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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Nov 02. 2022

서로에게 잠시 신이었을

선한 자들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프로미스타에서 발목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추위를 견디며 발목을 찬 물에 담그고 있을 때, 처음 본 친구들이 발목에 좋다는 크림을 순서대로 들고 왔을 때. 나는 어이가 없어 웃고 말았다. 혼자서 다 쓸 수도 없을 크림의 양을 보고서 난 하나면 충분하니 나와 비슷하게 달리 아픈 사람들을 만나거든 그들에게 전달해달라는 말을 하며 보냈다. 지금 이 길 위에서 모두의 신분은 동일했다. ‘순례자‘


    새벽부터 출발하는 루틴을 따르다 보니 눈은 저절로 떠졌지만 제각기 다른 속도로 하루를 시작하는 친구들을 먼저 보내며 마음이 쓰라렸다. 내가 부주의하지 않았다면 저 좋은 친구들과 내일도 같은 숙소에 머물며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을지 몰라. 좋은 사람과 좋은 시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은, 어째서 위기의 순간에 알게 되는가, 그렇다면 시련이 있어야만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가, 위기란 선의를 발견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선한 자들은 언제나 곁에 있었다. 위기로 인해 더 쉽게 드러날 뿐이지. 조용히 선한 사람들이.



    레온으로 넘어가 며칠을 더 쉬어야만 했다. 알베르게 주인아주머니가 불같이 화를 내며 발목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왜 내버려 뒀냐고 혼쭐이 났다. 냉동실에서 아이스팩을 꺼내 새벽 세 시쯤, 자신의 잠을 버리고 내 발목에 감아두고 가는 것을 나는 자는 척 봤다. 부끄러웠다. 고맙다고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말이다. 난 왜 고마워하지 못할까. 당연하다 생각한 것도 아니고 잘못한 것도 아닌데 고맙다기보다는 미안한 마음이 너무나 커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걸.


    길을 걷는 사람들은 동지애가 있다. 너무도 고단한 하루의 끝이라 코골이만 들려도 예민하게 굴지만 아파하는 모습을 결코 내버려 두지 않았다. 나는 유독 배를 곪는 사람을 가만둘 수가 없었다. ‘밥은 먹었니?’가 인사인 나라에서 태어났으니 아무리 부정하려 한들 작디작은 조각이라도 떼어 둘을 만들고, 그 둘은 다시 둘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로 가는 모습에 감격한다. 물이 없고 빵이 없는데 쓸모없이 돈만 있는 상황이 삶에 닥치는 일은 잦지 않다. 마주 오는 사람, 뒤따라 오는 사람이 당연하게 먹을 걸 건네는 손길.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방법을 건넨다.


    신을 찾는 사람들이 자주 있었다. 신은 뭘까. 산티아고로 걷는 길이 신의 은총을 깨닫는 길이라 생각한다면 크나큰 착각이다. 신을 믿는다면, 이 게으른 신이 도대체 뭘 하는 건지 발목을 으스러뜨리고 비와 눈을 뿌리고 태양을 삼키면서 어째서 날 돕지 않는가 원망하게 될 뿐이다. 그저 인간의 도움을 보라. 넘어진 사람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는 그 순간을 보라. 내가 일으켜 세워졌던 순간들처럼, 혹은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고 있는 스스로를 본다면. 이름도 기억나지 않고 얼굴마저 흐릿한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를 돕고 홀연히 사라지는 지금에 와서야 이윽고 말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신은 내 옆에, 그리고 당신 옆에도 있다고.

고맙다고.






@b__a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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