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왕국

대단한 사람들

by 박하


아파트 입구는 찾을 수가 없었다. 입구조차 찾을 수 없는 아파트가 있다니 믿기는가. 그런데 있다. 지하주차장이 있다면 사람이 산다는 이야기인데 걸어 들어갈 입구가 없다니. 여기 사는 사람들은 모조리 차가 있다는 전제로 사는 걸까. 결국 지하주차장으로 들어가 별도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다. 집주인과 가까스로 통화하여 올라갔는데 엘리베이터가 이중 삼중으로 갈아타도록 되어있다. 올라가려니 전용키가 없으면 불가능하고 도로 내려갈래도 키가 없으면 작동하지 않는다. 난 그들만 누릴 수 있는 공중정원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여긴 도대체 뭔가.


신고버튼을 이용해 경비원과 무전을 거치고 한참 뒤 날 데리러 온 경비원의 체포 같은 보호를 따라 내려간다. 배달은 실패했다. 실패했다니 우스운 이야기지만 실패한 게 맞다. 배송시간도 이미 늦었고 고객센터의 연락과 함께 폐기, 환불 수순을 거쳐 빠르게 처리됐다. 경비원은 그냥 가라고만 했다. 이 성은 도대체 뭘까. 거대한 건물을 휘감으며 마련된 지하층과 1층 2층까지. 상가 가운데는 뻥 뚫려있다. 그러나 내가 들어갔던 공중의 정원은 모든 곳이 내려다보였으나 아래에서 보이지 않았다. 검색해보아도 정보가 없고 비록 공중의 정원뿐이지만 외부인으로는 아마 최초의 침입자가 아니었을까.


나는 그곳에 몇 번이나 다시 가게 되었다. 악에 받쳐 삼십 분을 써서 입구를 찾았다. 지하 1층 상가 사이로 눈에 띄지 않게 마련된 입구. 구불구불 지나가면 호텔리어 같은 경비원이 날 붙잡는다. 신상정보를 적는다. 이름과 나이, 주소, 번호까지. 그럼 경비원은 해당 호수의 고객에게 무전기로 연락한다. 배달을 시킨 게 맞냐고. 확인이 되면 경비원이 직접 나를 인도한다. 자연스레 엘리베이터 앞에 섰더니 그쪽이 아니란다. 비상구를 열고 가리킨 곳에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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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파트에 사는 고객들은 하나같이 연락이 닿질 않는다. 나중에 다른 배달부에게 들었지만 아는 사람만 갈 수 있고, 그래서 아무도 가지 않는 아파트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니까. 오토바이는 들어갈 자리가 없어 합정역 인근에 대놓아야 하고 상가 가장 안쪽까지 뛰어야 입구가 나오고. 거기다 경비원까지 거치다 보면 이미 시간은 지날 대로 지나버리니.


제 신상정보는 왜 캐물어요? 승강기는 왜 화물이에요? 고객은 왜 전화를 안 받고 무전만 받아요? 묻고 싶은 게 태산인데 알려줄 턱이 있나. 다섯 번의 배달 중 두 번의 연예인을 직접 만났고 아마 나머지 세 번도 대단한 집일 텐데 그냥 살림을 도와주시는 가정부지 싶었다. 그 아파트가 얼마나 근사하든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살건 간에 시켜먹는 건 떡볶이 따위로 매한가지다. 이건 공평한 거냐 불공평한 거냐. 금박 장식이 화려한 엘리베이터를 지나 비상구를 연다. 박스가 너저분하게 깔린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다시 탄다. 이건 인도적이냐 비인도적이냐.


익숙하면 빨라질까 싶었는데 전혀 아니었다. 오토바이를 가장 가까이 댈 수 있는 곳은 2층이라 지하로 돌아내려가야만 하고 지하에 대자니 너무 멀리 떨어진 주차장이 한참 걷게 만든다. 적으로부터의 공격을 막고자 한다면 성공이다. 머리를 기가 막히게 쓰는 사람이 건축한 게 틀림없다. 결국 다른 배달부들의 말대로 나는 그곳의 배달을 포기했다. 어쩌다 상세주소를 제대로 못 보고 콜을 받으면 곧바로 취소를 요청했다. 난 가지 않겠노라고. 회사는 이유를 물었고 화물용 엘리베이터의 사진을 찍어 회사에 보냈더니 군말 없이 취소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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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직업을 체험하는 유튜브 채널에 그 아파트가 등장했다. 출연자는 나보다 덜 헤맸으나 배달의 불편함을 지적했다. 아마도 헤매는 부분은 편집되어 저 정도지 싶었다. 촬영팀이 따라붙으니 그런가 몰라도 그는 화물용이 아닌 일반 엘리베이터로 안내되었고 비로소 배달을 끝마쳤다. 해당 아파트는 한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릴 정도로 화제가 되었다. 댓글로는 아마도 배달일을 해봤을 누군가가 화물용 엘리베이터의 진실을 고발했고 사실 유무까지 밝혀져 더욱 불타올랐다. 거주자의 안전을 이유로 방문자의 불편을 지나치게 강요한다면 배달을 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거였다. 분노한 사람들은 대체로 같은 의견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살길래.


한참이 지나 아파트가 다른 이슈로 문제가 되었을 때, 나는 어떻게 저런 합의가 되었는가 아찔했다. 상대적 저층에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조금 더 집값이 낮은 저층에는 비상계단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다. 그나마 대단한 자들이 모였다고 생각되는 아파트에서도 자기들끼리 급을 나누는 행태가 어처구니없었다. 그래 당신들만을 위한 공중정원에 들어갔을 때, 올려다볼 수 없고 내려다볼 수만 있게 만든 공간에 들어갔을 때 이건 언젠가 적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참이나 품었다.


누가 사는가? 나는 거기에 대답할 수 있다.

대단한 사람들이 산다. 먹는 게 똑같은 대단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