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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Dec 25. 2015

Happy Birthday To me

크리스마스가 생일인 당신을 위하여.


901225-1xxxxxx

90년대의 서울. 눈이 펑펑 내렸다던 겨울. 그 산부인과의 병동으로 돌아간다면 저의 엉덩이를 세차게 때려주고 싶네요. 조금만 더 버티렴, 크리스마스에 태어나는 건 아주 못할 짓이야. 그랬다면 어쩜. 하루 더 엄마를 괴롭혔을지도요. 저를 보기 위해 오는 길에, 아직 처녀였던 이모는 치마에 하이힐을 신고 사고 난 버스 뒤 창문으로 뛰어내려야 했다는 이야기를 아직 여전히 합니다. 이모 역시 12월 25일이 생일이라는 말은 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네요.


인도, 바라나시 (2015)




밥이라도 먹자고 한 마디 하기가 참 어렵네요. 크리스마스에 누군가를 부르는 일이. 커플이면 커플이라고, 솔로라고 한가하지도 않아요. 가족과 보내거나 약속이 없더라도 그 약속 없음을 말하기 부끄러워하는 모습이 보일 때면, 함부로 하기가 어려운 25일. 올해도 조용히 보낼 준비를 하곤 합니다. 귤 한 상자. 따뜻한  전기장판. 특선 영화 편성표. 아, 커튼은 열지 않아요. 혹시 눈이라도 내릴까 봐.


생일 파티를 했어요.

그래도 이 아이는 오겠다,  점찍어둔 아이들이 있긴 했는데. 해가 누울  때쯤 포기한 것 같아요. 그제야 넓은 상에 빈 틈 없이 올려진 많은 음식 중 탕수육을 푹 찍었는데, 걷잡을 수 없이 눅눅해진 거예요. 다음부턴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어요. 일곱 살의 파티를 끝으로 생일 파티를 포기한 아이라니. 엄마에게 생일 선물도 괜찮다고 말하기 시작한 여덟의 나.


홍콩. (2015)


성탄절이라죠. 말도 안 되는 질투였으나 어릴 땐 참 억울했네요. 죽은 사람한테 생일이 밀리다니. 사람이라고 칭하기도 애매한, 신에 대한 질투에 엄마마저 새벽같이 교회를 가는 바람에 뿔이 나기도 했지요. 나를 향하지 않은 축하에 속이 상해 거리의 캐럴도 원망하고 나눠주는 선물도 나름 차가운 말투로 거절했어요. 생일 같은 것 관심 없다고 말하기엔 속이 너무 쓰렸던 어린 제가.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는

낯설었지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축하 인사를 받는 특별한 날이어서 다행이구나, 그래도 서먹한 하루에 위로가 되기는 하겠다. 정말 얄밉게도 물도 전기도 없는 오지에서 자정을 넘길 줄 알았다면 전 기대하지 않았을 텐데요. 생일 선물로 시원한 얼음물을 한 잔 마셨으면 좋겠다. 아, 크리스마스 선물 말고. 그 날, 크리스마스 선물과 같았던 밤하늘에게 생일 선물을 달라며 나는 그리 퉁명스럽게.


크리스마스 선물과 생일 선물은 다르다고, 말하면 고약한 사람으로 쳐다봐요. 뭐 그런 게 대수냐고. 어차피 같은 날인데. 아니, 아니거든요. 정말 엄청 다르거든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도 생일 선물을 따로 받는 사람들은 알 수 없는 그 차이를.  크리스마스이브가 생일인 친구와 건배를 하며 조금 취해 털어놨어요. 우리의 생일을 법으로 보장해달라고,  얼토당토않은 구호를 외치며.


인도, 바라나시 (2015)


생각보다 크리스마스에 태어난 친구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되고 나도 그 맘 잘 알아하는 눈빛을 교환할 때면, 난 늪에서 벗어나요. 넌 내 맘 알지? 하고 물을 수 있는 사람들과 거리의 적당한 분위기만을 챙겨 돌아와 우리의 세상을 자축할 때면 썩 나쁘지 않다고. 산타의 모자와 루돌프의 코를 뺏어 달고서 우리는 소리를 질러요.

인도에서 크리스마스를 맞아요.


나는 오늘 평소보단 조금 더 괜찮은 기분으로 크리스마스를 챙기러 가겠어요.


축제가 끝나고 난 뒤의 미어지도록 휑한 거리를 본다던, 26일에 태어난 사람들까지 챙기도록 해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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