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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Feb 17. 2016

진정한 꿀팁

파워블로거를 관둔 이유.


순천에 있을 때의 일이다.


더운 여름 땡볕에 아직은 긴 여행이 많지 않을 시절. 정보를 선점하기 위해 온갖 낯선 일들을 했다. 수첩은 하루 동안 꼬박 쓴 지출부가 되기도 했고, 저렴한 숙소의 위치와 짐을 맡겨주는 따위의 정보 등이 빼곡히 적혔다. 그리고 무거운 배낭을 멘 채, 끓는 아스팔트를 걸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예상치 못한 일정이었다. 나는 순천만을 보고 점심 겸 저녁으로 간단하게 편의점에서 끼니를 때운 뒤, 저녁 기차를 타고 이동을 하면 됐다. 나는 잃어버린 것이 없었다. 단지 버스시간표를 찍지 못했을 뿐. 한참을 걸어 버스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땀은 금세 등을 적셨다. 원망스러웠다. 어째서 한 정류장이 아니라 두 번째 정류장을 지나 깨달은 건지. 큼직하게 적힌 시간표를 찍고 난 후에 흐뭇한 미소도 잠깐 뿐. 자괴감이 날 덮친다.


이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


인도, 바라나시 (2016)




꽤 잘 나갔다.


블로그의 하루 방문자 수는 2-3천 명을 웃돌고 새로이 글을 올리면 기꺼이 4천까지 올랐다. 그 숫자 놀음이 카지노인 듯 데굴데굴 마음을 굴렸다. 클릭을 잡아두기 위해 강렬한 제목은 썼으나 광고를 해달라는 연락에 결코 응한 적은 없었다. 하루에도 몇 시간씩, 성실하게 광고 댓글을 지웠다. 나의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버릇이 인터넷에서도 다르지 않았다.


어느 날, ‘파워 블로거지’ 라며 사람들이 비난을 했다. 아무도 못 믿겠다고. 나 역시도 그런 사람인 것처럼 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색 상위권에 뜨는 정보들을 보이콧하진 않았다. 수많은 블로거가 추천한 맛집은 ‘블로거가 아닌’ 이들에게 재평가되기도 했다. 돈 주고 시켰다는 수많은 악플들이 달려도, 파워블로거들은 과거의 글을 수정하는 부지런함을 보이진 않았다. 나의 카테고리는 고작 여행에 국한되었으므로 괜찮았다.



나는 내 삶이 좀 더 난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떠날 때 금전적인 부분을 먼저 신경 쓰는 사람들에게, 무려 이 정도까지 아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었다. 국내 여행을 가더라도 수없이 많은 방법을 찾는 사람들이 내 삶에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은 더욱 난해하지 않아서. 너무 쉬운 것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은  절반쯤 맞았다.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는 아니었지만 ‘이 정도면 어때. 충분히 재미있지 않아?’ 내 글로써 괜찮은 이야기꾼 정도는 원했다.


비극이었던 건,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는 거의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달랐다.




블로그를 관둔다는 공지를 올렸고 고작 세 명이 댓글로 아쉬움을 표했다. 방문자 3천 명 중에 고작. 그리고 깨닫는다. ‘아 이 사람들은 정보를 원하는구나, 이야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었구나.’ 나는 내가 대단한 사람인 줄 착각했지만, 결코 그렇지 않았다. 방문객의 숫자는 그저 숫자일 뿐이었다. 파워 블로거는 협찬으로 돈을 벌지 않는 한, 단지 블로거일 뿐이었다.


입술을 깨물며 다짐을 했다.

적은 글이 아까워 폐쇄는 하지 않았어도, 더 이상 ‘여행기’를 위한 여행을 하지 않으리라고.




빵집 하나를 선택하지 못해 검색을 하는 수많은 결정장애들은  또다시 난관에 봉착한다. 수 많은 정보 탓에 모든 길거리의 식당이 맛집으로 나와 결국 다시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시간. 그럼에도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이름을 선택하는 것도. 내가 정보를 찾지 않는 이유는 찾는 정보에 납득하지 않을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여행도 마찬가지. 여전히 우리는 처음 가는 곳을 모르고, 모르기에 지나칠 테지만. 정보를 얻는다고 더 나아지는 상황은 없다. 그러나 정보가 없어도 심각하게 나빠지는 상황 또한 없었다. 그 시절의 나는 인터넷 대신 길을 물었고 저렴한 숙소를 찾기 위해 3층 건물을 열 군데 정도는 오르내렸으나, 여윳돈이 있다면 보다 쉬운 대안 역시 언제나 있었다.


그곳에 사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못 미덥다면 가족과 함께 걷는 사람에게 물어보자. 이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틀린 적이 없던 꿀팁이다. 휴대폰을 잡고 있다면 인터넷이 당신을 저녁식사에 초대하진 않을 테니까.



그러나 아직, 여전히 블로그에 방문하는 사람들의 검색어는 ‘순천 67번 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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