉘어 있으나 대개 값이 싸고 칼로리가 높은 음식들이 주를 이룬다. 칼로리를 채우는 것만으로 가격과 편리는 자본주의의 사회적 취지에 부합한다. 하지만 거기 건강은 없다. 누구나 중요성을 알지만 강요할 수 없고 누군가 챙겨주지 않는 게 건강이라서. 인간은 가난과 동시에 건강을 저당 잡힌다.
나에게 더 친절한 사람인가 아닌가를 판단하며 인성을 판가름 짓는 기준으로 집을 보고 싶진 않았다. 현관에서 마주치는 그 짧은 시간에 뭘 판단하고자시고 할 짬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쁜 사람은 어딜 사나 나쁜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어딜 살아도 좋은 사람일 테니. 그리고 때에 따라 나쁘기도 하고 좋기도 한 게 사람 아닌가.
어떤 각오도 없이 방문한 집의 형태에 충격을 받을 적마다 난 내가 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처절함을 보는 게 괴로웠다. 훗날 이 감정은 배달일을 관두는 근본적 계기가 되었으나 당장은 아니었다.
이 일을 하며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문장의 거기와 거기가 내겐 이루 말할 수 없이 넓은 영역이 되었고,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라는 문장의 똑같음은 결코 똑같을 수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러나 다 지나고 보니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봤던 게 아닐까. 어디 살건, 어떻게 살건 사람들은 내가 들고 온 음식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저마다 고른 맛있는 식사를 고대하며 집을 공개한 사람들이 공평하게 배달을 누리는 것. 나는 차별 없이 따뜻한 음식을 나르기만 하면 된다. 난 진실로부터 도망갈 수 밖에 없다. 이건 그런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