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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May 01. 2016

아빠를 위한 선물

어울리는 선물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건.


아버지, 아니 아빠에게. 선물을 사기 위해 들어와 있는 모양새는 그랬다. 얼마나 까다로운 사람인지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이것저것 들춰보다가, ‘아니, 역시 아니야’ 하며 고개를 젓는 사람들은. 되려 엄마를 위한 선물은 무난한 것들이 많으니까.


그러나 그건 나의 오만이었다.


20년을 함께 살아온 여인의 취향 역시, 단 한 가지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어제 새로 사귄 친구에게 줄 선물을 생각하며 떠올리는 얼굴만큼도 내 어머니와 아버지는 낄 틈이 없었나 보다. 스카프나 지갑과 같이 정형화된 ‘엄마의 선물’은 역시 무난했다. 파우치나 브로치도 한 자리쯤 차지할만했다. 정확한 속마음은 모를지언정 엄마는 싫어하는 게 없었고, 정말이지 기뻐했다. 엄마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Mcleodganj, India. (2016)


어느 날은 가정 시간이었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메뉴를 적는 칸에 ‘멸치볶음’따위를 적었던 것 같다. 엄마가 밥을 먹는 기억이 선명히 나지 않는 건, 삼겹살을 먹을 동안 엄마가 앉지 못해서였던 것을. 난 뒤늦게 알았다. 그 종이를 들고 엄마에게 사인을 받아 오는 것이 숙제였는데 그걸 본 이모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너희 엄마가 제일 싫어하는 게 이거야.”




내가 꼭 일곱이 되던 해. 어린 아들이 아빠에게 처음으로 선물한 열쇠고리는 '97년 설악산'이 적힌 하회탈 조각이었다. 기껏 놀러 가서 먹는 걸 고민하지 말라고 쥐어준 만 원짜리 한 장에서 절반이나 내놓으라는 대머리 아저씨에게 선뜻 그랬다. 비싼 게 좋은 줄 알던 나이였다. 포장지도 없이 달랑거리며 건넨 열쇠고리에 적잖이 당황한 아버지가 웃었는지 아닌지, 기억은 없다. 내가 기특한 아들이 되고 싶었던 마음만 그득한 그 선물을 여전히 아빠가 가지고 있는지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건넨 마지막 선물은 역시 포장지가 없는 인조 가죽 장갑이었다. 어찌나 좋아하는지, 아빠가 원래 가지고 있던 가죽 장갑이 해진 걸 보고서 찾아보니 턱 없이 비쌌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빠는 그 인조 가죽 장갑을 열심히 끼고 다니셨다. 진짜 가죽 장갑은 서랍에 고이 넣어 놓고서.


사실 인터넷에 검색도 많이 해 본 것 같다. 온라인 세상, 그곳에 있는 자녀들은 얼마나 어른들인 걸까. ‘커프 링크스’와 같은 내가 생전 들어보지 못한 물건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기껏 알아듣는 넥타이는 아빠가 멜 일이 많지 않았고, 양말은 성의 없어 보이니까. 그랬다. 정말 어려웠던 것 같다.




시름 깊은 나날이 지나고 있었다.


그때 아빠는 힘들었다. 내가 마지막으로 받았던 포장지에 싸인 선물은 조악한 장난감 경찰 배지였을 테다. 꽤 비싼 값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아빠는 아들의 투정을 이기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동생의 질투까지 생각한 아빠는 같은 물건을 두 개나 사 오는 일을 벌였다. 아빠가 어린 처제에게 돈을 빌렸다는 소릴 나중에야 문득 들었다. 그렇게 받은 경찰 배지는 어디다 잃어버렸는지 알 길이 없지만.


Mcleodganj, India. (2016)


그 이후 성년의 날 같은 때, 친구들에겐 선물이 익숙해 보이던 기억이 난다. 나 역시 받았다면서 거짓말을 했던 것도. 난 이미 선물에 연연할 나이가 훌쩍 지나버린 뒤였으니까. 그렇게 여겼다. 물건에 감정을 갖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선물에 익숙하지 않아 기쁜 표정이 없는 것도 변명이라면 그렇다 할 수 있겠다.


영화에서 트리 아래 잔뜩 쌓인 선물 상자들을 뜯어보는 일은커녕, 생일엔 케이크가 아니라 짜장면을 먹는 날이라고 착각했던 내 어린 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아버지 역시 그랬을까. 아빠가 아니라 ‘아버지’가 되어, 아들과 두 걸음쯤 멀어진 남자가 어떤 것을 좋아할는지.


열심히 돈을 모아 차를 바꿔줬다던, 친구 아무개의 아들내미가 아니었다 나는. 침침해진 눈에 화면 큰 휴대전화 하나도 바꿔줄 벌이를 못 하고 있는 아들에게 어떤 선물을 바랄지 가늠할 수도 없다. 벌써 나는, 내게 장난감 경찰 배지를 건넸던 그 때의 어린 아빠와 같은 나이가 되었는데. 온갖 선물 가게를 돌아다녀도 어렵다. 알맞은 선물을 고르기가.


어린이집에서 써 온 편지를 아빠가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녔다는 건, 아마 먼 옛날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그렇게 예쁜 엽서를 적어보는 것도 괜찮지 않겠나 싶다.


괜찮은 향수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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