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입맛

네팔의 김치찌개가 그리 맛있대.

by 박하


썩 시원하지 않은 맥주캔 겉에 물방울이 맺히는 걸 보면. 영리해 보이지 않은 직원이 이마를 훔치며, 그나마 가장 시원한 맥주를 꺼내왔다는 말이 거짓은 아니다. 물가에 비하여 싸지 않은 맥주캔을 벌써 동내고 중얼거리는 남자는 꽤 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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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그래서, 도대체 여기는 왜 왔냐고. 김치찌개를 찾을 거면 여의도나 남대문으로 가. 내가 맛있는 집 아니까 지도까지 휴대폰에 찍어줄게. 어떻게 된 사람들이 '아르헨티나 최고의 라면집, 인도 최고의 닭백숙을 맛볼 수 있는 집.' 심지어 에베레스트 한복판에서도 김치찌개를 끓이라고. 그 높은 곳까지 포터 배낭에 김치를 양껏 넣고 닦달을 해요. 정말 미친 거 아냐?




내가 아무리 여기서 요리를 맡고 있어도 그렇지. 닭도리탕? 헛소리하지 마. 아 그래 뭐 닭볶음탕으로 바뀐 것 맞는데,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이봐. 지금 나는 여기가 생각보다 많이 다를 줄 알았어. 뭐 내 생각대로 언제나 그러리라는 법은 아닌데, 네팔에서 온 사람이 그러는 거야. 뭐라더라, 어떤 포터 이름을 대면서. 그 친구 정말 김치찌개랑 수제비 잘 끓인다고. 그걸 또 국격이 오른 것처럼 즐겁게 이야기하고 앉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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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친구가 한국 음식을 잘하는지 못하는지 관심 없어. 물론 타지에서 한국 음식을 그리워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야. 돌아다니면서 삼시 세 끼를 한인식당에서 먹어 놓고 '아, 오늘도 나는 힘들고 고된 여정을 했어.' 제멋대로 하는 생각이 괘씸한 거지. 자고로 맞지 않는 음식에 탈도 나고 똥도 안 나오고 하다 보면 그게 전부 추억 하나쯤으로 선명히 남을 텐데. 한 달 내내 얼큰한 국물에 소주까지 마셨으니 쪽팔리지 않겠냐는 거야.


말도 안 되는 가격? 맞잖아.


물 1리터보다 신라면이 열다섯 배 비싸. 그럼 말 다했지. 생일날 가족이랑 연락조차 닿지 않아서 우는 친구한테 미역국 한 그릇 정도야 구할 수 있다면 해주고 싶지만 아마존에서 며칠 머물게 된 마당에 출출해서 라면을 끓여 먹겠다는 녀석은 제정신이 아닌 거라고. 정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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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지금 이 맥주도 비싸. 여행자랍시고 마시기엔 부담스러운 거 맞지. 그런데 말야, 어차피 그렇게 다닐 거라면. 어차피 그렇게 비싼 한국음식 맘대로 사 먹을 만큼 여유로운 녀석이라면, 그냥 돈 좀 더 벌어서 집 앞에 테마파크를 만들거나 블루레이로 다큐멘터리 DVD를 양껏 사다가 보는 게 어때. 흐흐.


뭐, 대충 어떤 말인지는 알겠다. 이 남자가 유독 맥주에만 약하다는 것도. 노랗게 염색한 머리털이 그리 괜찮은 상태는 아니라는 것도. 쌓인 맥주캔을 우르르 넘어뜨릴까 바닥에 차분히 옮겨놓고 남자를 일으켜 세운다. 이만 들어가는 게 어때요. 남자는 순순히 일어나 계단을 내려가며.


제기랄, 나는 지구 반대편에 김치찌개를 먹으러 온 게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