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이기는 방법.
봉긋 솟아 나온 언덕 너머로 거세게 달려오는 차를 볼 수 있을까. 나는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부딪히고 말았다. 급감하는 것으로는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 짧은 순간 상대차의 제동력을 믿을 수밖에 없는 아찔함. 우리는 서로가 가까스로 멈췄다. 바퀴와 바퀴가 맞닿은 채로.
덩치가 황소 같기로 유명한 외제차에서 아주머니가 내렸다. 나는 이미 사고를 예상하고 영혼은 이미 먼저 날아가버렸지만 행여 과실이 있을까 걱정해야 했다. 휠이라도 긁혔으면 내가 물어야 할 돈이 훨씬 많을 테니까. 제한속도가 30킬로미터인 곳에서 과속으로 들이민 것이야 블랙박스도 없는 내 오토바이가 증명할 방법이 있나. 골치 아플 일에 휘말린 것이 어질어질했다.
아주머니는 혀를 쯧 차더니 내리자마자 바퀴를 바라보며 휠을 쓱 훑고는 차가 다친데 없는지 살폈다. 나는 헬멧을 쓰고 우물쭈물하고 있었다. 사실 내가 잘못한 건 없는데. 좌회전 신호를 잘 받아서 넘어가고 있었는데. 변명이 먼저 뒤따랐다.
"저.. 바퀴랑 바퀴만 부딪혔어요." 혼나는 학생처럼 말했다. "바퀴벌레 같은 게." 아주머니는 차를 타고 그대로 가 버렸다. 사실만 따지면 지금 우리 사이에 사고라 부를 것은 없었다. 긁힌 것도 없고 바퀴끼리 부딪혀 터지는 것도 아니고. 어쩌다 내가 넘어져서 다치기라도 했으면, 도리어 과실은 그 아주머니의 몫이었을 텐데 말이다.
다시 생각해봐도 나는 좌회전 신호를 잘 받아 넘어갔다. 반대편 차선에서 언덕으로 질주한 그 아주머니는 아마도 빨간불로 바뀌기 전에 신호를 받으려고 속도를 높였겠지. 내가 예측 출발 따위의 허튼짓을 했다면 멀리멀리 날아갔겠지. 속상한 건 하찮은 내 모습이었다. 그래 난 잘못한 게 없는데 말이야.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고 편의점에 들러 찬 물을 사 벌컥벌컥 마셨다. '잘 된 거야, 사고가 나지 않은 게.'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위험수당은 결코 목숨 값을 넘어서는 일이 없으니까.
'바퀴벌레 같은 게.'라는 말이 그날 내내 맴도는 동안, 나의 일은 남들이 보기에 바퀴벌레 같은 것인가 생각해봤다. 바퀴벌레는 인간보다 오래 지구에 존재했고 만약 형태가 고양이의 귀여움과 같았다면 예쁨까지 받는 삶이었을 텐데.
사람이 사람을 무시하는 데에도 정도가 있다면 아주머니의 말은 너무 심했다. 배달 한 번 시켜보지 않은 고귀한 삶이었을까 상상하면 그 아주머니도 자유롭지 않으리라. 만일 그렇다면 그녀는 아주 특별한 존재이며 난 싸인까지 부탁했을 거다. 여태 한 번도 배달을 시키지 않으셨다니요!
그래서 사람은 정말이지 어렵다. 예상에 없는 말을 들을 적마다 나는 보기가 없는 수학 문제를 푸는 기분이 든다. 그 때문에 때로 서럽고 억울한 말들의 바다에서 헤어 나올 수 없어 침몰하는 존재다. 잘못에 대해 시비를 가리는 것만큼이나 글은 쉽고 오래 남아서 사람들은 말을 글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데, 기분은 쉬이 휘발되거나 곪아버리는 게 참 불공평하다.
지지부진하고 고루할 싸움을 조기에 진화했다는 점에서 나는 참아내는 것으로 현명한 선택을 한 걸까. 피곤한 일에 휘말리는 것이 더 싫어지면 정말 바퀴벌레가 될까 봐 염려했던 숱한 지난 나날이 이제는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이게 진짜 이기는 방법'이라 변명하는 오늘이 됐다. 바퀴벌레 같은 게 오래 살아남는 종족을 일컫는다면 난 인정받은 게 아닌가.
난 이 짧은 글을 세 군데에 걸쳐 적었다. 공교롭게도 세 장소 모두에서 나는 교통사고를 봤다. 이상한 우연이다. 그러나 우연은 이상하게도 우리 삶에 빈번하게 벌어진다. 최근에 인터넷에서는 운전 중 사고가 날 뻔한 상황의 블랙박스 촬영본을 보았고 잘못한 자와 화가 난 촬영자가 서로 사과하며 사건이 일단락된다. 사람들은 훈훈한 결말이라 감상을 치하했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세 건의 사고는 모두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블랙박스의 일이 보통이 아니게 되어서 훈훈하다는 특별함에 분류되었다면 요즘 그 보통의 상황은 훈훈함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서툰 인내심은 늘 훈련 없이 과격하게 시험받는다.
바퀴와 바퀴가 맞물렸을 때 난 바퀴라 불렸다. 사회적 인간으로 올바른 톱니바퀴인지 생존 주의에 여념 없는 바퀴벌레였는지 알 수 없지만 내가 바퀴인 세상이라면 상대도 바퀴가 된다. 그녀의 생각은 물어보지 않았으나 난 내 행복을 위해 전자의 경우만 생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