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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하 Jul 27. 2016

두 마리 토끼

토끼 두 마리는 생각보다 날랬다.


토익, 학점, 봉사활동.


공부에 매진하는 주변과 다른 길을 택한 난, 스펙을 쌓으러 여행 온다던 친구들을 경멸했다. 내 토끼를 넘보니까. 그럼 사람들은 고작 대외활동의 일환으로 여행을 택했고 이력서에 적을 한 줄이 더 생겼을 뿐이었다. 이제 여행이란 콘텐츠는 발에 채일 정도로 무분별해졌다. 하나부터 열까지 관련 티브이 프로그램만 이렇게 많이 생겼다는 걸, 얼마 전 귀국해서야 알았다.


두 마리 토끼 정도는 가뿐하게 잡는 녀석들이 뭐라도 된 양 으스대는 꼴을 견딜 수 없었다. 아니, 사실 부러웠던 거다 나는. 고작해야 여행 하나를 쫓기에 버거웠던 내가 부러워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취직이란 토끼 하나를 쫓는 틈에 다른 토끼를 잡으려 하던 목표는 금세 물거품이 되었으니까.


세상에 걸출한 사냥꾼이 이리 많을 줄이야.




Leh, Ladakh. (2016)


얼마나 더 이렇게 살려고.


아득해질 무렵마다 꼭 다시 떠오르는 질문이었다. 엄마는 방콕까지 날아와 이렇게 첫마디를 했다. 공항까지 마중 나온 아들과 택시를 이내 잡아타고 한 말이니 첫마디는 아니었지만, 내겐 그랬다.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아빠와 엄마를 두고 반 농담 삼아 말해야 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못 만날 만한 더 먼 곳으로 갈 걸.” 시내까지 한참인 택시에 갇혀버리게 될 무거운 공기를 떨쳐내려 덧붙인다. “나 행복해, 엄마.” 아빠의 한숨을 못 들은 척하며 택시기사에게 길을 설명했다.


알알이 시큰한 인생이 달큼해지려면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겨드랑이에 냄새라도 나는 건지, 도통 알 수 없게 올라오는 이 시큰함을. 시큰함이 있어야 달달함을 느낄 수 있다는 서툰 위로가 최악이다. 세상은 새파랗게 어린 나에겐 여전히 치사했다. 나보고 늘 한 술 더 뜬다고 했다. 쥐똥만 한 세상의 밥공기를 너무 많은 사람이 뜨고 있으니 곱게 보일 리는 없으니까.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Bangkok, Thailand (2016)


적당히 하고 들어와.


며칠, 나는 아빠와 엄마에게 밥을 얻어먹었다. 마치 마지막 경고 같은 그 말에 서글펐다. 그렇지 않은 척, 아무렇지 않은 척하기 힘들게, 울컥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참 서운했나 보다. 어쩌면 편하지 않았던 며칠이. 내 궁상맞은 여행을 들켜버린 것 같이.


해진 옷에 까맣게 탄 아들이 오래도록 머물던 인도를 벗어나자마자 엄마는 방콕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그렇게 갑작스레, 부모님은 나의 여행 사이로 들어왔다. 몸이 안 좋아 고작 호텔 밖으로 나오지도 못하면서. 근처를 함께 구경하고 호텔에서 자라는 말을 한사코 거부하던 아들은 매일같이 구석진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그렇게 야속한 일주일이 흐르고 아빠와 엄마는 귀국했다.




Kardung La, Ladakh. (2016)


#파리 #여행

파리를 간다는 친구, 하노이를 간다는 친구, 심심찮게 중국을 나가거나 뉴욕에 방문하는 수많은 사람들. 이미 취업이라는 토끼를 잡아낸 사람들. 나는 여전히 고정 수입원이 없는 소위 말해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이니까. 저 사람들은 바쁜 그 사이에서 여유를 끌어내는 걸까. 그럼 나 역시 여행이란 걸 이용해 뭐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이제는 나를 부러워하지 않는 여유가 생긴 사람들을 상대하는 방법을 모르니까 생긴 조급함.


그러나 몇몇은 그랬다. 차라리 잘 되면 좋으련만. 여전히 토끼를 향해 달리는 친구들을 보면 나 자신을 보는 만큼 마음이 아픈 것이. 쉬는 날인데도 집에 괜히 눈치가 보여 나를 만나러 나와야 했다는 말을 듣노라면. 스스로를 안타까워하지 말아야겠다는 마음이 무색하게 밀려온다.


점점 멀어지는 토끼는 달처럼 멀다. 그래서 저리 방아를 찧고만 있나 싶게. 흔히 말하는 금수저 따윈 괘념치 않기로 마음을 달래고, 또 달랜다. 정말 두 마리를 다 잡는 일은 욕심인 걸지도. 한 마리라도 몸 성하게 잡아내 봤으면.


별자리를 빌려다가 옆 자리에 앉히고 나는 묻고 싶었다. 내 운명에 대한 이야기들 같은 걸.


정말이지 무거울 거야. 그렇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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