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취업난의 끝에 도달했을 때.
취직을 못 하는 이유를 묻거든, 합격 여부를 기다리는 시간이 싫다고 답할 테다.
긴 방랑을 마치고 귀국한지 꼬박 한 달이 되던 날, 숫자가 줄어드는 통장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면접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말로는 더 쉬라던 부모님의 눈치에 차라리 꾸역꾸역 밥을 삼키고 얼른 식탁을 뜨는 편이 나았다. 사지 멀쩡한 사내가 수염도 깎지 않은 채 몇 해를 놀고 들어와 낡은 방에서 쉰다는 건 세계여행보다도 힘든 일이었다.
취미로 색소폰을 부는 아버지의 친구는 명절이 지난 저녁에 아내와 함께 찾아와 놀다가 그 멋진 취미를 선보였다. 대중은 환호했고, 어설프다며 쑥스러워하는 겸손에는 박수가 쏟아졌다. 나의 취직을 걱정하던 그분은, 이 시대의 취업난에 나를 위로하는 말을 했으나 되려 나의 아버지가 내게 공격적이었고 난 자리에서 도망쳤다.
나는 조언이 충분하여 더 이상 힘 있는 조언자가 필요치 않았음에도, 강한 조언자였던 아버지는 괜찮은 어른이 되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에 힘입어 기타를 샀으나 얼마 안 가 기타는 구석에서 먼지만 쌓였어도.
면접은 늘 잔인하여 결과의 보류를 동반했다. 괜찮은 느낌의 작은 회사는 한 시간 분량의 내 여행담을 요약하여 들어놓고도 답신이 없었고, 다른 지원자가 많으나 좋은 결과를 기대해도 될 거 같다 말하던 수염 난 사장님은 결과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그 와중에 다행은 나의 여행이 경력으로 인정되어 빈칸 한 줄을 덜 고민해도 되었던 것이다.
첫째 날은 개운한 아침식사를 하며 설레고, 둘째 날은 살짝 신경이 쓰여도 개의치 않는 쿨함을, 셋째 날은 휴대폰을 수시로 확인하는 초조함이, 넷째 날은 이력서에 번호를 잘못 적었나 싶은 멍청한 불안을, 다섯째 날엔 옅은 색의 포기가 고개를 들고, 여섯째 날엔 혹시나 싶은 기대가 되어, 일곱째 날에 완전한 포기를 이룩한다. 세상을 이루는데도 일곱 날이 걸렸다는데, 무너지는 시간도 일곱 날이면 충분하니 이 얼마나 공평한가.
새로 생긴 세상이 몇 번이나 다시 멸망하는 걸 지켜보고만 있을 무렵에 나는 전화를 받았다. 합격 전화 속 들뜬 마음을 감추기가 고역이었지만, 여러 해를 거듭한 고생을 여전히 진행 중인 주변인들에겐 기쁨도 좌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는 말아야 했다.
어려운 취직과 달리 쉬운 퇴직을 거친 나는 어쩜, 쉬운 취직을 목표로 노력하는 수련생인가. 취미로 색소폰을 불 수는 없어도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하는 일은 수준급이며 언제 어느 상황에서도 잠들 수 있는 멋진 특기가 있는데.
부들부들 떨며 처음으로 단두대에 올라간 심정은 잊히지 않아도, 결국 내 목을 내리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난 뒤엔 기죽지 않았고 또 다른 심판대에 올라야 하겠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인생의 사정을 구구절절 설명하는 종이를 들고 또다시 더 많은 사람에게 심판을 받으러 가야 하는 날들이 남았으니 새로운 세상도 더 무너질 세상도 없는 끝에 도달하고 나면 아프지 않을 수 있을까.
어느 누구도 심판하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과연 그럴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